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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뒤집어 읽는 달란트와 금화의 비유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01 조회수4,444 추천수0 반대(0) 신고

뒤집어 읽는 달란트와 금화의 비유

루가 19.11-27

 11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신 것을 보고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 하나를 들려 주셨다12 '한 귀족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금화 한 개씩을 나누어 주면서 '내가 돌아 올 때까지 이 돈을 가지고 장사를 해 보아라' 하고 일렀다14 그런데 그의 백성들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대표를 뒤따라 보내어 '우리는 그자가 우리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고 진정하게 하였다15 그 귀족은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 오자마자 돈을 맡겼던 종들을 불러서 그 동안에 돈을 얼마씩이나 벌었는지를 따져 보았다16 첫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이 주신 금화 하나를 열 개로 늘렸습니다' 하고 말하자 17 주인은 '잘 했다. 너는 착한 종이로구나. 네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을 다했으니 나는 너에게 열 고을을 다스리게 하겠다' 하며 칭찬하였다18 둘째 종이 와서 '주인님, 주인님이 주신 금화 하나로 금화 다섯을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자 19 주인은 '너에게는 다섯 고을을 맡기겠다' 고 하였다20 그런데 그 다음에 온 종의 말은 이러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이 주신 금화가 여기 그대로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 두었습니다21 주인님은 지독한 분이라 맡기지도 않은 것을 찾아 가고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시기에 저는 무서워서 이렇게 하였습니다.' 22 이 말을 들은 주인은 '이 몹쓸 종아, 나는 바로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벌주겠다. 내가 맡기지도 않은 것을 찾아 가고 심지도 않은 것을 거두는 지독한 사람으로 알고 있었단 말이지23 그렇다면 너는 왜 내 돈을 돈 쓰는 사람에게 꾸어 주지 않았느냐? 그랬으면 내가 돌아 와서 이자까지 붙여서 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 하며 호통을 친 다음 24 그 자리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저자에게서 금화를 빼앗아 금화 열 개를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하고 일렀다.  25 사람들이 '주인님, 그 사람은 금화를 열 개나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하고 말하자 26 주인은 '잘 들어라. 누구든지 있는 사람은 더 받겠고 없는 사람은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27 그리고 내가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하던 내 원수들은 여기 끌어 내다가 내 앞에서 죽여라' 하고 말하였다.'

 

오늘은 여러분이 잘 아시는 금화의 비유와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들도 그렇게 만만한 비유는 아니에요 사실 오늘 이 두 비유를 확실하게 알려면 자캐오의 구원의 이야기, 소경 발토로메오의 눈 뜨는 이야기, 열 처녀의 비유 이야기까지 다 다뤄야 됩니다. 아니 어떤 면에 있어서는 루가복음에 전체 비유를 물 흐르듯 집어 내려와야 오늘 우리가 공부할 그 두 비유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를 할 수 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함께 읽은 금화의 비유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의 비유와 아주 흡사한 내용과 구조를 가지고 있는 비유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이 금화의 비유와 달란트의 비유가 같은 비유인데 마태와 루가가 각기 다른 용도로 재구성하고 재조합한 것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하고 어떤 학자들은 그 각각이 전혀 다른 곳에서 주어진 각기 다른 비유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두 비유가 하나의 비유이든 아님 각기 다른 곳에서 말씀을 하신 다른 비유이든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면 앞뒤 문맥을 살펴보면 그 두 비유는 모두 다 하느님의 나라 천국에 관한 비유라는 것이 명백하게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그 두 비유는 서로 상호 보완을 해주고 있는 비유인 거예요 많은 분들이 이 금화나 달란트의 비유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나누어 주신 은사나 능력이나 달란트를 잘 사용해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느님께 상급을 받자는 것으로 오해를 하고 계시죠 왜냐면 두 비유 모두 공히 이익을 남긴 종들이 칭찬을 받았거든요 아마 이 중에도 이 두 비유를 그렇게 정리를 하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실 거예요 아마 대부분이 그렇게 정리를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은사와 능력과 물질을 십분 발휘하고 사용하여 열심히 주인이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고 안간힘들을 쓰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 비유는 그것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제목을 거꾸로 뒤집어 읽는 달란트의 비유라고 쓴 것입니다.

여러분 여기 나오는 달란트를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단어 탤런트와 혼동하시면 안되요 그 시대에 달란트는 그냥 단순한 화폐 단위입니다 그런데도 그 달란트를 탤런트로 규정을 지어서 자신에게 주신 재능과 은사를 잘 활용을 해서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자라고 어이없는 해석들을 하고 있죠 만일 그런 거라면 아직까지도 자기가 어떤 은사를 갖고 있는지 발견도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합니까.

 

 여러분에게 주신 하느님의 은사가 뭔지 정확히 알고 계세요? 그리고 하느님을 위해 쓸 힘이나 물질이나 은사가 전혀 없어 보이는 그런 거지 나자로 같은 사람은 어떻게 해요 평생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빵부스러기만 주서 먹다간 그런 사람은 천국에서 전혀 상급을 기대할 수 없는 그런 사람들입니까? 만일 이 두 비유가 그러한 내용을 담고 는 거라면 이런 예수님에 말씀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되죠

루가복음 17장으로 가보세요 7 '너희 가운데 누가 농사나 양치는 일을 하는 종을 데리고 있다고 하자. 그 종이 들에서 돌아오면 '어서 와서 밥부터 먹어라' 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8 오히려 '내 저녁부터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고 나서 음식을 먹어라' 하지 않겠느냐? 9 그 종이 명령대로 했다 해서 주인이 고마와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10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 나서는 '저희는 보잘 것 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이거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거든요 이 말씀하시고 얼마 있다  이 금화 비유를 말씀하신 거라 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변덕이 죽 끓듯 하시는 분이에요 종은 주인이 시킨 일을 당연히 해야 하는 존재지 자기가 해 놓은 일을 근거로 주인에게 사례를 받거나 상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고 분명히 이야기 하고 계세요

