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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독서 (에제1,2-5.24-28ㄷ)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13 조회수1,338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19주간 월요일 독서 (에제1,2-5.24-28ㄷ)

 

 

 

 

"그들의 머리 위 궁창 위에는 청옥처럼 보이는 어좌 형상이 있고,

 

 그 어좌 형상 위에는 사람처럼 보이는 형상이 앉아 있었다.

 내가 또 바라보니,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위쪽은

 빛나는 금붙이와 같고, 사방이 불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아래쪽은 불처럼 보였는데,

 사방이 광채로 둘러싸여 있었다."  (26-27)

 

본문은 궁창 위의 한 아름다운 어좌의 형상에 대한 묘사이다.

어좌가 궁창 위에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초월성을 나타낸다.

즉 궁창이 모든 피조 세계를 하느님의 영광의 어좌 아래에 위치하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존재의 초월성과 위엄성을 과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궁창 위의 세계는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후서 12장 1-4절에 기록한,

그가 환시중에 다녀온 셋째 하늘이며, 사도 요한이 묵시록 4-6장에서 기록한,

열린 문을 통해 들어가는 천국과 동일하다.

 

에제키엘은 그 궁창 위에 어좌의 '형상'이 있다고 기록한다.

이 형상은 그것이 이 땅에 있는 왕들이 앉는 궁전의 어좌(throne)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것이지,

정확히 그것이라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 어좌 형상의 모양이 마치 청옥처럼 보인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청옥'에 해당하는 '에벤 쌉피르'(eben saphir)라는 단어는 대부분 영역본에서는

푸르스름하며 투명할 뿐 아니라 광채를 발하는 보석인 '사파이어'(sapphire stone)

번역하였다. 하느님의 어좌를 이 보석에 빗댄 것은 그 어좌의 거룩함과 순결성

부각시켜 표현하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한편 어좌 위의 한 형상이 있으며, 사람처럼 보이는 형상이 앉아 있었다는 것은

정확하게 사람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단지 에제키엘이 목격한 존재가

이 지상의 사람의 모양을 닮았다는 것에 강조점이 있다.

 

이 형상은 강생(육화;Incarnatio)하기 전, 천상에서 신적 신분으로 존재하셨던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사람'에 해당하는 '아담'(adam)은 하느님께서 태초에 자신의 형상과

모습대로 만든 '사람' 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 단어이다(창세1,26).

이 동일한 단어가 어좌 위에 계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사용되었다는 것은

그가 장차 그런 사람의 모습으로 강생(육화)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필리2,8).

 

 

'내가 또 바라보니, 그의 허리처럼 보이는 부분의 위쪽은

 빛나는 금붙이와 같고,사방이 불로 둘러싸인 것 같았다.'

 

여기에 묘사되고 있는 사람 모양 같은 형상, 즉 강생(육화) 이전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은

다니엘이 티그리스 강가에서 보았던 그 형상과 외관이 유사하며(다니엘10,5.6),

에제키엘서 8장 2절에 기록된 주님의 권능의 현현을 묘사한 것도 유사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것은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하느님의 모습(1티모6,16)

연상시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여기서 '불'에 해다하는 '에쉬'(esh)는  육신을 가진 인간이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며

위엄과 두려움, 심판 등을 상징한다. 그리고 본문에서 '사방이' 란 표현은 그 사람 모양의 형상이

온통 불 같은 것으로 휩싸여 있다는 사실을 강조해 준다.

 

또한 '빛나는 금붙이와 같고' 에 해당하는 어구 '케엔 하쉬말'(keen hashimal)

에제키엘서 1장 4절에서도 사용된 어구로서, 문자적으로는 '번쩍거리는 호박 같은 것'

(like gleaming amber) 또는 '이글거리는 금속같은 것'(like gleaming metal)이란

의미를 지닌 표현이다.

 

이것은 사람의 육안으로 감히 쳐다볼 수 조차 없는 하느님의 영광을 묘사한 것이다.

따라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를 그대로 묘사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사방이 광채로 둘러싸여 있었다.'

 

신적 존재 자체가 찬란한 광채를 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사도 요한은 파트모스 섬에서 본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태양이 힘있게 비치는 것 같은 모습을 보고서 엎드렸다(목시1,16.17).
사람의 모양같은 형상에서 이처럼 눈부신 광채가 비추는 것은 그가 빛 되신 하느님의

영광의 광채이시기 때문이다(히브1,3).

 

그 자신 역시 그 빛을 반영하는 빛과 동일한 존재이신 강생 이전의

성자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요한1,9-12).

이러한 하느님의 영광의 현현은 그분의 찬란한 영광뿐 아니라 그분의 빛으로만

이 세상의 어두움이 소멸될 수 있음을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요한8,12).


 

“여러분의 스승님은 성전 세를 내지 않으십니까?”

(마태17,24)

 

베드로가 “내십니다.”

(마태17,25)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다면, 

내 신하들이 싸워 내가 유다인들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다.” 

(요한18,36)

 

곰곰히 생각해 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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