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6월 21일 목요일(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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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06-21 | 조회수2,127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6월 21일 목요일 [(백)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알로이시오 곤자가 성인은 1568년 이탈리아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군인이 될 처지였던 그는, 귀족 사회의 폭력과 방종에 실망하고 선교사에 대한 열망으로 가득 찼다. 그는 17세 때 재산 상속의 모든 권리를 포기한 채 로마에서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성인은 로마 전역에 흑사병이 번지자 환자들을 정성껏 돌보다가 감염되어, 1591년 23세의 젊은 나이에 신학생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다. 1726년 베네딕토 13세 교황은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며 청소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말씀의초대 집회서의 저자는,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 살아생전에 기적들을 일으켰고, 죽어서도 그의 업적은 놀라웠다고 전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할 때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라며 기도를 가르쳐 주신다. ◎제1독서◎
<엘리야가 소용돌이에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 굶주림을 불러들였고 수를 감소시켰다. 하늘을 닫아 버리고 세 번씩이나 불을 내려보냈다. 얼마나 큰 영광을 받았습니까? 있겠습니까? 죽음에서 일으키고 말씀에 따라 그를 저승에서 건져 냈습니다. 멸망으로 몰아넣고 멸망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꾸지람을 듣고 호렙 산에서 징벌의 판결을 들었습니다. 기름을 부어 복수하게 하고 당신의 후계자로 삼았습니다. 불 마차에 태워 들어 올려졌습니다.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자식에게 되돌리며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 잠든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살아날 것입니다. 휩싸일 때 엘리사는 엘리야의 영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어떤 통치자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어렵지 않았으며 잠든 후에도 그의 주검은 예언을 하였다. 기적들을 일으켰고 죽어서도 그의 업적은 놀라웠다. ◎화답송◎ 시편 97(96),1-2.3-4.5-6.7 (◎ 12ㄱ)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땅은 즐거워하고, 수많은 섬들도 기뻐하여라. 흰 구름 먹구름 그분을 둘러싸고, 정의와 공정은 그분 어좌의 바탕이라네.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둘레의 적들을 사르는구나. 그 분의 번개 누리를 비추니, 땅이 보고 무서워 떠는구나.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밀초처럼 녹아내리네. 주님 앞에서 온 땅이 녹아내리네. 하늘은 그분 의로움을 널리 알리고, 만백성 그분 영광을 우러러보네.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헛것으로 으쓱대는 자들 모두 부끄러워하리라. 모든 신들이 그분께 경배드리네. ◎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기뻐하여라. ◎복음환호송◎ 로마 8,15 참조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네. ◎복음◎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복음입니다. 6,7-15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이렇게 기도하여라.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오게 하시며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허물을 용서하면,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오늘의묵상◎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던 엘리야 예언자는 죽을 때도 불 병거를 타고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갑니다. 예수님께서 타보르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실 때, 엘리야는 예언자를 대표하여 그분께서 참메시아이심을 증언합니다. ‘아빠, 아버지’로 계시하십니다. 그분께서는 겟세마니에서 고통 가운데 기도하십니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마르 14,36). 예수님께서는 가장 고통스러운 수난을 앞두고 하느님 아버지와 지극한 친밀감 가운데 온전히 의탁하는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사람들에게 율법에 대한 헌신과 사랑을 일깨워 준 엘리야도 하느님을 이렇게 친밀하게 부를 특권을 누리지 못하였습니다. 표현이 많은 율법 학자들의 기도에서 발견되지만, 그 친밀감과 의미는 아주 다릅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창조주를 단순히 아버지로 부르는 것일 따름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아버지’의 참뜻은 천지 창조 이전부터 성부와 성자께서 누리시던 친교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말씀, 외아드님이신 분’께서 완전한 사랑과 일치 안에서 부르시는 호칭입니다.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게 됩니다(루카 11,2 참조). 그리스도인들도 그 이름을 부르는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로마 8,15; 갈라 4,6 참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방인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고, 자녀의 특권으로 하느님을 다정하게 부르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하십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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