그리고 상급이란 개념을 한번 잘 생각해 보세요 상급이 뭡니까 상이 뭐예요? 상이라는 건 다른 이들 보다 더 나은 환경 더 나은 소유 더 나은 평가 더 나은 잉여를 얻어내어서 비교상대적 우위를 누리고 즐기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하는게 상이잖아요  그러나 만일 천국에도 그러한 상급에 개념이 여전히 있다면 거기가 정말 천국이 될 수 있겠습니까 천국은 그곳을 사는 모든 백성들이 각자가 절대 만족과 절대 행복 속에서 사는 곳이에요 거기를 천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열과 비교와 차이와 격차가 있는 곳에 절대 만족과 절대 행복이라는 것이 공존할 수 있습니까? 차이가 있는데 우열이 있고 격차가 있는 곳에 어떻게 절대 만족과 절대 행복이 가능해요 생각해 보세요 천국이 그렇게 누구나 다 절대 만족과 절대 행복에 거하는 곳이라면 그곳에 상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모두가 다 절대 만족 절대 행복에 속해 있는데 상이라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거기에서

 

그러한 상급에 개념은 아직도 기복주의와 인본주의와 물질주의 성공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매한 신학자들이 내놓은 쓰레기 같은 개념인 겁니다.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하고 선행을 쌓아서 하느님을 기쁘게 하여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상을 받자이게 바로 개혁주의의 한계에요 개혁주의는 이미 너무 많은 타락을 해 버렸습니다 성경으로 돌아가야 되는 거예요 말씀으로 돌아가서 풍성한 하느님에 은혜와 자비를 찾아내고 붙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비유에서 이윤을 남긴 종들이 칭찬을 받고 또 여러 고을을 다스리도록 상을 받는 그 내용은 도대체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한번 추적을 해 보자구요


먼저 이 두 비유가 어떤 공통된 전제로부터 시작이 된다라는 것을 주목하셔야 돼요.  금화의 비유에서도 주인이 왕위를 받으러 타국으로 떠나고 달란트의 비유에서도 주인이 타국으로 떠나요 그리고 주인에 명령을 받은 이들은 모두 종입니다 그게 전제에요 그러니까 주인이 떠난 집에서의 종들에 삶 그것이 두 비유에 주된 내용인 거예요 그런데 금화의 비유에서는 주인이 타국으로 간 이유가 좀 더 선명하게 그려져 있죠

루가복음 1912-14절 보세요  12 '한 귀족이 왕위를 받아 오려고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금화 한 개씩을 나누어 주면서 '내가 돌아 올 때까지 이 돈을 가지고 장사를 해 보아라' 하고 일렀다. 14 그런데 그의 백성들은 그를 미워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의 대표를 뒤따라 보내어 '우리는 그자가 우리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하고 진정하게 하였다.

 

주인이 종들에게 돈을 맡기고 타국으로 간 이유가 나오는데 왕위를 받으러 가기 위함이래요 왕위를 받으러 타국으로 떠난 어떤 귀인의 이야기는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이야기였어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예수님이 오실 당시에 유대의 분봉왕은 헤롯 대왕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에돔 사람이에요 어머니는 유대인입니다 에돔사람은 에사오의 후예이거든요 유대인들이 그의 분봉왕 됨을 반겼겠습니까 결사반대했어요 ㅜ당시에 분봉왕은 반드시 로마 황제의 승인을 받아야 되는데 로마 황제가 헤롯 대왕을 유대의 분봉왕으로 승인을 해버린 거예요 유대인들이 당연히 반대했죠 3년 동안 헤롯대왕이 예루살렘에 대하여 전쟁을 선포하고 전쟁을 한 끝에 분봉왕이 되었어요 그리고 37년간 다스리다가 bc 2년에 죽고 bc 3년에 예수님이 나셨으니까 예수님이 난 걸 못보고 죽었을거 아니에요 bc 2년에 그 사람이 죽었으니까 역사서에 나오거든요

 

그렇게 죽으면서 유언을 남겼는데 자기가 다스리던 땅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세 아들에게 주었어요 하나는 헤롯 안티파스 그리고 하나는 헤롯 빌립 그리고 하나는 헤롯 아켈라오죠 아켈라오에게 많은 땅을 주고 아켈라오에게 왕위를 줬어요 그런데 그건 헤롯대왕의 유언이었지만 로마 황제가 승인을 안하면 말짱 꽝이에요 그래서 아켈라오가 왕위를 받은 아켈라오가 혼자 왕위를 받으러 로마로 떠났어요

그런데 이 아켈라오의 엄마는 또 사마리아 인이에요 아버지는 에돔사람 엄마는 사마리아 사람 유대인들이 환영을 했겠습니까 또 반대했어요 대표단을 파견을 해서 이 사람을 절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는 안됩니다라고 뒤로 사람을 보냈을 정도였어요 아켈라오가 그걸 다 알았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승인을 해 버렸어요 돌아가서 어떻게 해 버렸겠어요?  다 죽여 버렸어요 숙청을 해 버렸습니다.

 

바로 그 이야기를 예수님이 자기의 이야기에 오버랩 시키고 계시는 거예요 헤롯 아켈라오에게 쏟아진 유대인들에 그 미움과 그 질시와 그런 것들이 자기에게 그대로 투영이 될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던 거예요 물론 유대인들이 아켈라오를 왕으로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고 그를 미워했던 것과 예수님을 왕삼으려 하지 않고 그분을 미워했던 것은 질적으로 다른 이야기에요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들은 예수님을 아켈라오보다 더 미워했죠 왜 십자가에 매달아서 죽여 버렸잖아요

너는 우리의 왕이면 안되라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여버렸다니깐요 더 미워했어요 그리고 그분의 왕되심을 반대했을 뿐만이 아니라 한껏 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아켈라오에게는 감히 조롱도 못했어요 다 죽여 버렸으니까 그런데 예수님은 조롱까지 당했어요 바로 그 모습이 하느님을 대적하는 모든 죄인들에 실체임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들이 왜 그렇게 예수님을 미워하게 됐죠?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이 금화의 비유 바로 다음이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이에요 그때는 모든 유대인들이 호산나 호산나 하면서 예수님을 왕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로부터 1주일, 고 기간동안에 이들의 마음이 변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라 못 박아라했을까요

