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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슬기로운 전례상징: 견진의 상징 - 도유와 성령칠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07-03 조회수3,411 추천수0

[슬기로운 ‘전례상징’] 견진의 상징: 도유와 성령칠은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 되게 하는 성령!

 

 

보통, 사람들 사이에 서로를 위해 축하하거나 기억하는 날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태어난 날인 생일(生日), 돌아가신 날인 기일(忌日), 부부라면 결혼기념일이 있지요. 여기서 성장 과정에서 성숙한 날을 기념하는 성인식(成人式)도 있습니다. 성인이 됨은 청소년이 유년기를 거쳐 성인으로 인정받는 법적인 효력을 지니는 시기라고 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따로 성인식을 해주지는 않지만, 17세가 되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거나 18세가 되어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에 축하해줍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사회에서 성숙한 한 인격체임을 인정받음과 동시에 그에 따르는 사회적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책임도 주어집니다.

 

세례가 그리스도교에서 ‘영적인 탄생’이라면 견진은 성숙한 ‘영적인 어른’이라는 것을 인정받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 되어야 하는 사명을 부여받는 성사입니다. 주교님의 ‘안수와 도유’로 성령을 받아 영적으로 성숙한 어른으로 인정받아, ‘대부(代父), 대모(代母)’의 자격을 부여받는 견진의 상징에서 도유에 사용되는 성유(聖油)와 그와 더불어 수여되는 성령칠은(聖靈七恩)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성령 수여의 상징인 안수와 도유!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교 입문을 위한 일반적인 과정으로써 세례와 구분되어 성령을 수여하는 고유한 예식은 나타나지 않고, 대신 세례를 통해 성령이 선사된다고 증언합니다. 사도 바오로에 따르면, 세례는 성령의 수여까지 의미하며(1코린 6,11), 요한복음은 “물과 영”을 통한 탄생(요한 3,5)에 대해 말하면서 성령이 세례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성령의 수여와 세례를 분리하여 말하는 대표적인 구절은 사도행전 8장 14-17절로, 여기에서는 사도들의 안수를 통한 성령의 수여를 세례의 완성으로 이해합니다.

 

또한 세례와 결부되어 성령의 수여를 의미하는 ‘도유(塗油)’에 대한 언급도 있습니다. “우리를 여러분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세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어 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인장을 찍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셨습니다”(2코린 1,21-22; 참조 1요한 2,20.27). 여기서는 도유, 성령 전달이 ‘인장(印章)’이라는 표현과 연결되는데, 인장이라는 말도 고대 사회와 종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유다교에서는 할례를 계약의 인장으로 해석했습니다.

 

 

함께 이루어졌던 세례와 견진의 분리!

 

3세기 말까지는 주교가 파스카 성야나 성령강림 전야에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3세기 초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히폴리투스의 ‘사도전승’ 21장이 증언하듯이 세례 대상자가 사제의 인도로 침례를 받고 나면 주교는 그에게 안수를 하고 성유를 바르고 이마에 십자 표시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세례와 주교의 안수가 서서히 분리됩니다.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의 자유가 선포되어 신자들이 급증하게 되면서 세례가 자주 베풀어졌고, 주교가 있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에도 본당들이 많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사제나 부제가 세례성사를 집전하고, 주교의 안수는 따로 이루어져서 세례와 안수가 시간적으로 분리되는 현상이 일반화되었습니다. 서방 교회는 새 신자들과 주교의 일치를 더욱 분명하게 표현해 줍니다.

 

성 빅토르의 후고(+1141)는 주교의 안수를 ‘견진’이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안수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로 견진(confirmatio)이라고 부른다. 이를 통하여 그리스도 신자는 안수를 받고 이마에 크리스마 성유로 도유된다. 사도들의 대리자인 주교들만 신자들을 인증하며 성령을 전해 줄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경에서 읽은 바로 같이 초기 교회에서는 사도들만이 안수를 통해 성령을 전해 주는 권한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령 특은의 인호를 받으시오”

 

교황 바오로 6세는 ‘견진 예식’을 개정하면서 견진성사의 본질에 잘 부합하도록 성사 양식문을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견진성사는 이마에 축성 성유를 바름으로써 주어지며, 기름 바를 때 그 손으로 안수하면서, ‘성령 특은의 인호를 받으시오’하고 말한다.”

 

‘성령 특은’은 무엇일까? 견진의 본질적인 도유와 한 손 안수 전에 하는 주교의 기도에서 일반적으로 성령칠은이라고 하는 은사들을 청합니다. “… 이들에게 보호자 성령을 보내주소서. 지혜와 통찰의 영, 식견과 용기의 영, 지식과 공경의 영, 주님을 경외하는 영을 보내주소서.” 성령칠은은 이사야서 11장 2절을 기반으로 하며, ‘일곱’이란 숫자는 ‘충만함, 완전함’을 뜻합니다.

 

‘지혜’는 ‘모든 것을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은총’입니다. ‘통찰’은 ‘하느님의 지극히 깊은 뜻과 그분의 구원 의지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식견’은 일명 ‘깨우침’으로 예수님과 그분 복음의 논리에 따라 우리의 양심이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 구체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용기’의 은사는 우리 마음을 구속하는 온갖 두려움과 무감각함과 불확실함에서 해방시켜 주시고, 주님의 말씀을 기꺼운 마음으로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지식’은 피조 세계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과 그분의 위대하심, 모든 피조물과 그분 사이의 깊은 관계를 파악하도록 우리를 이끌어주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공경’의 은사는 우리와 하느님의 깊은 관계를 드러내 주며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여 몹시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우리를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 굳건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에 감사와 찬미를 불러일으킵니다. ‘경외’의 은사는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과 그분 사랑 앞에서 참으로 작은 존재라는 것과 신뢰와 공경의 마음으로 겸손하게 하느님의 손에 우리 자신을 내맡기는 데 우리의 행복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시는 성령의 선물입니다.

 

십여 년 전에 읽었던 ‘무탄트 메시지’(말로 모건 지음)에서 호주 원주민 ‘참사람 부족’은 일 년마다 생일을 기념하는 문명인들을 이상하게 여기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생일이 아니라 나아지는 걸 축하한다. 작년보다 올해 더 지혜로운 사람이 되었으면 그걸 축하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자기 자신만이 알 수 있다.”견진을 받았다는 사실보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성숙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견진성사를 통하여 신앙인들이 성령 안에서 영적 성숙을 이루어 하느님의 참된 증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교회에게 바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나 멸망할 사람들에게나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2코린 2,15)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7월호, 윤종식 디모테오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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