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사순 시기, 전례꽃으로 묵상하는 주님 수난
꽃과 나무에 입힌 상징과 말씀, 더욱 깊은 묵상 이끌어 - 사순 시기 전례꽃꽂이는 마르고 날카로운 질감의 식물을 주로 사용하며, 회개와 보속을 의미하는 보라색과 생명과 영원을 향한 성장을 상징하는 초록색이 소량 들어간다. “군사들은 예수님께 자주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머리에 씌우고서는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하며 인사하기 시작했다. 또 갈대로 그분의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고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 예수님께 절하였다.”(마르 15,16-19 참조) 사형선고를 받은 뒤 군사들에게 가시관이 씌워진 채 조롱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예수 그리스도는 자주색 옷을 입은 채 가시관에 머리를 찔리는 고통 속에서 죽음을 기다렸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 시기 전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가장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꽃이다. 화려한 색이 모두 사라진 잿빛 나뭇가지, 뾰족한 가시, 죽은 듯 보이지만 그 안에서 생명이 살아있는 나뭇가지. 예수 그리스도 수난기의 모든 장면은 전례꽃 한 꾸러미에 모두 담겨있다. 마르고 날카로운 질감의 식물로 절제된 꽃꽂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상징 사순 제1주일이 일주일가량 남은 2월 17일, 전례꽃꽂이 취재차 찾은 역곡성당에는 돌아오는 주일 전례에 놓을 하얗고 노란, 아름다운 색들의 꽃이 진열돼 있다. 오늘 취재를 위해 보여줄 꽃꽂이 꽃들인가 싶어 묻자, 역곡본당 헌화회원 박은희(릿다)씨는 그 반대쪽에 놓인 나뭇가지들을 가리킨다. 거칠고 건조해서 부서지기 쉬워 보이는 나뭇가지와 뾰족한 가시가 있어 위협적으로 보이는 나뭇가지, 색이 바래 죽은 듯 보이는 대나무. 화려한 색의 꽃들과 대비되는 식물들은 식물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버려진 것을 주워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화살나무, 탱자나무, 오죽 등 각자 예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식물들. 박은희씨는 “회개, 참회, 보속, 희생, 정화를 통한 회심을 의미하는 사순 시기에는 탱자나무나 화살나무 같은 마르고 날카로운 질감의 소재로 전례꽃꽂이를 하며 화려한 장식은 절제한다”고 밝혔다. 사순 시기, 교회나 성당에서 대부분 쓰는 탓에 귀하게 여겨지는 이 식물들은 꽃꽂이를 하기에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잎이 모두 떨어진 화살나무 가지는 표면이 말라 플로랄 폼에 꽂는 과정에서 금세 부서져 바닥에 가루가 가득하다. 탱자나무 가지는 길고 단단한 가시가 빽빽하게 나있어 손으로 잡기조차 힘들다. “탱자나무의 가시를 잘 피해서 둥그렇게 말아보세요.” 십자가 옆에 놓일 가시관 만드는 것을 보여준다며 박씨는 나뭇가지를 둥글게 말아 가시관 하나를 뚝딱 완성했다. 박씨의 말을 듣고 가지를 구부려 보지만, 단단해서 잘 휘어지지 않는다. 손의 열기로 잘 달랜 뒤에야 겨우 둥그렇게 말린 나뭇가지. 하나를 구부리는 데만 해도 가시에 여기저기 찔려 몇 시간 동안 손가락이 얼얼하다.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완성된 가시관을 머리에 올려놓자, 따가운 가시로 인해 1분도 참기가 어렵다. 성경에서 눈으로 읽는데 그쳤던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이 몸으로 전해졌다. 매년 사순 시기, 날카로운 탱자나무를 이용해 전례꽃꽂이를 하고 있는 박씨도 “매년 할 때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그 마음은 어땠을까, 그 고통에 대해 많이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례꽃꽂이는 각 전례시기마다 그 모습이 다르다. 특히 꽃의 색으로 시기를 표현한다. 흰색은 하느님의 영광, 완전한 승리, 기쁨, 환희, 순결의 의미를 담고 있어 예수 승천 대축일과 거룩한 변모 축일에 사용한다. 성령의 불, 순교, 희생과 승리를 표현하는 빨강색은 성경 강림 대축일과 순교 축일에 많이 사용한다. 황금색은 영광, 기쁨, 불변의 표현으로 성탄, 부활,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사용한다. 사순 시기와 대림 시기에는 회개와 보속, 위엄과 엄숙함을 의미하는 보라색이 쓰인다. 생명과 영원을 향한 성장을 상징하는 초록색도 연중시기와 대림 시기, 사순 시기에 많이 사용한다. 시기마다 쓰이는 색이 다르기 때문에 쓰는 식물도 차이가 있다. 주님 부활 대축일에는 백합, 조팝나무, 백장미, 카라 등 흰색 꽃을 사용하며 부활 꽃이라 불리는 방울수선, 노랑 아이리스, 노랑나리 등을 사용하기도 한다. 사순 시기 전례꽃꽂이는 색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회개와 보속을 의미하는 보라색, 다가올 생명의 의미를 담은 초록색을 소량 사용한다. - 사순 시기, 가정에서 함께 만들 수 있는 작은 가시관. 가정에서 전례꽃 함께 만들며 의미있는 사순 시기 보낼 수 있어 잿빛 십자가와 가시관 뒤로 푸른색 그린훅과 보라색 아네모네와 버들이 꽂히자 사순 시기의 느낌이 배가된다. 베테랑 전례꽃 지도자인 박씨의 손길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가 집약된 꽃들. 워낙 손놀림이 빠른 탓에 빈 곳 아무데나 식물을 꽂아 넣는 것처럼 보이지만 박씨는 사순의 의미가 잘 느껴질 수 있는 곳에 식물을 배치하고 있었다. 박씨는 “전례 시기마다 색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주 성경말씀과 어울리는 작품을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꽃으로 성경말씀을 잘 표현하고자 전례꽃꽂이를 시작하고 나서 성경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예쁜 꽃으로 하는 꽃꽂이를 할 때도 행복하지만 손이 아프고 다치는 식물을 다뤄야 하는 사순 시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깊이 묵상할 수 있어 의미가 있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박씨는 “한 주 동안 불만이나 불평을 가지고 있다가도 전례꽃 작업을 하는 금요일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생각하며 마음의 위로를 얻곤 한다”고 말했다. 꽃과 나무에 말씀이 더해지자,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보다 생생하게 전해지게 된 것이다. 박씨는 “특히 사순 시기 꽃꽂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직관적으로 느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가정에서 작은 꽃꽂이를 아이들과 함께 해보길 권한다”고 조언했다. 꽃 도매시장에서 화살나무를 구입해 십자가를 만들고, 탱자나무로 가시관을 만들며 사순 시기 꽃꽂이를 할 수 있다는 게 박씨의 설명이다. 집에 놓을 작은 십자가를 만들고자 손 위에 놓은 화살나무. 다 부서져 죽은 것만 같았던 나뭇가지의 끝에는 연두색 싹이 자라나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은 끝이 아닌, 생명을 향한 시작임을 식물들은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었다. [가톨릭신문, 2023년 2월 26일, 민경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