이 비유를 읽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비유가 어디에 떨어지는 거냐하면 이제 예수님이 곧 에리고에서 넘어가면 예루살렘이거든요 예루살렘에 입성을 하게 되면 그들이 원했던 민속 메시아처럼 강한 능력을 발휘하여 다윗 왕국을 회복시킬 거라고 이들이 굳게 믿고 있었는데... ? 풍랑을 잔잔케 하고 죽은 자를 살려내고 오병이어로 몇만명을 먹였으니까 그 능력이면 이제 다윗 왕국 회복은 눈앞에 온거라 말이죠

 

그런데 예수님이 자꾸 자기가 수난을 받고 죽어야 된다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수제자 베드로까지 막아선 것입니다 왜 죽어요 안됩니다 지금 나라를 회복해야 되는데 왜 죽는다 그러는 거예요왜 그 강력한 힘을 가진 당신이 왜 약함으로 자꾸 내려간다 그러십니까 죽으면 안 돼요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딱 일주일 만에 예수님이 진짜 죽어버렸어요 유대인들이 그를 왕 취급할 리가 있습니까 이 세상에 힘의 원리 속에 살면서 민속 메시아 강력한 힘을 가진 민속 메시아를 기다렸던 그들에게 이 어린양 같은 약하디 약한 이 예수라는 왕이 왕대접을 받을 수 있었겠냐구요

 

그런 나약한 모습은 유대인들이 수천 년 동안 기다리고 고대했던 그런 메시아도 아니였고 그들이 기대했던 민속 메시아의 이스라엘 재건 방법이 아니었어요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단호하게 당신에 강함을 비우시고 약함으로 당신에 나라를 세우시겠다고 반복하여 말씀하시고는 실행을 해버리신 거예요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을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아켈라오보다 더 미워한 거예요  이렇게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이 세상 속 아담의 무리들은요 그들 앞에 약함이 발각이 되면 그 약함을 향해 폭력을 휘두르는 속성이 있습니다. 십자가가 바로 그걸 들춰낸 거예요 이 세상에 힘의 원리 속에 물들어 있는 세상의 악마성을 들춰내버린 거예요 그게 십자가인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하느님의 심판의 대상인 거예요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를 구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도 나보다 약한 존재라면 나의 유익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라면 죽여버리는 폭력으로 죽여버리는 그런 악마성 그것을 갖고 있는 그 마귀에 세력 그 세상 전체가 바로 심판받을 존재거든요 하느님은 그걸 들춰내셔야 돼요 십자가로.... 그들에게는 약함이 곧 죄요 약함이 곧 악입니다

세상은 약함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약한 예수를 죽여 버리는 거예요 그들은 반드시 속아져서 심판을 받아야 돼요 왜나하면 그들이 바로 자신들을 우상삼아 살고 있는 하느님의 대적들이기 때문에 그래요 하느님은 이 세상에서 반드시 그들을 낱낱이 구별해 내어서 심판을 하셔야 돼요


그런데 예수님이 강력한 능력을 발휘하실 때에는 그들 모두가 예수님에 편인 듯 행동해요 왜 예수님 자체가 강함이거든요 그때에는 그들이 좋아하는건 힘이고 강함이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반드시 그들을 걸러내야 돼요

그래서 예수님은 약함과 비움과 당함과 섬김의 모습으로 세상과 당신에 백성들을 둘로 분류해 내시는 거예요 그게 십자가에요 그렇게 하느님 나라에 삶에 원리는 세상에 폭력성을 폭로시키는 힘과 효력이 있어요 그러나 그게 진짜 힘이고 그게 하느님 나라에 임금에 본질이요 속성인 거예요 약할 때 강함이 되는 원리, 그게 바로 하느님 나라에 삶에 원리에요. 그게 본질이에요 그리고 왕같은 제사장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여러분의 삶의 원리가 바로 그 삶의 원리여야 되는 거예요

 

예수님은 그렇게 당신 수난과 십자가에 의해서 하느님 나라를 성취해 내셨어요 그리고 그 나라의 왕이 당신임을 드러내셔버린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렇게 당신의 나라를 이루어 놓으시고 또다시 훌쩍 하늘나라로 떠나버리셨어요 이제 진짜 왕의 부재 상태가 되어 버린 거예요. 하느님 나라의 왕이 가시적 세상에서 부재 상태가 되어 버린 거예요 뿐만 아니라 하느님 나라 또한 겨자씨와 누룩처럼 감추어져 버렸어요 하느님 나라의 은닉성이죠  

베드로후서 33-4절 보세요 3 무엇보다도 먼저 여러분이 알아 두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곧 마지막 시대에 자기들의 욕정을 따라 사는 자들이 나타나서 여러분을 조롱하며 4 '그리스도가 다시 온다는 약속은 어떻게 되었는가? 그 약속을 기다리던 선배들도 죽었고 모든 것이 창조 이래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지 않으냐?' 고 말할 것입니다.

 

야 만물이 하나도 변한게 없어, 무슨 하느님이 다시와 거짓말하지마. 하느님이 계신데 넌 왜 그렇게 병에 걸렸니? 하느님이 계신데 넌 왜 그렇게 가난해, 야 예수 안 믿는 나도 이렇게 건강하고, 이렇게 부잔데 하느님이 어디 있어.?  조롱한단 말입니다 왕취급 안 하는 거예요 세상은요.  예수님은 왕도 아니고 다시 오지도 않을 거라는 거예요 그게 미끼를 물으는 것입니다 미끼를 문 세상인 거예요

그러한 확신 속에 세상이 대표단을 파견해서까지 그분의 왕되심을 반대하는 아켈라오의 왕됨을 반대했던 유대인 안에서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나 그분은 강력한 하늘 왕권을 소유한 채 지금 하느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세요 우리는 믿음으로 성도는 그걸 보는 사람이에요 세상은 그걸 못 봐요

 

사도행전 235-36절 보세요 35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 아래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36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온 백성은 분명히 알아 두시오. 여러분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를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주님이 되게 하셨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언제까지 예수님이 이 땅에서 자신에 부재성 자신에 은닉성을 풀지 않으시고 하느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래요  원수가 완전히 원수로 폭로될 때까지 죄가 완전히 죄라 드러날 때까지, 예수님은 은닉되어 계시는 거예요 숨어 계시는 거예요. 이세상에 부재상태로 미끼를 던져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 하늘 왕은 하느님을 대적하는 원수의 정체가 완전히 폭로가 될 때까지 당신을 은닉하시고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건 하늘 왕에 가시적 귀환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영적으로는 예수님이 이미 성령으로 우리 안에 와 계세요 그러나 그거는 믿음을 가진 이들만 보는 거잖아요.

