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21.강론."때가 차서~ 가까이 왔다.-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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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송문숙 | 작성일2018-01-21 | 조회수1,297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마르 1,14-20(연중 3 주일)
오늘은 연중 제 3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의 주제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발설하신 ‘첫 번째’말씀입니다. 곧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는 복음 선포입니다. 오늘 <제2독서> 말씀도 바로 이 하늘나라의 “때”에 대한 말씀입니다. <둘째>는 ‘첫 번째’ 말씀인 복음 선포에 응답하라고 요청입니다. 곧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는 요청입니다. 오늘 <제1독서>의 말씀은 바로 이 “회개”에 대한 말씀입니다. <셋째>는 제자들을 부르심입니다. 곧 “나를 따라 오너라”(마르 1,17)는 부르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
“때가 찼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시기 시작하신 일이 그저 아무 때나 우연히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요, 이전의 모든 시간이 지금의 이 “때”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곧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후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로 계획하신 이후 줄곧 준비해온“때”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우리가 어디로 가야할 지를 제시해주는 방향이요, 목표임과 동시에 우리에게 주시는 희망이요, 선물입니다. 이 “나라”는 바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에 의해 다스려지는 나라요,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 안에서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말씀은 ‘곁에 와 있다’는 말씀으로,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이미 현재에 와 있는 나라요,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 안에 이미 현존하는 나라임을 말합니다(루가 11,20 참조).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회개”는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곧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어디를 향하여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러니“회개”는 삶의 방향을 바꾸되,그 나아가야 할 목적지를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곧 ~어디로부터 벗어나야 하는지와 함께~어디에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결국, “복음적 회개”란 하느님을 모르고 살았거나, 잘못 알고 살았거나, 잊고 살아온 삶으로부터, “복음”이 말해주는 하느님께로 돌아서는 것을 말합니다. 곧 “복음”이 제시하는 곳이 “회개”의 목적지라는 말씀이요,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삶을 “회개”라는 말입니다. 곧“복음”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가는 “기쁜 소식”이라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회개해야 하는 이유” 역시, “하늘나라”라는“복음”을 ‘믿기 위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임은 우리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믿음”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하늘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동시에 복음이 바탕이 되지 않은 믿음, 곧 복음과 일치하지 않는 믿음은 아무리 굳은 믿음이라 하더라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중요한 것은 믿되 올바르게 믿는 일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칼 라너는 지적은 우리에게 경각심을 줍니다.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하느님은 아니 계십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믿는 이들을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마르1,17)
예수님께서는 앞에서 회개하여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듯이, 이제 믿음으로 당신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는 당신께로 부르신 이들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당신께 “오너라.”는 것입니다. 곧 자신에게서 “떠나”는 것이요, 당신께 “오너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자신을 떠나기는 하는데 당신께로 가지 않는다든지, 당신께 가기는 하는데 자신을 떠나지 않는다든지 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또한 당신께로 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가는 길을“따라 오너라”는 말씀입니다.그러면 당신께서 “함께 가리라”는 말씀입니다. “데려고 함께 가리라”는 말씀입니다. 다름 아닌, 데리고 함께 “하늘나라”로 가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부름을 받은 이들’이 그분을 따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그 어떤 것을 준비하고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던 것, 의지하고 있던 것들을 버리는 일일 뿐입니다. 그야말로 그분을 따라나선 그들은 배도, 그물도, 삯꾼도, 아버지도, 모두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나섰습니다. 바로 이 ‘따라나서는 것’이 회개의 실천적인 모습이요, 믿음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그러기에, 이 “버림”은 결코 맹목적이거나 강제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보다 더 큰 가치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곧 그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한 배나 그물보다도,또 자신들이 의지하고 있는 아버지보다도 더 값지고 중요한 것, 곧 “그분”을 향하여 믿고 따라나선 것입니다. 그러니 “버림”은 예수님을 따라 나서는 하나의 조건이요 방법일 뿐, 결코 목적이 아닙니다. 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버려야 하는 이유, 곧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버리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를 향하는지, 누구를 따르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진정 우리를 부르신 분을 따르고 있는지,아니면 따라 나선 자신을 따르고 있는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곧 자신의 나라를 만들고 있는지 하느님 나라 안에 있는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을 따라나서야 할 일입니다. 복음을 따라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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