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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원이란 천 년이 한 순간 같고 한 순간이 천 년과 같은 것---롤하이저 신부님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18-04-07 조회수3,447 추천수1 반대(0) 신고

상대성 이론은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보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시간과 공간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다르게 보이며

 

항상 꼭 같은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을뿐더러

 

항상 같은 식으로 느끼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이론은

상대적으로 속도가 빠른 물체의 시간이 더 늦게 흐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시간은 멈춰 서 있을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영원성을 생각하면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138억년 전 우주가 대폭발을 일으킨 후에

시계는 마치 계량기처럼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시간은 영원 속에서는 다를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실제로 하늘나라에서는 시간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를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한 것처럼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과연 시간을 어떻게 느끼게 될까요?

우리가 방금 인정한 것처럼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유명한 독일의 성서학자 게르하르트 로핑크(Gerhard Lohfink, 1934- )

최신판『Is This All There Is: On Resurrection and Eternal Life』에서

우리는 때때로 영원 속에서 시간을 느끼는 것처럼 시간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로핑크에 의하면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때마다 하늘나라의 시간을 맛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에 의하면 가장 훌륭한 기도는 찬양기도(adoration prayer)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고 왜 최고의 기도가 될까요?

로핑크 예수회신부는 “우리는 하느님을 찬미와 흠숭할 때에만 아무것도 청하지 않게 됩니다.

내가 하느님 앞에서 슬퍼하는 것은 나의 고통이 시작될 때이며,

내가 하느님께 무언가를 청원할 때에는 나에게 문제가 있을 때이므로 하느님께 무언가를 청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것은 안타깝게도 내가 무언가를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찬미와 흠숭하는 것은 자기를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만 바라보게 됩니다.”하고 답했습니다.

 

(역자 주; 가톨릭 교리서는 찬미와 흠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찬미는 그리스도인 기도의 기본 움직임을 드러낸다. 찬미는 하느님과 인간의 만남이다. 찬미 안에서 선물을 주시는 하느님과 이 선물을 받아들이는 인간이 서로 대화하며 결합한다. 찬미 기도는 하느님 선물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 하느님께서 강복해 주시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모든 축복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찬미를 드릴 수 있는 것이다(2626).

 

이 움직임은 두 가지 기본 형태로 나타난다. 그 하나는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께 올라가는 움직임 곧 찬미이다(우리에게 강복하셨기에 우리는 성부를 찬미한다). 또 하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부에게서 내려오시는 성령의 은혜를 간청하는 것이다(성부께서는 우리에게 강복하신다)(2627).

 

흠숭은 창조주 앞에서 피조물임을 깨달은 인간이 취하는 기본 자세이다. 흠숭은 우리를 지어 내신 주님의 위대함과, 우리를 악에서 구해 내시는 구세주의 전능을 드높이는 것이다. 흠숭은 영광의 임금님앞에서 인간이 마음을 쏟아 꿇어 엎드리는 것이며, ‘언제나 더욱 위대하신하느님 면전에서 존경 어린 침묵을 지키는 것이다. 지극히 거룩하시며 최고의 사랑을 받으셔야 할 하느님에 대한 흠숭은 우리를 겸손 되게 하고, 우리의 간청에 대한 확신을 심어 준다(2628).”)

 

 

 

분명히 한탄하고 청원하고 감사하는 것도 훌륭한 기도이기는 합니다.

예로부터 가장 훌륭한 기도는 하느님께 마음을 들어 올리는 것이지만

우리 마음 속에는 항상 한탄과 청원과 감사하는 마음이 있으며

예수님께서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며 언제든지 청하기만 하면 들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한탄과 청원과 감사기도도 훌륭한 기도이지만 이들 기도 속에는 자기를 위하고

자신이 필요한 것을 청하고 기쁨을 청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찬미와 흠숭할 때에는 하느님만 바라보게 되고,

하느님의 장점과 선하심과 진리나 한 분뿐이라는 것만 생각하게 되므로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진정으로 기적을 느끼고 진심으로 하느님을 찬미 흠숭하고

자기를 버리고 진정으로 경외심을 느끼고 심적 고통과 괴로움을 떨쳐버리게 됩니다.

 

 

 

자기를 버린 상태를 무아지경(無我之境, ecstasy)’이라고 말하며

그리스어 ‘EK STASIS’는 자신의 바깥에 서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찬양기도를 할 때에는 무아지경에 있게 됩니다. 이른바 자기가 없는 경지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무아지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안에서 황홀경을 느끼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무아지경은 정 반대이며 하느님을 찬미 흠숭해야만 맛볼 수 있습니다.

 

 

 

로핑크 신부는 찬미흠숭은 참된 무아지경을 얻게 할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찬미흠숭의 기적 속에 있게 되면 하느님과 함께 있는 것이 되고

시간과 영원의 경계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하여 하느님을 찬미흠숭하는 것은 영원한 축복을 받은 것이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는 항상 어떤 일을 하고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비난하고 간섭하고 변화하고 발전하고 무언가를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언제나 그러합니다.

그러한 일을 마치 의무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기를 죽이고 하느님께로 가게 되면 아무 일도 할 일이 없게 됩니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놀라움이므로 하느님만 바라보면서 찬미흠숭만 하게 되며

상상할 수도 없었던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따라서 찬미흠숭을 하게 되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느님을 창조주로 주님으로 생각하고 모든 영광과 찬양을 드리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뿐만 아니라 세상에 모두 드러내어놓습니다.

미 흠숭은 자신의 모든 삶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며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찬미 흠숭은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송두리째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찬미 흠숭하면서 살게 되면 영원이 시작되게 됩니다.

세상을 멀리하지 않고 세상에 자기를 완전히 열어젖히게 됩니다.”

 

 

 

시간을 멈추게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경외하면서 찬미 흠숭하게 되면 시간이 멈춰 서게 됩니다.

그 순간 자기를 버리고 참 사랑을 하게 되고 하늘나라를 미리 맛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에 있게 됩니다. (역자 주; 사랑하고 사랑 받는 시간은 짧지만 미워하고 분노하는 시간은 길게 마련입니다.

불교에서는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괴로움의 길이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해탈(解脫)을 하게 되면 고통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에서는 성령을 받고 구원 받게 되면 모든 일이 기쁘게 되고 평화롭게 되므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됨으로써

 

천 년이 한 순간 같고 한 순간이 천 년과 같은 영원을 맛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찬미흠숭하고 있는 순간에는

 

시간이 멈춰 서 있게 되고 하늘나라에 있게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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