진짜 가시적인 왕의 귀환은 죄가 죄로 완전히 구별이 되어버려서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될 때 그때 가시적으로 와서 심판해 버리는 거예요 문 딱 닫아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은 마음껏 보이지 않는 하늘의 왕을 조롱해요 그리고 그분을 부인합니다 그렇게 믿음을 부여받지 못한 세상은 은닉된 하늘 왕을 보지 못하고 그분의 부재속에서 자기들의 뜻과 야망과 비전을 쫓아서 자신이라는 우상을 섬기면서 자신들에 죄성을 낱낱이 폭로당해요 그게 악한 종들에 모습안에 들어있는 세상인 거예요

 

조금만 인내심을 갖고 들어보세요 그렇게 원수의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게 될 때 하늘 왕에 가시적 재림이 성취가 되는데요 마찬가지로 그렇게 예수님에 부재와 하느님 나라에 은닉속에서 세상에 죄성이 낱낱이 폭로가 될 때 그 세상이 갖고 있는 그 마귀적 성향이 어디에도 있어요 내 안에도 있다 말입니다  그렇게 세상이 그들의 죄성을 낱낱이 폭로 당할 때 나도 구원받은 우리 성도안에 마귀적 성향도 함께 폭로당하도록 되어 있어요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하늘 왕의 부재와 하늘나라의 그 은닉의 기간 동안에 우리의 죄성을 낱낱이 폭로당하고 하느님께 완전히 항복을 하는 자로 하늘 왕에 귀환을 맞게 되는 거예요 이게 바로 오늘 비유를 해석하는 아주 중요한 열쇠에요

잘 보세요 하늘 왕에 부재 기간인 말세에 기간 동안에는 끝까지 자기 자신의 배만을 위해 사느라 하늘 왕의 귀환을 조롱하면서 자신들에 죄와 악을 완전하게 폭로당하는 세상에 죄인들과 자신들에 마귀적 성향을 완전하게 폭로당하고 하느님 앞에 완전히 항복을 하게 되고 순종을 하게 되는 성도로 뚜렷이 이분이 되는 거예요 둘 다 그들의 어두움과 죄성을 마귀성을 폭로당하기는 마찬가지인데  

한쪽은 하느님을 향한 충성과 순종으로 돌아오고 믿음이 있는 자들은 순종과 충성으로 돌아오게 되고, 다른 한쪽은 계속해서 그 왕에 부재를 조롱하며 왕의 연약함을 조롱하며 여전히 자신들의 배만을 우상으로 삼아 죄인으로 남게 되는 거예요 악한 종과 충성된 종은 이미 창세전에 구별이 되어 있고 그들이 왜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야 되고 누구는 어떻게 하느님의 은혜와 자비속으로 들어가게 되는지를 이 세상에서 실제화하여 사는 거예요 그리고 실제화 되어 나타나는 십자가에 의해 죄와 마귀가 계속 폭로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나는 심판받아 마땅합니다라는 자리로 몰고 가는 거예요 십자가가 이 역사가

 

그 열 처녀의 비유는 이미 결정이 나있는 충성된 종과 슬기로운 처녀와 악한 종 어리석은 처녀에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게 되었을때 하늘 왕이 갑자기 찾아오셔서 문을 걸어 잠가 버리는 예정에 이야기인 거예요 슬기로운 처녀들이나 어리석은 처녀들이나 다 자고 있었어요 예수님이 왜 굳이 그 이야기를 넣었는지 아세요 슬기로운 처녀가 안자고 있었기 때문에 구원받은게 아니에요 다 자고 있었다니깐요 자 두 무리가 다 자고 있는데 어떤 무리만 잔칫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셨어요  

그건 어떤 한 무리에게만 주인에 신랑의 자비가 부어지고 어떤 한 무리에게는 똑같이 자고 있었는데 신랑의 자비가 부어지지 않았다는 이야기죠 그래서 둘 다 자고 있었다라는 이야기가 거기 들어가는 거예요 슬기로운 처녀들은 기름을 준비했기 때문에 잔칫집에 들어간게 아니라 신랑의 자비때문에 잔칫집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그런데 그 비유에 결론은 그런 즉 깨어 있으라에요  

그 말은 우리에게 깨어 있음에 정의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말이에요 분명히 함께 자고 있던 자들이 신랑의 자비를 입어서 잔칫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들을 깨어 있었던 자로 간주해 주시는 거예요 우리는 깨어 있음이란 우리쪽에서의 열심과 성실에서 격발이 되는 건줄 알았어요 그러나 열처녀의 비유를 보면 깨어 있음이란 신랑측에서의 자비와 은혜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알 수 있는 거에요 그래서 자고 있던 이들에게 너희들은 깨어 있었다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왜 신랑이 너희들을 보고 있었거든, 따라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가 준비한 기름은 바로 하느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은혜와 하느님의 열심을 가리키는 거였어요 조금 있으면 더 분명하게 이해를 하실 수 있어요 

 

그들은 언제올지 모르는 신랑이 이미 와 있는 것처럼 신랑의 부재속에서 신랑의 존재를 의식한 삶을 살게 된다라는 거에요 누구에 의해서 신랑에 의해서.... 그들은 계속 졸고 잘 수밖에 없는데 신랑이 그들에게 기름을 자비로 부어줬기 때문에 그들은 신랑을 깨어서 기다린 자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은혜의 백성들이 되는 거예요 그게 슬기로운 처녀인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졸 수도 있고 잘 수도 있어요 여러분이 늘 자고 계시는 것처럼, 그러나 신랑은 반드시 그들을 깨워 잔칫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신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신랑은 준비가 되지 않은 어리석은 처녀들의 정체가 폭로되자마자 문을 걸어 잠궈 버리세요 가서 기름을 사가지고 부리나케 달려왔는데도 안 열어 줘요 그들에게는 신랑의 자비가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느님 편에서 다 하는 것이라면 ,하느님에 편애 속에 들어있는 하느님의 백성들이 왕의 부재와 왕의 나라의 은닉속에서 깨어 있는 삶을 산다라는 것은 어떻게 사는 걸까요 주인의 말을 듣고 이윤을 남기는 장사를 하는 삶은 어떤 삶을 이야기하는 걸까요 분명 주인은 그 삶을 요구하고 있어요 그리고 열 처녀의 비유에서도 깨어 있으라는 요구사항이 우리에게 주어지고 있단 말입니다 어떻게 살게 될까요 그 삶은

