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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 사람이 살리고 (로마 5.12-19)
작성자김종업 쪽지 캡슐 작성일2018-09-02 조회수1,999 추천수0 반대(0) 신고

 

 

한 사람이 살리고

(로마 5.12-19)

12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 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들인 것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습니다. 13 율법을 주시기 전에도 죄는 세상에 있었습니다. 다만 율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 죄가 법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을 뿐입니다. 14 그러나 죽음은 아담으로부터 모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을 지배하였는데 아담이 지은 것과 같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그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장차 오실 분의 원형이었습니다. 15 그러나 하느님께서 내리시는 은총의 경우와 아담이 지은 죄의 경우와는 전연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담의 범죄의 경우에는 그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하느님의 은총의 경우에는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덕분으로 많은 사람이 풍성한 은총을 거저 받았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은총의 힘이 얼마나 더 큽니까! 16 하느님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과 아담의 죄는 그 효과에 있어서 서로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아담의 경우에는 그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의 심판을 받게 되었지만 은총의 경우에는 죄지은 많은 사람이 은총을 거저 입어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17 아담의 범죄의 경우에는 그 한 사람 때문에 죽음이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은총의 경우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풍성한 은총을 입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거저 얻은 사람들이 생명의 나라에서 왕노릇 할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은총의 힘이 얼마나 더 큽니까! 18 그러므로 한 사람이 죄를 지어 모든 사람이 유죄판결을 받은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올바른 행위로 모든 사람이 무죄판결을 받고 길이 살게 되었습니다. 19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언제부터 두려움과 공포라는 것과 친해지게 된거죠 원래 인간은 두려움과 공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였어요 하느님 절대 의존자였거든요 하느님이 그들을 품고 계셨다는 말이에요 거기서는 안전이에요 항상 그런데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하느님이 눈이 아닌 인간의 눈을 개별적으로 소유하게 되면서부터 두려움과 공포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하느님과 분리가 되었어요 인간은.

서늘한 날에 하느님이 강림하시죠 아담과 하와에게 서늘한 날에 르아흐 그게 심판의 날이라고 그랬어요 서늘한 날에 심판을 하러 내려오신 하느님을 피해서 나무 뒤로 숨죠 그때까지 뭐했어요 무화가 나무 잎사귀로 치마 만든 거 이게 역사의 종국이에요 역사는 심판 받는 그 날까지 인간들의 행위로 이 역사의 것들로 자기들의 부끄러움을 가리는데 급급한 거죠 하느님이 결국 심판하러 내려오세요 그들이 하느님을 피해 나무 뒤로 숨습니다.

창세기 39절 보세요 9 야훼 하느님께서 아담을 부르셨다. '너 어디 있느냐?' 10 아담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고 알몸을 드러내기가 두려워 숨었습니다.'

성경에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여기에 처음 등장합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고 운전해 보겠다고 나서면서 부터 인간은 두려움과 공포에 장악 당하게 된 거에요 왜냐하면 선악과를 입에 문 상태에서는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해 나가야 하고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율법이 하느님을 보게 되면 당연히 두렵게 되어 있어요 왜 도달해야 할 수준이 있기 때문에 그게 지옥이에요 그래서 새 마음이 필요한 거에요 성경은 우리가 받은 마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다 라고 명확히 밝혀요 물론 천상에서 우리가 받은 마음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디모데후서 177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은 우리에게 비겁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십니다.

