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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연중 제20주일 제1독서(잠언9,1~6)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8-19 조회수1,640 추천수0 반대(0) 신고

 

 

   연중 제20주일 제1독서(잠언9,1~6)

 

 

 

 

 

"지혜가 일곱 기둥을 깍아 자기 집을 지었다. 짐승을 잡고 술에 향료를 섞고 상을 차렸다.(1~2)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시라.(5)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예지의 길을 걸으라."(6)

  

잠언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잠언 1~9장이 일정한 주제에 따라 체계적으로 구성되었다면,

잠언 10장 이후부터는 아무런 관련성없이 수집되고 편집된 잠언들로 이루어졌다.

 

잠언 1~9장은 다른 부분에 비해 체계적이고 신학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책 전체의 서론 역할을 하는 이 부분은 표제(1,1), 시작하는 말(1,2~7), 교훈 모음(1,8~9,18)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잠언 1~9장은 전체 작품을 이해하는 해석학적 기초가 된다.

잠언 1~9장이 보여 주는 종교적 성격('모든 지혜의 시작은 주님을 경외함'이라는 사상의 강조)은

잠언 10~31장의 내용이 다소 비종교적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결국 종교적인 내용들과

구별되지 않음을 전제하는 역할을 한다.

 

잠언 1~9장에서도 특별히 잠언 1장 2~7절은 책 전체를 요약하고 있는데, 잠언을 일종의

'교육서' 제시하며,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1,7)임을 대주제로 천명한다.

 

곧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참된 지혜이며, '행복의 시작'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1장 7절의 '주님을 경외함은 지식의 근원'이란 표현은 첫 번째 잠언집의 마지막 부분인

잠언 9장 10절에서 반복되고, 잠언 31장 30절에서도 다시 언급됨으로써, 일종의 수미(首尾)

상관적 구조를 형성한다.

 

잠언 8~9장에서는 숙녀 지혜 등장하는데, 지혜의 여성적 의인화 이 부분의 핵심이며,

그녀는 창조 때에 하느님의 협력자로서 활동했다고 소개된다.

 

새 성경의 잠언 9장을 보면, '지혜'라는 여인의 초대라는 제목으로 9장이 시작된다. 

 

'지혜가 일곱 기둥을 깍아 자기 집을 지었다. 짐승을 잡고 술에 향료를 섞고 상을 차렸다.'(1~2) 

 

본장은 잠언 1장 8절 이후부터 계속되어 온 젊은이들을 위한 솔로몬의 열다섯 가르침 가운데

마지막 가르침이다.

 

솔로모은 가르침을 마감하면서, 지혜로운 삶을 살기를 촉구하기 위해서 지혜의 초청(9,1~12) 및

'우둔함'이라는 여자의 초대(9,13~18)와 이에 따른 반응의 상반된 결과를 제시된다.

 

먼저 전반부인 잠언 9장 1~12절에서는 지혜를 의인화하여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초청하며,

이러한 초청에 대한 수락 여부에 따라 행복과 멸망이란 결과가 주어지게 됨을 선언한다.

 

잠언 9장 1절과 2절에서는 지혜가 사람들을 위하여 집을 짓고 잔치를 준비했음을 밝힌다.

 

여기서 주어진 '지혜'(호크모트; hokmoth; wisdom)복수형인 반면에 동사는 단수형이다.

이것은 지혜가 비록 복수 형태로 제시되었다고 하더라도, 단수임을 나타낸다.

 

이처럼 단수를 복수 형태로 제시하는 것은 지혜가 신적(神的) 탁월성을 지닌

완전한 지혜임을 보여 준다(1,20.22; 14,1; 24,7).

 

본절에서는 이러한 지혜가 집을 지었다고 묘사된다.

 

여기서 지혜의 집은 잠언 7장 27절('그 집은 저승으로 가는 길이라 죽음의 안방으로 내려가게

된다')에 나오는 저승으로 인도하는 간음녀의 집과 대조되는 것으로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집이다.

 

아울러 본문의 지혜를 그리스도로 본다면, 이 집은 강생(육화; Incarnatio)하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가리키는 것이 된다(요한 2,19.21.22).

 

한편, 이 집은 '일곱 기둥'('쉬브아 암무데하'; shibah ammudeha)이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성경에서 일곱(쉬브아; shibah)완전수로 종종 사용된다.

따라서 이것은 지혜의 완전성 혹은 그리스도의 완전성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사용된 동사 표현은 모두 완료형으로 표기되었는데, 이것은 지혜 혹은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초청할 준비를 이미 모두 완료하였음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잠언 9장 2절에서 지혜가 사람들을 청하기 위하여 짐승을 잡고 술을 만들어 

상을 차리는 모습 말하고 있다.