 

달란트와 금화의 비유에서 달란트와 금화는 주님의 부재속에서 주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주시는 주님과 백성들 간에 주님과 종들 간의 접촉점이에요 주인은 떠났어요 주인은 이미 부재 상태에요 그런데 이 종들이 주인이 마치 있는 것처럼 살고 있단 말입니다 그런데 그 주인과 이 종들의 접촉점이 뭐냐 말이에요 달란트와 금화에요 그죠?

그런데 그 달란트와 금화가 도대체 뭐냐 말이에요 주인이 그들에게 남기고 간건 주인에 말이었어요 장사해라바로 우리를 떠나 하늘 왕위를 받으러가신 우리의 주님과 우리의 접촉점은 말씀 언약인 거예요 바로 우리가 그 말씀과 언약으로 어떠한 이윤을 남기고 살고 있는가를 보면 되는 거예요 그게 우리가 이 땅에서 지금 장사하는 거거든요 그리고 거기에서 이윤이 남는다고 이야기를 한단 말입니다.

 

 

우리 왕은 우리에게 다시 오신다는 말씀 하나 남기고 떠나셨어요 분명히 오신대요 금화의 비유에서 어떤 이들은 그가 다시 오지 못하도록 왕됨을 반대하고 청원서까지 썼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어때요 그분이 오셔야 돼요 그렇죠 아멘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우리는 매 순간 그걸 외치고 있잖아요 성도는. 말씀하나 믿고 지금 하루하루를 그렇게 살고 있단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삶이 장사하는 삶인 거예요 그 하느님의 말씀 달란트와 금화를 갖고 여러분이 주인이 있는 것처럼 사는 거예요

졸아도 돼요 자도 돼요 그러나 말씀을 믿고 사는 거예요 여러분이 얼마만큼의 이윤을 남기는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자 여러분 자꾸 종들이 무언가 이윤을 남겼다는 결과에 집착하지 마세요 그들이 얼마를 남긴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가 않아요 그보다는 그들이 주인의 말을 들었다라는거 말을 듣고 장사를 했다라는 거에 초점이 있어요

 

본문 13절 보세요 13 그래서 그는 종 열 사람을 불러 금화 한 개씩을 나누어 주면서 '내가 돌아 올 때까지 이 돈을 가지고 장사를 해 보아라' 하고 일렀다.

마태복음 2516절 달란트의 비유로 가볼게요 16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다.

 

장사라는 단어가 계속 등장하죠. 장사라는 건 양면성이 있는 거예요 손해를 볼 수도 있고 이익을 볼 수도 있어요 그냥 주구장창 이윤만 남기는 그런 장사는 없어요 어떤 장사가 이윤을 남기고 어떤 장사가 손해를 본다는 건 미루어 추측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면 다 그 장사만 하게요 그런데 종들이 겁도 없이 주인에 돈으로 장사를 하고 있단 말이에요

그건 손해를 감수하고 있는 거예요 거기에는 뭐가 들어가 있죠 주인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에 것을 가지고 장사를 하다가 설사 많이 잃는다 할지라도 주인은 내가 주인에 말을 들은 것으로 나를 칭찬해줄 뿐이라는 걸 이 종들은 아는 거예요 그들만 장사할 수 있어요 주인의 사랑과 은혜와 자비를 아는 이들만 장사할 수 있어요 그걸 모르는 이들은 절대 장사 못해요 잃어버리면 큰일 나요 그게 악한 종입니다 그들은 땅에 묻을 수 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하느님의 자비와 은혜를 아는 이들은 하느님께 믿음을 선물 받은 자들이잖아요 그들만이 자유롭게 장사하는 거예요 졸 수도 있어요 잘 수도 있어요 망할 수도 있어요 손해 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주인이 하라고 했기 때문에 하는 거예요 사는 거예요 이렇게 그걸 주인이 칭찬하는 거예요 주인은 종들이 얼마에 이윤을 남겼는가 거기엔 관심이 없어요 내 종들이 얼마나 착한 일을 많이 했는가 관심 없어요 천국에서 영원히 그 삶만 살 거니까 거기에 관심이 있는게 아니에요 이윤에 다소에 관심이 있는게 아니에요 그들이 내 말을 끝까지 붙들고 있었느냐 실패했을 때도 내 말을 붙들고 다시 일어나고 성공했을 때도 내 말을 붙들고 나에게 찬양하고 감사하고 그 삶을 그들이 살았느냐 그것을 중요하게 여긴단 말입니다 그래서 다섯달란트 남긴종과 두 달란트 남긴종이 똑같은 칭찬을 받은 거예요 재능과 은사로 탤런트로 달란트로 많은 업적을 이룬 사람이 더 많은 칭찬 안 받았다 말입니다 똑같은 칭찬받았어요  

 

거기에 대한 분명한 예가 포도원 품꾼 비유인 거예요 거기에 나온 품꿈들은 3시에 오고 6시에 오고 12시에 왔어요 아침 9시 저녁 5시에 온 거예요 그런데 똑같이 한 데나리온만 받았어요 아침 아홉시에 온 종이 따졌습니다 불평했어요 왜 나는 아침 9시에 왔는데 저녁 다섯시에 와서 한 시간 일한 사람을 똑같이 보상을 해줍니까 주인이 이야기하죠 니가 뭔데 불평을 하냐 원래 너 한 데나리온 받기로 하고 왔잖아

