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헤로데는 요한을 붙잡아 감옥에 가두었다. 그의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 때문이었는데, 그가 이 여자와 혼인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요한은 헤로데에게, “동생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여러 차례 말하였다.’(마르 6,17-18 참조)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의 수난 기념일이다. 여자에게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단다. 사실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에 앞서 그분의 길을 닦고 준비한 위대한 예언자이다. 성인은 헤로데의 불륜을 책망하다가 그의 아내의 간계로 순교하였다. 그의 죽음을 기억한 것은 4세기 무렵부터 사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성인은 이렇게 해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인 것 같다.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보여 주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그의 일생은 철저하게 구세주의 앞날을 예고하는 삶이었기에, 그게 입증된 거다. 성인은 헤로데의 처와 그녀의 딸의 공모로 살해된 억울한 죽음을 당하셨다. 철저하게 구세주의 앞날을 준비하신 그 의로웠던 분이, ‘한 소녀의 춤 값’으로 희생되셨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죽음이 뜻하는 두 가지 성격을 볼 게다. 그의 마지막은 무죄한 이의 억울한 죽음이었다. 저항 한번 하지 못한 채 권력의 횡포에 소리 없이 목숨을 잃으셨다. 교회가 해마다 성탄 시기에 헤로데에 의해 죽은 죄 없는 아기들을 순교자로 이해하며 기억하듯, 성인의 죽음은 한 예언자의 운명적 사명에 충실한 완성이었다.

따라서 성인은 예언자의 전통에 따라 죽음마저 두려워하지 않고 불꽃처럼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이러한 그의 운명을 보면서, 역사 안에서 반복되는 지금 이 시대에도 끊이지 않는 죄 없는 이들의 희생이 떠올라 마음이 무겁다. 또한 권력의 횡포에서도, 주님께서는 죄 없는 이의 희생과 의인의 죽음을 잊지 않으시리라는 믿음을 되새기자.

사실 누구에게 따끔한 충고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그 대상이 권력자이거나 윗분일 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책임자 주변에는 충언을 해 줄 이 드물고 결정권자의 입맛에 맞장구나 치는 간사한 무리들이 늘 자리를 잡는다. 이런 일은 상하 관계가 존재하는 사회에서, 무릇 교회 안에서조차 일어날 수 있다. 결정권자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이 일수록 그 주변의 인물도 참 중요하다. 악은 늘 누군가를 희생시키니까.

의로운 성인을 보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체면 때문에 신의를 저버린 적은 없었는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는지를. 욕심은 언제나 부패하기 마련이고 거기에 쉽게 물든다. 우리는 부패된 세상이라는 탓보다는 스스로 빛이 되어 어둠을 밝히는 신앙인이었으면 한다. 세례자 요한 성인은 그 누구보다도 예수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셨고, 그런 만큼 예수님께서 걸으실 길을 미리 준비한 분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