 

본절에서 동사를 세 번 사용하여 이처럼 잔치 준비 상황을 묘사하는 것 잔치상을 차리기 위해

지혜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이 잔치가 풍성한 잔치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특히 짐승을 잡은 사실이 언급되는 것 지혜의 초청으로 영적으로 풍성한 은혜를

맛볼 수 있게 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포도주(야인; yayin)를 혼합하는 것 포도주에 향료를 섞어 맛과 향기를 좋게 할

뿐 아니라 도수를 높이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지혜의 초청에 응하는 것이 상당한 영적 기쁨과 활력을 제공함을 암시한다.

 

그리고 '상을 차렸다'에서 '차리다'(갖추다)라는 의미로 번역된 '아레카'(arekah)의 원형

'아라크'(arak) '순서대로 놓다', '배열하다',' 정돈하다'(창세22.9; 레위1,7; 이사21,5),

'준비하다', '채비하다'(판관17,10)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지혜가 영적 영양분과 기쁨을 제공하기 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할 뿐만 아니라

질서있고 체계적으로 모든 것을 준비하였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이러한 표현이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너희는 와서  내 빵을 먹고 내가 섞은 술을 마시라.' (5) 

 

빵과 술 일차적으로 만찬상에 차려진 음식들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지혜와 예지(명철)를 의미하는 비유법적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지혜의 초청은 그 목적이 지혜와 예지를 교훈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잠언 9장 2절과 대응되는 표현이라 할 수 없다.

 

이렇게 지혜와 예지를,  먹는 음식인 빵과 포도주(술)라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나타내는 이유는

먹는 음식이 육신 생명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처럼, 지혜와 예지의 교훈을 받지 않으면

영혼이 영적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을 나타내 주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잠언 9장 6절에 나오는 '살아라'(생명을 얻으라; yheyu; live)는 구절이다.

 

한편, 본절을 구원사적인 측면에서 해석하여 빵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내어주신

그의 몸(성체)을, 포도주는 피(성혈)를 예표하고 있다(마태26,26~28; 오늘 주일 복음인

요한 6,53-58)고 보기도 한다.

 

즉 초대 교회 시대부터 본문은 그리스도의 찢기신 몸과 흘리신 피를 기념하는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성만찬을 예시하는 구절로 이해해 왔다. 

 

'어리석음을 버리고 살아라. 예지의 길을 걸으라' (6)

 

본절에서는 지혜와 만찬을 준비하고 교육 대상자들을 초청하는 분명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본절은 세 개의 명령으로 되어 있다.

'어리석음을 버리라'는 것이 첫번째 명령인데, 어리석은 자가 지니고 있는 어리석음 그 자체를

버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두번째 명령은 '살아라'(생명을 얻으라)는 것인데, 본문의 '생명'은 단순히 살아 숨쉬며

목숨을 연장하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니라, 튼튼하고 건강한 생명(3,8; 16,24; 17,22),

장수하는 생명(3,2.16; 10,27), 일상 생활에서 의미가 충만하고 활력 넘치는 생명을 지칭한다.

 

이처럼 지혜는 지혜를 얻는 자가 활력 넘치는 생명과 축복을 누릴 수 있음을 제시함으로써,

그 무엇을 추구하기 보다 지혜를 최우선적으로 추구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명령은 '예지의 길을 걸으라'이다.

여기서 '예지의'에 해당하는 '삐나'(bina)'이해하다', '통찰하다', '분간, 식별하다' 등의

의미를 지닌 '빈'(bin)의 명사형 표현이다.

 

이것은 어떤 일이나 사건 등에 대한 판단 능력 내지는 예민한 통찰력을 지칭하는 표현으로서

특히 선악(善惡)의 문제와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능력은 하느님에게서 온 선물 소개되며(다니2,20), 하느님의 말씀이나 뜻

깊은 관련을 지닌 것으로 묘사되며(잠언2,9; 시편111,10), 궁극적으로 주님을 경외하는 일(2,5),

정의와 공정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 그 능력은 구체적으로 표출된다.

 

그리고 '길을'에 해당하는 '뻬데레크'(bederek) '~안에'(in)란 의미를 지닌 전치사 '뻬'(be)

'길'이란 문자적 의미를 지니며 함축적으로 삶의 방식, 태도 등을 나타내는 '떼레크'(derek)

결합된 것이다.

 

따라서 '예지의 길'악을 피하고 선을 추구하는 삶,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하느님의 말씀과

뜻을 적용하며 바른 판단을 내리는 삶, 그리함으로 주님을 경외하며 정의와 공정을 구현하는

삶을 사는 것 나타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성체의 삶을 미리 예표하는 것이다.


2009/8/16 연중 제20주일

오늘까지만 제1독서를 올리고 당분간 쉽니다.

오늘의 복음이 중요하지만 독서 또한 중요합니다.

모든 교우님들께서 관심을 기울여 주시기를 희망하며

여기에 올려주시기를 바래 봅니다.

행복한 주일 되세요.

감사합니다. 살롬.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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