내 백성은 똑같은 보상을 받게 되어 있는 거야 영생.. 그게 상입니다 그게 여러분에게 주어지는 유일한 상인 거예요 충성된 종들에게는요 일등 종과 이등종의 구분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내가 뭘 많이 하면 일등종이 되어서 상급을 많이 받고 조금 덜하면 이등종이 되어서 상급을 덜 받게 될 거라는 조바심이 없다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행위에 경쟁을 하지도 않아요 어차피 자신이 손해를 보던 이윤을 남기던 종들이 하는 장사는요 모든 소유와 노동가치 그 전부가 나중에는 주인에 소유로 환원이 돼요 종에게 요만큼도 안 돌아갑니다. 그런데 무슨 일등종 이등종입니까 그 종들의 개인적 성취 정도는 주인의 칭찬에 아무런 근거로 작용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그 주인의 자비와 은혜를 알지 못하는 주인을 믿지 못하는 종은 함부로 장사를 할 수가 없어요 그는 주님의 자비와 은혜를 믿지 않기 때문에 손해는 곧 주인의 꾸중으로 이어질 것이다 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는 주인을 몰라요 그 주인이 누군지는 몰라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은혜를 먼저 깨달아라는 거예요 은혜 속에로 먼저 몸을 던지고 그다음에 여러분의 손발을 움직이려고 하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거 모르고 무조건 손발을 움직이다 보면은 여러분 악한 종 되는 거예요

 

여러분 그렇게 내가 주인에 것을 손해보면 주인은 나를 꾸중할 거야 나를 칭찬하지 않을 거야라는 의미에서 자기의 지혜와 방법과 함으로 뭔가를 하는걸 율법주의라 그래요 그걸 바리새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절대 주인의 말을 이행할 수가 없어요  장사 손해를 보던 이윤을 보던 괜찮은 그 주인의 은혜에 품속안에 들어있는 그 자유의 복음을 그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거예요 장사해 ....그 말은 너희가 손해를 보던 이윤을 남기던 내가 없는 동안에 내 말을 잘 들었거든요

그런데 그걸 곡해해서 주인은 반드시 내가 이윤을 남겨야 날 칭찬할 거야 이렇게 곡해를 하는거 그게 바리새인이었단 말입니다 그래서 죽도록 율법 지킨 거예요 죽도록 제사 지낸 거예요 뒤에서 칼을 들고 쫓아오다 안식일 날 안 뛰어다닌 거예요 주인이 혹시 나무랄까 봐 주인이 혹시 창친 안 해줄까 봐

그들이 할 수 있는게 뭐겠어요 절대 손해 보지 아니하겠다는 힘과 기지로 주인의 뜻과 다른 행동을 하는 거예요 그게 달란트와 금화를 수건에 싸서 땅에 묻어둔 종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주인이 장사를 하라고 있으면 주인의 인격을 믿고 손해를 보던 이윤을 보던 장사를 해야 되는데 주인에게 손해를 입히면 자신에게 돌아올 상급이 적어질까 봐 혹시 버림을 당할까 봐 자신에 지혜를 사용하여 다른 방법을 강구해 버리는 거예요 그게 독사의 자식인 거예요

 

여러분이 이 두 비유를 읽으시면서 절대 간과해서는 안될 이유가 있어요  마태복음 2527절 보세요 27 내 돈을 돈 쓸 사람에게 꾸어 주었다가 내가 돌아 올 때에 그 돈에 이자를 붙여서 돌려 주어야 할 것이 아니냐? 이자 돈이라도 놔뒀으면 이자라도 붙었을거 아니냐 이야기하는 거예요  

본문23 그렇다면 너는 왜 내 돈을 돈 쓰는 사람에게 꾸어 주지 않았느냐? 그랬으면 내가 돌아 와서 이자까지 붙여서 원금을 돌려 받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

이것만 보면 마치 주인이 돈에 환장한 사람 같아요. 야 이자 돈이라도 받아먹게 놔두지달란트는 어마어마한 돈이거든요 당시 유대사람 전체가 1년에 로마에 바쳤던 세금이 1년에 800달란트 밖에 안돼요 그러면 한 달란트면 얼마나 큰 돈입니까 이자라도 받아먹게 은행에 두던지 돈놀이하는 자들에게 주던지 그렇게 해 놨어야지 왜 땅에 묻어뒀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러면 이 말은 주인이 남긴 돈은 반드시 저절로 땅에 묻어두기만 하지 않으면 반드시 저절로 이윤이 생기게 되어 있는 돈이다 라는걸 보여주는 거예요 은행에만 넣어놔도 이자가 생겨요 이 주인이 남긴 돈은 땅에 묻어두지만 않으면 자연스럽게 이윤이 붙게 되는 힘과 효력이 있는 돈이에요

그 말은 다른 말로 하느님에 진짜 종들은요 그들의 현실과 그들에게 나타난 현상들이 어떤 모습을 띤다고 해도 절대 이 세상에서는 손해 볼 수 없는 삶을 살게 된다라는 뜻이에요 절대 손해를 볼 수 없어요 그래서 충성된 종들이 전부 이윤을 남긴 거예요 그들이 장사에 도사여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는 거예요 하느님의 선택에 의해 충성된 종으로 선택된 자들은 반드시 이윤을 남기게 되어 있어요 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거든요 그들의 인생에서는 그게 이윤입니다 그런데 주인에 대한 믿음이 없는 자들은 그 자유와 은혜의 복음속에 들어있는 주인의 진짜 참 모습을 알지 못하고 자기들에 지혜로 주인을 기쁘게 해드리려 한단 말이에요 그거 안 하면 주인이 꾸중을 할 것같은 그런 오해에서 절대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아야겠다는 어리석은 충정과 열심을 부리는 거예요 거기에는 주인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없어요 그 모습이 바로 악한 종들에 모습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어요 볼까요

마태복음 2524-2524 그런데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와서 '주인님, 저는 주인께서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무서운 분이신 줄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저는 주인님의 돈을 가지고 가서 땅에 묻어 두었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그 돈이 그대로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본문 20 그런데 그 다음에 온 종의 말은 이러하였다. '주인님, 주인님이 주신 금화가 여기 그대로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수건에 싸 두었습니다. 21 주인님은 지독한 분이라 맡기지도 않은 것을 찾아 가고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시기에 저는 무서워서 이렇게 하였습니다.'