하느님께서 창조의 능력으로 이미 완성해 놓은 우리의 실체가 완료되어 있는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여 도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느님의 창조의 능력으로 완료가 되어 있는 우리가 묵시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그걸 아는 이들이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됨됨이나 외모나 성숙의 정도 등으로 우리를 평가해서 스스로 두려움과 공포 등을 덮어쓰지 않아도 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안타까운 건 우리가 아직 육을 입고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까지도 우리는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할 때가 너무나 많아요 우리는 두려움 때문에 반복하여 회개하고 공포 때문에 뉘우치고 반성하죠 엄밀히 말해서 한번 따지고 들어가 보세요 왜 회개하세요 진짜 하느님께 죄송해서예요 아니면 혹시 벌 받을까봐 그러세요 왜 반성하고 뉘우치시죠? 우리는 뭔가를 지금 두려워하고 있는 거에요 그거 자체가 불신앙이에요 여러분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죽는 날까지 예수님이 그 모든 것을 완료하셨다는 것을 못 믿는 존재로 남는다니깐요 믿음이 들어와서 니네들은 못 믿는 자라는걸 폭로시켜 낸다 말입니다 아무쪼록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전히 인생과 이 역사를 두려움과 공포로 살아가고 있는 많은 분들이 그 두려움과 공포에서 조금이나마 해방이 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계속 반복하여 나오는 이야기가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고 한사람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주어졌다 이거 반복하죠 한 사람이에요 예수님을 한사람이라고 그래요.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육신을 입은 교회의 모형으로 이 땅에 오셔서 교회가 어떻게 이 지상에서 십자가를 지고 부정당하고 그리스도를 증거 해내는가를 미리 몸으로 삶으로 보여주신 것이죠

루가복음 211절 보세요 11 오늘 밤 너희의 구세주께서 다윗의 고을에 나셨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신 그리스도이시다. 12 너희는 한 갓난아이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것을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바로 그분을 알아보는 표이다' 하고 말하였다.

쎄메이온이라는 단어가 나와요 표적이래요 예수보고 표적, 표적은 실체가 아니고 내용이 아니라는 거에요 잘 새겨들으셔야 되요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 예수예요 예순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무엇인가를 가리키는 표적으로써의 삶을 사셨다 라는 의미에서 쎄메이온 표적이라는 그런 표현을 쓰는 거란 말이에요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뭐라고 불러요 인자라고 불러요 그걸 파자하면 그 사람의 그 아들이예요 예수님이 그 사람의 그 아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시고는 그리스도 예수로 부활하시죠 예수 그리스도로 부활하신단 말이에요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 죽고 하느님의 창조의 능력으로 주어진 새 몸을 입은 새 아들 맏아들로 탄생하는 거에요. 하느님의 아들들이 이 땅에 내려와서 육을 입고 살다가 그걸 십자가에서 전부 부정당하고 맏아들들로 연합되는 그런 모습인 거에요 그게 십자가와 부활이란 말입니다. 예수님도 그 씨 자손 아들을 그리스도로 낳은 거에요.

 

그럼 어떠한 이들이 예수님이라는 맏아들을 낳는지 한번 보세요 그걸 알려면 족보를 보면 가장 편하겠죠 루가복음 323절 보세요 족보의 맨 첫부분만 읽어 드릴께요

23 예수께서는 서른 살 가량 되어 전도하기 시작하셨는데 사람들이 알기에는 그는 요셉의 아들이요, 요셉은 엘리의 아들이며,

엘리는 마리아의 아버지에요 앞부분을 헬라어로 보면 카이 아우토스 엔호 히에수스 호세이 엣툰 트리아 콘탈 이 말을 직역하면 그들도 그렇게 되었다 이게 번역성경에선 빠져 있어요 왜 뺏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빠져 있어요 그들도 그렇게 되였다 예수가 마치 삼십 해처럼 서른처럼 시작하신다. 삼십 세였다가 아니에요 서른처럼 삼십처럼 시작하셨다 이런 뜻이에요

 엔 아르케 그 아르케가 시작 머리예요 성전의 머리, 성전이 시작된다 아랫 것으로 설명된다 이게 태초에 엔 아르케 한처음 이에요 그 아르케의 동사형 알코마이가 여기에 나온다 말이에요 시작됐다 예수님께서 서른살에 시작하셨다는 말이 아니라 이 서른은 어떤 다른 걸 지적하는 거에요 그래서 마치 30처럼 딱 서른살이었다면 예수님은 서른 살에 이렇게 하셔야 되는데 마치가 들어가 있단 말입니다 거기에요

