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8월 16일(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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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08-16 | 조회수1,402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8월 16일 [(녹)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말씀의초대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이스라엘이 유배를 당해 끌려갈 것을 미리 보여 주는 예표로 삼으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해야 한다고 하시며,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임금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제1독서◎ <대낮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유배를 가거라.> 말씀입니다. 12,1-12 너는 반항의 집안 한가운데에서 살고 있다. 들을 귀가 있어도 듣지 않는다. 보는 앞에서 유배를 가거라. 네가 사는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유배를 가거라. 그들이 깨달을지도 모른다. 대낮에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내어놓았다가, 유배를 떠나듯이 떠나라. 벽을 뚫고 나가라. 보는 앞에서 짐을 어깨에 메고 나가는데, 위한 예표로 삼았다.” 대낮에 내어놓았다가, 짐을 어깨에 메고 나갔다.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반항의 집안인 이스라엘 집안이, 하고 너에게 묻지 않았느냐?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수장과 그 안에 있는 온 이스라엘 집안에 관한 것이다.’ ‘나는 여러분을 위한 예표입니다. 그들에게 일어날 것입니다. 끌려갈 것입니다.’ 어두울 때에 짐을 어깨에 메고, 벽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 나갈 것이다. 않으려고 얼굴을 가릴 것이다.” ◎화답송◎ 시편 78(77), 56-57.58-59.61-62 (◎ 7ㄴ 참조) 높으신 하느님을 시험하고, 그분께 반항하며, 그분의 법을 지키지 않았네. 그들의 조상들처럼 등 돌려 배신하고, 뒤틀린 활처럼 어긋나 버렸네. ◎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그분의 화를 돋우고, 우상을 세워 그분을 진노케 하였네. 하느님은 들으시고 격노하시어, 이스라엘을 아주 버리셨네. ◎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사로잡히게 하시고, 당신의 영광을 적의 손에 내주셨네. 당신 백성을 칼에 넘기시고, 당신 소유에게 격노하셨네. ◎ 하느님의 업적을 잊지 마라. ◎복음환호송◎ 시편 119(118),135 빛나게 하시고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복음◎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복음입니다. 18,21─19,1 예수님께 다가와,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에게 대답하셨다.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자기 종들과 셈을 하려는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만 탈렌트를 빚진 사람 하나가 끌려왔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자신과 아내와 자식과 갚으라고 명령하였다. 엎드려 절하며, 제가 다 갚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놓아주고 부채도 탕감해 주었다.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을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났다. 멱살을 잡고 ‘빚진 것을 갚아라.’ 하고 말하였다. ‘ 제발 참아 주게. 내가 갚겠네.’ 하고 청하였다.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다. 빚진 것을 다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다. 일을 보고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그 일을 죄다 일렀다. 불러들여 말하였다. 나는 너에게 빚을 다 탕감해 주었다. 자비를 베푼 것처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 주인은 그를 고문 형리에게 넘겨 빚진 것을 다 갚게 하였다.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이 말씀들을 마치시고 갈릴래아를 떠나, 유다 지방으로 가셨다. ◎오늘의묵상◎ 용서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욕과 비방과 무례한 언동 앞에서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여 본때를 보여 주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가장 일반적이고 더 쉬운 것은 원한을 품고 있을 때 때맞춰 복수하는 것입니다. 복수는 모욕당한 사람의 쾌락이자 즐거움이고, 원한으로 가득 찬 증오는 나약한 이들의 유일하고 확실한 재산입니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일은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용서하고 진실한 사랑과 화해로 폭력의 악순환을 없애는 것입니다. 더 탁월한 것은 용서하고 용서받는 체험입니다. 사랑으로 충만한 존재로서 사랑을 받고 자유를 누리며 권리를 회복한 이들임을 느끼려면 용서를 체험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사랑으로 용서받았다는 기쁨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는 동태 복수법과 증오의 법을 용서와 사랑의 법으로 바꿀 줄 모릅니다.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면 용서하는 일이 가능합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용서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용서는 우리가 다른 이들에게 베푸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실을 주님의 기도를 통해 가르쳐 주셨고 우리는 계속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빚) 를 용서하시고”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빚을 갚을 수 없는 죄인이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빚)를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치른 우리는 속량을 받았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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