  

잘 보세요 게으르고 악한 종이 주인을 어떻게 묘사를 하고 있어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해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분이래요 맞습니다. 잘 본 거예요 이게 무슨 법칙이에요 창조의 법칙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고 거두어 드리는 하느님의 창조의 법칙이에요

하느님의 법과 능력을 잘 알아먹었어요 그런데 그에 대한 신뢰와 사랑과 믿음이 없으니까 그 능력이 하느님이 두려움으로 오는 거예요 나한테 그러니까 내 어깨에 짐이 지워지게 되는데 이 하느님을 어떻게 되든지 기쁘게 해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하느님은 우리가 무엇을 해도 기쁘지 않아요 하느님이 우리를 기쁘게 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 하느님에 은혜로 기뻐할때 하느님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착각하는 거예요 왜 선악과 따먹고 자기가 하느님처럼 되었다고 믿어요 자기도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는 거예요 그러니까 뭘 자꾸 할려고 하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천만의 말씀 하느님의 법도 알아요 능력도 알아요 그래서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라고 열심히 노력했어요 제사 열심히 지내고 율법 열심히 지켰어요 누구 마귀새끼 독사의 새끼라고 이야기했단 말입니다 그게 악한 종인 거예요 함부로 여러분의 재능과 은사와 소유로 함부로 여러분이 하느님을 기쁘게 하겠다고 나서기 시작하면 은혜를 모르는 상태에서 그렇게 나서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오히려 마귀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탤런트를 갖고 뭘 어떻게 하겠다구요 완전히 거꾸로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인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윤을 남긴 종의 삶 그 속에서의 그 이윤은 뭘까요 우리의 삶 속에서 발생되는 그 이윤 그것의 정체는 뭘까요 주님은 우리 성도들이 이 역사와 인생속에서 어떤 열매를 맺기를 원하세요 그게 이윤이잖아요 장사해서 얻는 이윤, 어떤 이윤과 유익을 남기기를 원하시죠 ...자기부인의 열매에요 그래야 그 부인된 그릇 속에 당신에 생명력을 가득 채워서 하늘에 백성으로 삼으실 수 있는 거예요 우리가 완전히 비워질 때 예수가 우리안에 들어와 진짜 예수라는 열매가 맺는 거예요 그게 진짜 열매거든요 그때 진짜 이윤이 남아요 예수라는 이윤이 남아요 예수라는 잉여 하느님 백성이라는 잉여 성도라는 잉여가 거기서 발생이 되는 거예요 자기부인속에서

 요한복음 1224-25절로 갑니다. 24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아끼는 사람은 잃을 것이며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목숨을 보존하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지금 부재중인 그 왕을 섬기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보세요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는 자는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게 한다고 그러는데요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긴대요 예수님이, 지금 바로 위에서 나를 따르라 ....나는 어디로 갈건데 한 알의 밀이 돼서 땅에 떨어져 죽는대는 거예요 그런데 나 있는 곳에 밀이되어 땅에 떨어져 죽은 그 자리에 나를 섬기는 자들을 잇게 하겠다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남아 있는 왕에 부재속에서 거기에서 왕이 실제로 나와 함께 있는 것이다라고 믿고 있는 믿음이 있는 자들이 어떤 삶을 살게 된다는 거예요 자기를 비우고 부인하고 해체시켜 버리는 빼앗김을 당하는 자기 부인의 삶 그 십자가에 삶을 살게 된다는 거예요 거기에서 이윤이 발생되는 거예요 거기에서 열매가 맺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열매는 우리를 대신하고 대표하여 죽으신 예수라는 밀알에 의해 이미 맺쳐졌고 가시적으로도 그분에 의해 맺쳐지는 거잖아요 그 이야기를 요한이 이렇게 이야기하죠

 

요한복음 154-54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말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열매를 누가 맺어요 포도나무가 맺어요 가지가 맺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 혼인 잔칫집으로 들어가게 된 슬기로운 처녀의 그 기름으로 비유된 그들의 열매 그게 있어서 그들이 혼인잔치집으로 들어갔잖아요 그게 그들의 열매란 말이에요 그들에 열매가 누구로 부터 주어진 거예요 그러니까 신랑으로 부터 주어진거라는 거예요 하느님의 은혜와 자비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포도나무가 맺어버린 기름 열매 ,잉여 ,이윤,....우리는 그 자비와 은혜를 받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래서 충성된 종들에 장사는 늘 수지맞는 장사일수 밖에 없는 거예요 왜 그 장사를 누가하기 때문에..... 떠난 주인이 하는 거예요 부재중인 주인인줄 알았는데, 그 주인이 그 장사를 주관하고 있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 장사는 이윤이 남을 수밖에 없어요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밖에 없어요 겉으로는 손해 보는 것처럼 보일수도 있어요 겉으로는 망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겉으로는 조는 것처럼 자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우리 주인은 그 속에서 반드시 당신에 이윤을 챙겨가시는 능력이 주인인 거예요

 

우리는 그러한 능력에 주님 은혜의 주님 사랑의 주님, 자비의 주님을 신뢰하며 계속해서 자신을 부인당하면 되는 거예요 거기에서 자기 사랑이 벗거지고 비로소 그 자기에게만 향해있던 사랑이 이웃과 주인에게로 하느님에게로 돌려지는 거예요 조금씩 그게 주인에 대한 충성인 거예요 잘하였다 충성된 종아그건 내가 부인되지 않으면 나올 수가 없는 거예요 그 충성은 달란트의 비유나 금화의 비유에서 종들이 그 남긴 이윤을 요만큼이라도 챙겼습니까 종들이 남긴 이윤은 전부 주인이 챙겨갔어요 상은 다른 걸로 줬다 말입니다 종들은 주인에 말씀을 듣고 그 주인이 자기들과 함께 하고 있는 것처럼 매순간 자신에 것을 빼앗기는 삶을 산 것 뿐이에요

