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이웃에게 따뜻함을 /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가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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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7-11-26 | 조회수1,34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교회는 전례력이 끝나는 마지막 날을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지내며 예수님께서 우리의 왕이심을 선언한다. 그분 스스로 한 번도 왕이라고 하신 적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분께서 진정 ‘우리의 왕’이시라고 고백한다. 왕은 예로부터 무소불위의 힘과 권력을 가진 존재였다. 역사 이래 왕들은 백성을 지배하였고 찬란한 궁궐을 짓고 그 안에서 화려한 삶을 살았다. 세상의 왕이 그렇다면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분께서는 당연히 그 누구와 견줄 수 없는, 힘과 세력을 가진 화려하고 위엄 있는 ‘왕’이어야만 했다. 그런데 오늘 우리의 왕이 누구이신지를 전한다.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 세상에서 굶주리고 헐벗은 이, 병들고 감옥에 갇힌 이가 바로 우리의 왕이신, 주님 당신이시라는 거다. 이는 우리가 이 땅에서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모시겠다면, 굶주린 이, 병들고 약한 이, 헐벗고 목마른 이들을 찾아 섬겨야 한다는 거다. 우리는 자신보다 더 잘난 이만을, 더 능력 있고 더 가진 이들만을, 권력이 있고 힘 있는 이들에게 줄을 대지 못해 안달을 하고 있는 한, 우리의 왕은 그 자리에 없다. 세속의 왕은 부와 권력을 가지고 저 위에 있지만, 우리 인생의 왕이신 그분께서는 저 아래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과 함께 계신다. 지금은 우리가 큰 문제의식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최후 심판 때에는 그동안의 모든 언행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작은 이들 한 사람에게 해 준 게, 바로 내게 해 준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다. 미래를 주관하시는 분으로 고백한다. 진정으로 그렇게 고백하면 그분은 내 운명의 주인이 되어 주실 게다. 평범한 이 진리를 다시 기억하며 실천하라는 것이 ‘그리스도 왕 대축일’의 교훈이리라. 그러니 구원을 죄와 연관된 것으로만 기억해서는 안 된다. 죄를 짓느냐, 안 짓느냐에 구원이 달린 것은 아니다. 구원은 오직 사랑에 달려 있다. 얼마나 사랑하며 사는가에 달려 있다. 그러기에 오늘 그분께서도 이웃에게 행한 게, 예수님 당신에게 행한 거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우리는 이웃의 도움을 필요로 하기에, 우리 역시 그들께 도움을 주어야만 한다. 사랑해야 할 ‘작은 이웃’은 어떤 형태로든 관계 맺고 있는 이들이다. 그들을 제치고 ‘주님 사랑’을 실천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 상처주면서 ‘사랑의 길’을 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왕이신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당신을 동일시하셨다. 가까운 이를 사랑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만큼 중요하다는 가르침이다. 왕이란 딱딱한 표현이다. 누구나 그 앞에선 벌벌 떨었다. 예수님께서 그런 왕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분은 ‘사랑의 왕’이셨다. 오늘만큼은 그분 사랑을 꼭 기억하며 주위의 ‘작은 이웃’들에게 따뜻함을 전해야겠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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