제목 | 10.8.주님께서 이루신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신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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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7-10-08 | 조회수1,330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마태 21,33-43(연중 27 주일)
오늘 말씀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포도밭을 떠올리면, 술에 취하듯 푹 빠져버린 사랑이 떠오릅니다. 사랑에 포로가 되어버린 거부하려 해도 거부되지 않는 어쩔 수 없는 그런 사랑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술 도가니에 빠지듯, 흠뻑 젖은 사랑의 향기에 푹 빠져보시기 바랍니다. <아가서>의 아름다운 구절이 떠오릅니다. “잇몸과 입술을 넘어 나오는 포도주 같은 단맛을 그대 입 속에서 맛보게 해 다오. 이 몸은 임의 것, 임께서 나를 그토록 그리시니, ~이른 아침 포도원에 나가 포도나무 꽃이 피었는지 석류나무 꽃이 망울졌는지 보고, 거기에서 나의 사랑을 임에게 바치리다.”(아가 7,10-134)
사실, 오늘 <복음>이 부르는 ‘포도밭의 사랑의 노래’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지를 실감나게 해 주는 노래입니다. 그 사랑이 너무도 커서 아들의 목숨까지도 건네주어 버리는 애타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그렇지만, 이 사랑의 노래는 그 애절한 사랑이 거절당하고, 배반당하고, 끝내는 목숨까지 살육당하는 처참하기 그지없는 가슴 아픈 사랑의 노래입니다. 그렇다하더라도 그 사랑은 결코 그만둘 수도, 포기될 수도 없는 사랑입니다. 그것은 막무가내로 흘러나오는 사랑이어서, 마구 흘러넘쳐서 모든 이에게로 흐릅니다. 이 크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우리는 그만 얼컥 눈물이라도 흘러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 노래는 이 큰 사랑을 거부해버리고 마는 나약한 우리 인간의 배신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 고귀한 사랑마저도 한갓 우리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짓부수어버리고 마는 배은망덕의 패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우의에서 포도밭 주인(하느님)은 당신의 포도밭(이스라엘 백성)을 소작인(백성의 지도자)들에게 맡깁니다. 그리고 당신의 종(예언자)들을 여러 차례 보내지만 소작인들을 그 종들을 학대합니다. 하나는 매질하고, 하나는 돌로 쳐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결국 주인이 사랑하는 아들(예수 그리스도)까지 보내지만, 그마저도 포도밭 밖으로 끌어내어 죽여 버립니다. 여기에서 소작인들은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고 자신들 마음대로 포도밭을 차지하려는 악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 이야기의 핵심 주제는 이제 하느님의 구원 역사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정적으로 구원의 역사가 보장되었다는 유대인들의 생각은 파기되고, 이제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인 교회공동체에 구원의 사명이 맡겨집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교회공동체는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으로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모두 포함하는 새로운 개념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 사제들과 원로들을 고발하며 꾸짖으십니다. 어리석은 인간의 꾀와 작태를 비웃으시며, 하느님의 깊은 섭리와 계획을 분명하게 밝히고 계십니다. 집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리돌이 되었다는 성경말씀의 인용을 통해, 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 죽음을 통해 새로운 구원의 시대가 펼쳐졌다는 역설의 신비를 가르쳐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유대인들에 의해 버려진 필요 없는 돌이었습니다.그러나 그 돌은 인류 전체의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집을 짓는데 사용하게 될 모퉁이의 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의 신비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죄를 뛰어넘는 하느님 계획의 초월성입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특별히 포도원 주인의 믿음과 자비를 보게 됩니다. 도조를 받으러 보낸 종들이 두 번씩이나 무참히 맞고 죽는 배신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아들을 보내주시기까지 믿음과 자비를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마침내 당신의 아들마저도 그렇게 죽음을 당했지만, 끝까지 포도원을 포기하시지 않으시는 무한하신 사랑입니다. 아니, 오히려 살해당한 당신의 아들을 통해 그들을 구원하시는 오묘한 섭리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는 자비입니다. 곧 예수님께서는 비록 유대인들에게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 죽음을 통해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펼치셨습니다. 이는 아무리 인간의 죄가 크다 하여도 인간의 죄를 뛰어넘는 하느님 계획의 초월성을 보여줍니다. 당신께서는 버려진 돌이셨지만 머릿돌이 되시어 새로운 집, 구원의 새로운 백성을 세우셨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마태 21,42)
사실 인간들은 외적, 현실적, 이기적인 것에 얽매여 예언자들을 죽였고, 아들 예수님마저 죽이고 말았습니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어두웠던 것입니다. 어쩌면, 제때에 도조를 바치지 않고 엉뚱한 착각에 빠져 못된 일을 저지른 소작인, 그것은 일상의 삶 속에서 잘못과 죄를 밥 먹듯이 반복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알찬 열매를 맺어야 하는 포도나무들이어야 하고, 제때에 도조를 바치는 정직하고 성실한 소작인이어야 할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로부터 무상으로 선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곧 은총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백성, 도조를 잘 내는 백성, 곧 새 백성이 되어야 할 일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먼저 결실을 맺을 모든 준비를 우리에게 다 해 주셨습니다. 철이 되면 소출을 얻을 수 있도록 이미 모든 준비를 다 해 주셨습니다. “울타리를 둘러치고는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워주셨습니다”(마태 21,33)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하느님을 밀쳐내고, 그분의 권리를 강탈하지는 말아야 할 일입니다.탐욕으로 인해 주인의 아들마저도 죽이고 마는 악한 마음과 배은망덕은 말아야 할 일입니다. 오로지 그분의 뜻에 따라 좋은 결실을 맺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 풍성한 소출을 도조로 바쳐야 할 일입니다.바로 이것이 주인께 대한 감사의 보답이라 할 것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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