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7월 30일(겨자씨는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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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07-30 | 조회수1,386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7월 30일 [(녹) 연중 제17주간 월요일]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아마포 띠를 강가에 숨겨 두고 썩게 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의 교만을 썩혀 버리겠다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고 누룩과 같다며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제1독서◎ <이 백성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 띠처럼 되고 말 것이다.> 허리에 두르고 물에 담그지 마라.” 나는 띠를 사서 허리에 둘렀다. 두 번째로 나에게 내렸다. 가지고 일어나 유프라테스 강으로 가거라. 띠를 숨겨 두어라.” 나는 유프라테스 강으로 가서 띠를 숨겼다.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명령한 띠를 가져오너라.” 흙을 헤치고, 숨겨 둔 곳에서 띠를 꺼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었다. 다시 나에게 내렸다. 예루살렘의 큰 교만을 그처럼 썩혀 버리겠다. 내 말을 듣기를 마다하고, 다른 신들을 좇아 다니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 띠처럼 되고 말 것이다. 허리에 붙어 있듯이 온 유다 집안을 나에게 붙어 있게 한 것은 명성과 칭송과 영광을 얻게 하려고 한 것이다. 순종하지 않았다.” ◎화답송◎ 신명 32,18-19.20.21 (◎ 18ㄱ 참조) 하느님을 저버렸다. 바위를 저버리고, 너희를 세상에 내신 하느님을 잊어버렸다. 주님은 보시고 분노하시어, 당신 아들딸들을 물리치셨다. ◎ 너희는 너희를 낳으신 하느님을 저버렸다. “나는 그들에게 내 얼굴을 감추고, 그들 끝이 어떻게 되는지 두고 보리라. 그들은 타락한 세대, 불충한 자식들이다.” ◎ 너희는 너희를 낳으신 하느님을 저버렸다. 나를 질투하게 하고, 헛것들로 나를 분노하게 하였다. 나도 내 백성이 아닌 자들로 그들을 질투하게 하고, 어리석은 민족으로 그들을 분노하게 하리라. ◎ 너희는 너희를 낳으신 하느님을 저버렸다. ◎복음환호송◎ 야고 1,18 참조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피조물 가운데 첫 열매가 되게 하셨네. ◎복음◎ <겨자씨는 나무가 되고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인다.> 복음입니다. 13,31-35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31 말씀하셨다. 가져다가 자기 밭에 뿌렸다. 씨앗보다도 작지만, 자라면 어떤 풀보다도 커져 나무가 되고 그 가지에 깃들인다.”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하늘 나라는 누룩과 같다.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고,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나는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리라. 숨겨진 것을 드러내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오늘의묵상◎ 예수님의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하늘 나라가 다가오는 비밀을 알려 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일 정도로 성장한다.’ ‘적은 누룩이 밀가루에 들어가면 부풀어 올라 빵을 만들어 낸다.’ 이 말씀은, 하늘 나라는 현실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아도, 일단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겨자씨와 누룩처럼 자라나서 이전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하느님 안에 살아가는 기쁨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느님 사랑에 푹 빠져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경 말씀이 달다는 이들, 성당에 가는 발걸음이 행복하다는 이들, 봉사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이 세상의 돈벌이보다 행복하다는 이들도 있습니다. 사제들이 미사와 강론, 성사를 집전하는 기쁨으로 살고, 수도자들이 분주함 속에서도 기도하며 고유한 은사를 교회와 세상 안에서 나누며 살 때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이 됩니다. 예언자의 표징처럼, “사악한 백성이 내 말을 듣기를 마다하고, 제 고집스러운 마음에 따라 다른 신들을 좇아 다니며 그것들을 섬기고 예배”한다면, 바위 틈새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다가 썩어 버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띠처럼 될 수 있다는 경고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심판을 받을 날이 온다면, 내가 하느님 나라의 겨자씨와 누룩을 간직하고 살았는지, 썩어 쓸모가 없어진 띠처럼 하느님을 외면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의 인생에 책임을 져야 할 순간이 될 것입니다. 그날에 무슨 말을 하게 될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깨어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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