 

우리말 번역성경은 그런 면에서 조금 이해가 어렵게 기록이 돼있는 거에요. 예수님 뒤로 나오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처럼 그렇게 되었다 카이 아우토스 엔 이렇게 시작을 해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하느님의 계획의 의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느님으로부터 예수님까지 쭉 내려오고 그 안에 아담으로 비롯한 아담의 후예들 아담이 뭐에요 사람이에요 사람들이 쭉 나열이 되고 그 다음에 사람의 아들 그 사람에 그 아들이 맨 마지막에 오시는 거에요 사람들이 아들을 낳는 그런 그림들이 이 루가복음의 족보란 말입니다 아담이 버젓이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가 있어요.

하느님께서 아담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심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창세전 언약과 하느님의 능력을 증거 해내셨던 것처럼 그 아래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러한 삶을 살았고 그래서 아담 밑으로 쭉 나열이 되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사람들의 삶을 완결판으로 살아내신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에게서 완성되었다 라고 이야기하는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그 사람의 그 아들이 인자 예수인 거에요

 

창세기 4146절 보세요. 46 요셉이 에집트 왕 파라오를 섬기기 시작했을 때 그의 나이는 삼십 세였다. 요셉은 파라오의 앞에서 물러나와 에집트 전국을 순찰하였다.

이제 요셉이 구원자로서의 일을 시작하는 나이에요 여러분 요셉은 애굽으로 형제들 열한 형제들을 살려 내기 위해 애굽으로 먼저 팔려간 사람이죠. 요셉이 직접 이야기 하잖아요 당신들을 구하려고 하느님이 나를 보냈다 그러잖아요. 요한 묵시록에 보면 예수님이 애굽에서 죽었다 이런 말을 한다 말이죠. 다 연결된 거에요 요셉의 죽음이 나머지 형제들을 살려내는 구원의 그림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서 본격적으로 형들을 구원을 해낼 수 있는 구원자로 그 일을 시작하는 시점 요셉은 예수의 모형이니까 그 공생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죠 그 시점이 30이에요 하느님의 뜻을 그 인생에 담고 예수의 인생을 그 인생에 담고 그가 하느님의 뜻을 살게 되는 나이.

그렇게 하느님의 뜻 하느님의 말씀을 담아서 세상에 이렇게 설명하고 증거하는 자들을 우리가 미리예 말씀언 예언자라고 하는 거게요 그걸요 그러니까 지금 요셉은 예언자로서의 삶을 예수의 삶을 미리 먼저 살아내는 거라 예언자인데 그게 몇살에 시작했냐하면 30에 시작인 거에요.

민수기 41-3절 보세요 1 야훼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레위 후손들 가운데 크핫 후손들의 인구를 각 갈래와 가문별로 조사하여라. 3 서른 살에서 쉰 살까지, 만남의 장막에서 일할 사람으로서 전장에 나갈 만한 사람을 모두 조사하여라.

레위 자손 중에 세 아들이 있어요 그 중에 크핫 그 크핫 자손은 다 레위의 자식들이니까 제사장들이에요 제사장들을 뽑아라 세워라 그러는데 몇 살 부터 30에 시작하죠 어디서 완료돼요 50에 완료되요 50은 뭐 희년 7749 고 다음해가 희년이니까 30에 시작하여 희년(50)을 완료해 내는 게 제사장의 역할이에요 그런데 몇 살에 시작해요 30에 시작해요  그러니까 제사장들도 그 희년을 완성하는 예수의 모형이라 말입니다.

민수기 421-2321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2 '너는 게르손 후손도 각 가문과 갈래별로 인구를 조사하여라. 23 서른 살에서 쉰 살까지 군대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을 모두 등록시켜 만남의 장막에서 일하게 하여라.