종들은 자신들에 힘과 노력과 시간을 주인에게 빼앗긴 거예요 왜 종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단 한 시간도 할 수가 없어요 그게 종이에요 그러니까 종의 삶은 전부가 다 빼앗김의 삶이에요 주인이 시켜서 장사를 했지만 결국 내 시간과 힘을 빼앗기는 삶이고 결국 주인이 돌아오면 이윤까지 몽땅 빼앗기는 거예요 그게 성도에 삶인 거예요 하느님의 종된 성도의 삶인 거예요

 

그런데 몽땅 빼앗기고 나니까 주인이 종에게 상을 줘요 종은 주인에게 그렇게 몽땅 빼앗기고 주인이 주는 상으로만 사는 거예요 뭘 빼앗겨요 세상에 대한 집착 중독 옛사람 나에 마귀적 성향 하나 하나 빼앗기는 거예요 이 장사속에서 하나 하나 빼앗기는 거예요 그리고는 결국 나의 옛사람 전체를 죽음과 함께 다 빼앗겨 버리고 하느님이 주는 상으로 사는 거예요 그걸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땅에서 성도가 장사를 하고 이윤을 남기는 삶을 산다라는 건 빼앗김에 삶을 산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느님 이외에 마음을 두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하나 하나 빼앗아 가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의 인생이 이렇게 피곤한 것입니다 이렇게 불행한듯 보이는 거예요 빼앗아 가고 있으니까 결국은 다 뺏길거에요 여러분의 마음을 결국 하느님께 다 뺏길거에요 그리고는 하느님이 그 자리를 차고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게 진짜 열매인 거예요

 

그러면 한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요 왜 금화의 비유에서는 열 남긴 사람에게 열고을주고 다섯 남긴 사람에게 다섯고을 주냐 말이에요 우리가 열심히 일한 만큼 차등있게 지금 성과급을 주시는 건가요 성과에 의해 상급을 주시는 거예요

오늘 본문에 바로 앞장인 루가복음 18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케오를 건지고 금화의 비유를 말씀하시기 바로 전에 그 에리고에서 소경 발토로메오를 고치세요 그거 다 여에고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이제 곧 예루살렘으로 넘어갈 판이에요 바로 그 발토로메오를 고치시기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야고보와 요한 이 형제가 자기 엄마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에게 청탁을 해요 이제 곧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면 메시아 왕국이 설텐데 거기에서 내 아들을 좌의정 우의정 시켜 달라는 거예요 그때 제자들이 화를 냈다고 그러죠 제자들이 있는데서도 아이돈 케어 그냥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 얻으면 되 고게 제자들의 심보였어요 그게 하느님 나라에 대한 오해였단 말입니다 그때 그들이 하느님 나는 당신에 나라에서 다스리는 권세를 받고 싶어요라고 이야기 했을때 예수님이 그들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한번 보세요

마르코복음 1043-4543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사이에서 누구든지 높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44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45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쳐 몸값을 치르러 온 것이다' 하셨다.

 

주님은 다른 이를 다스리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통치자와 하느님 나라의 통치자가 어떻게 다른지를 설명해 주세요 세상의 다스림은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는 다스림이에요 그러나 하느님 나라의 다스림은 강자가 약자를 섬기는 다스림이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통치자 하늘의 왕인 내가 이땅에 다스리러 왔는데 그게 섬김으로 나타났다라는 거예요

따라서 너희들 하느님 나라를 오해하여 나에게 엉뚱한 거 원하지 말아라 하느님 나라의 권세는 섬기는 권세인 거야 이 말씀을 하시고 금화의 비유를 하신 거예요 그러면 주인이 맡긴 그 말씀에 열심히 순종하고 충성하여 열금화 남기고 다섯 금화를 남긴 그 충성된 종들에게 열고을과 다섯고을이 주어졌다라는 건 무슨 말이에요. 그들에게 섬기는 능력이 주어졌다라는 뜻입니다 열고을을 섬기는 능력이 주어지고 다섯 고을을 섬기는 능력이 주어졌다라는 거예요 그게 자기 부인인 것입니다 하느님 백성들의 삶의 원리인 십자가의 원리인 거예요 그 속으로 그들이 성숙되어져 들어갔더라는 거예요

하느님의 말씀을 쫓아 열심히 장사를 한 그들의 삶 속에 열고을 다섯고을을 섬길 수 있는 이세상 누구도 가질 수 없는 하느님만 줄 수 있는 그 능력이 주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게 상인 거예요 그 상을 받고 싶으세요 그 상을 받고 싶어야 되는게 성도인 것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걸 열심히 헌금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갖다 바치면 하느님이 내가 원하는 좋은 것으로 상줄거야 그게 마귀라니깐요 바리세인이란 말입니다 그게 금화와 달란트의 비유는 바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예요

 

어줍지 않게 여러분의 종교행위나 선행등으로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려는 시도를 하기 전에 그 주인에 사랑과 자비와 은혜 앞에 자신을 먼저 던지세요 그게 먼저에요 제발 그 은혜도 모르고 들고 뛸려고 하지 마세요 간 만큼 되돌아 와야 돼요,  매 순간 자신에 연약함과 부족함을 고백하시면서 내 안에 이미 살아 역사하고 계신 우리 주인에게 도움을 구하세요

내 안에 이미 와 계시단 말이에요 주인은 세상 사람들에게는 멀리 떠나계신 부재중인 왕이지만 나에게는 나와 함께 계신 왕이잖아요 그러니까 조금 실수해도 괜찮아요 조금 모자라도 괜찮아요 그분에게 늘 상의하세요 주인이 곁에 있는 것 처럼 사는 충성된 종에 삶인 거에요 그때 우리의 주인은 우리의 마음을 빼앗고 있는 이 세상 다른 것들을 하나 하나 다 탈취해가실 것이고 결국에는 모두 빼앗아 버리시고 진짜 섬김에 삶 진짜 비움에 삶 진짜 낮아짐의 삶인 십자가의 삶을 살게 만드시고야 마실 거예요 그때 여러분에게 열고을이 주어지는 거예요 아니 백고을이면 어때요 이제 우리는 완벽해 질텐데 다 다스릴 수 있어요 섬김으로 다 다스릴 수 있어요 그자리로 지어져 가는 거예요

 

 

 오늘 복음을 묵상하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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