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3월 16일(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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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03-16 | 조회수1,97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3월 16일 [(자) 사순 제4주간 금요일] 말씀의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악인들이 의인에게 덫을 놓고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려고 모의하지만, 그들은 틀렸고 하느님의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한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초막절 축제를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어 성전에서 가르치시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잡으려 한다. ◎제1독서◎ <그에게 수치스러운 죽음을 내리자.> 2,1ㄱ.12-22 1 옳지 못한 생각으로 저희끼리 이렇게 말한다.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반대하며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탓한다. 지녔다고 공언하며 자신을 주님의 자식이라고 부른다. 하든 우리를 질책하니 우리에게는 짐이 된다. 다른 이들과 다르고 그의 길은 유별나기만 하다. 여기고 우리의 길을 부정한 것인 양 피한다. 행복하다고 큰소리치고 아버지라고 자랑한다. 그의 최후가 어찌 될지 지켜보자. 아들이라면 하느님께서 그를 도우시어 적대자들의 손에서 그를 구해 주실 것이다. 고통으로 시험해 보자. 알 수 있을 것이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돌보신다고 하니 죽음을 내리자.” 그들이 틀렸다. 눈을 멀게 한 것이다. 신비로운 뜻을 알지 못하며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상급을 인정하지도 않는다. ◎화답송◎ 시편 34(33), 17-18.19-20.21과 23 (◎ 19ㄱ)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신다.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 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신다.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의인이 몹시 불행할지라도, 주님은 그 모든 불행에서 구하시리라. ◎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신다. 지켜 주시니, 뼈마디 하나도 꺾이지 않으리라. 주님이 당신 종들의 목숨 건져 주시니, 그분께 피신하는 이 모두 죗값을 벗으리라. ◎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신다. ◎복음환호송◎ 마태 4,4 찬미받으소서.)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찬미받으소서.) ◎복음◎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복음입니다. 7,1-2.10.25-30 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초막절이 가까웠다.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남몰래 올라가셨다. 몇 사람이 말하였다.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하지 못합니다.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온 것이 아니다.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잡으려고 하였지만, 아무도 없었다.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의묵상◎ 유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그들의 적대감을 알고 계신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피하지 않으시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시어 성전에서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당신께서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파견된 구세주이심을 알립니다. 사람들은 나자렛 출신 예수가 어떻게 메시아가 될 것인지 의아해 합니다. 유다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모욕과 고통으로 시험해 보고 수치스러운 죽음을 안기고자 합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영원하신 삼위일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친교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시는 수난과 죽음의 길을 진실하신 하느님께서 보증하십니다. 하느님의 아들은 그 길을 거쳐야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이 사람들에게 영원히 보장된다는 것을 아십니다. 하느님의 신비,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신비를 체득하게 됩니다. 악인은 영혼의 눈이 멀어 이 신비를 알아듣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신비를 알게 됩니다.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일치 안에서 그분께서 영원으로부터 가지고 계신 신성을 알아보게 됩니다. 이성의 차원에서 시작되지만 더 깊이 들어갈수록 사랑의 차원으로 올라갑니다. 십자가의 수난에 대한 지식은 회개와 희생의 삶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알수록 그분을 사랑하고 십자가의 길을 따르게 됩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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