크핫 게르손 므라리 다 레위의 아들들이에요 세 아들들 제사장들이예요 그들이 다 30세부터 이렇게 일을 시작할 수 있어요 그러면 왕은 어때요 자 예언자, 제사장은 나왔어요 왕 예수를 모형하는 이 역사 속에서의 아주 유명한 왕이 누구에요 다윗이죠 그래서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르는 거에요. 사무엘하 54절 보세요 4 다윗은 나이 삼십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을 다스렸다. 

40년 하면 생각나는 게 광야에요 보세요 왕 제사장 예언자가 모두 30과 관계있죠 30부터 시작이 되어야 돼요 그래서 예수님이 30부터 시작하셨다라는 거에요 그 왕 제사장 예언자는 항상 기름 부음을 받아야 되죠 이 세 직분만 그래요 그러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히브리어가 뭐다 메시아에요 그걸 헬라어로 바꾸면 그리스도라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왕으로 제사장으로 예언자로 이게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에 역할이었어요 예수님이 왕으로 제사장으로 예언자로 일을 시작하시는 그 시점에 그가 마치 30처럼 시작했다 30에 머리로 이런 뜻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그건 예수님의 나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30 메시아의 일을 이제 표상으로 머리로 시작하셨다 이런 뜻이란 말이에요 그리고 그 위에 사람들이 그 예수 표상으로서의 예수와 그와 같이 되더라 이게 루가복음 323절에 이야기란 말이에요 그것이 히브리사람들은 이 30, 마치 30처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척하고 왕 제사장 예언자를 떠 올렸단 말이에요

그 족보에 맨 꼭데기 부분으로 보세요. 루가복음 338절 에노스, , 아담, 그리고 마침내 하느님께 이른다.

여기가 족보의 끝이에요 이 족보를 헬라어로 보니까 하느님의 이름을 포함한 모든 이름앞에 정관사가 다 붙어 있어요 투 그런데 소유격 정관사가 붙어 있어요 그러니까 이 족보는 거꾸로 읽어 내려가라는 거에요 소유격이 붙어 있어요 하느님에 아들 아담 아담의 자손 셋 셋의 자손 에노스 이렇게 읽어야 되는 거에요 원래 그래서 소유격으로 다 이렇게 연결을 해놨다 말이죠.

그런데 족보가 좀 이상하죠 뭐 아벨도 빠져 있고 중요한 사람들이 많이 빠져 있어요 그런 성경이 그 이름들로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이름들만 끼워 넣은 거에요 그 사람들이 무슨 특별한 사람들이여서가 아니라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아담은 사람이란 뜻이죠? 그리고 셋은 표에요. 표상. 우리가 조금아까 루가복음에서 읽었죠 예수님이 표상 표적이다 이렇게 세메이온이다 그랬잖아요 셋이 그 단어에요 표상 그리고 에노스드려지다에요 그러니까 첫주를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번역하면 그 하느님이 그 아담으로 사람이죠 그 아담으로 표상으로 하느님께 드려지다 이런 뜻이에요 그게 예수에 이야기라는 거에요. 그래서 그렇게 시작이 되어 예수로 끝나는 거라 말입니다

 그 족보에 여러분에 이름이 들어가있다구요 그걸 이 히브리서 저자가 이렇게 표현을 해요 히브리서 11-3절 보세요 1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시켜 여러 번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 그러나 이 마지막 시대에 와서는 당신의 아들을 시켜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온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그 아들에게 만물을 물려주시기로 하셨습니다. 3 그 아들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란한 빛이시요, 하느님의 본질을 그대로 간직하신 분이시며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셨고 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옛적에 예언자들 예수를 가리키며 예수를 낳는 삶을 사는 자들 그 예수님에 족보위에 기록된 모든 자들 이게 예언자들이죠 그 예언자들로 말씀하신 거에요 여러분에 인생으로 예수를 말씀하시는 거에요. 그리스도에 편지에요 말이에요 말씀이란 말이에요 그걸 예언자라 그래요 그러니까 여러분이 예언자라니깐요

그 예언자들로 하신 말씀을 마지막에 아들로 말씀하셨다는건 이 아들의 이야기를 그들의 삶으로 말하더라는 거에요 그 예언자들 안에 우리의 이름도 들어가 있는 거라 말이에요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표인거고 예수님은 우리의 표인 거에요 그런데 그분은 말씀이시며 진리이시며 생명이란 말이에요 그분만 그 말씀이 진리가 그 생명이 우리를 위해 죽음을 통과하시어 우리를 진리로 말씀으로 생명으로 살려내시는 거에요 왜 하느님 나라는 하느님에 창조에 능력으로만 세워져야 하는지를 몸소 삶으로 체험하고 가는 것이 아들인거고 그 아들을 낳는 또 다른 아들들에 삶인 거에요 그것이요 그래서 그 아들에 이야기를 하면서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다라는 그 창조에 이야기를 덧붙이는 거에요

 

창조를 설명하기 위해 아들이 역창조에 삶을 경험하는 거에요 십자가 자기부인의 삶 그 분이 죄를 정결케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에 우편에 앉으셨다 그러죠 거기에 이제 아들에 완성이죠 그 이후에는 없어요 우편에 앉은 게 아들에 완성이죠 예수님은 홀로 완전하신 성자예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 성도가 아니면 그 완전함의 자리에 앉지 못하는 자리로 내려오셨다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을 머리라고 하고 우리를 지체라고 불른다 말이에요 그렇게 하여 아들이 진짜 하느님의 아들이 성자 안으로 이렇게 함몰되어 하느님의 백성인 아들이 완성되는 것 그래서 예수님을 바오로가 모든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에 충만이라고 하는거 교회가 아니면 예수님은 충만이 안되기로 결정해 내신 거에요 이게 성자의 죽음이에요 그분은 완전하신 분인데 교회가 아니면 완전하지 않기로 결정해 버리신게 성자의 죽음이란 말이에요 그게 역사속에서 십자가로 설명이 되는 거라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부활하셔서 보좌 우편에 앉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보좌 우편에 앉았다고 그러잖아요 그죠 그러므로 말미암아 이제 진짜 아들이 완성된 거잖아요 그러면 교회는 어떻게 그 예수라는 아들을 낳아서 하느님에 아들들이 되는 것인지 제가 구약으로 가서 조금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422절 보세요 22 그러면 너는 파라오에게 말하여라.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은 나의 맏아들이다.

맏아들이라는 말이 여기 나와요 그런데 누가 맏아들이라 그래요 이스라엘이 맏아들이래요 맏아들들이라고 하지 않아요 맏아들 이라 그래요 단수에요 단수 하나로 그 열두지파 열둘이 예수라는 그 맏아들을 그리고 있는 거에요 품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단수에요 내 장자야 이스라엘이 내 장자야 그런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개판치고 살잖아요 아들인데 장자인데 그래서 아버지가 그들을 호적에서 파냈다 아니다 아니란 말이에요 뭘 설명한 거라 말이에요 광야 교회라고 하잖아요 스테파노가 교회는 그렇게 뭘 설명하는 거에요 맏아들이라고 하는데 이스라엘이 맏아들이라고 합니다 60만 명 다 죽었잖아요 죽어야 산다 설명해주는 거에요

 

그러니까 이스라엘 12지파 맏아들 그 열두지파는 예수 안으로 함몰되어 들어가서 새롭게 창조되는 그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만 아들로 완료되는 아들이 될 수 있는 그 복음의 이야기를 증거하고 설명하는 자들이라는 말이에요 그래서 하느님의 아들 이야기를 하면 항상 열둘이 쫓아다니는 거에요 이스라엘 열두 아들로부터 시작된 것이니까 그래서 아들하면 열둘이고 열두 아들에서 시작됐어요 그게 아들의 완료란 말이에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율법 선생들과 토론을 하시는 장면 기억을 하시죠 몇 살 12 왜 혈루병 앓던 여인이 12그리고 야이로의 딸이 12, 열두 해 혈루병 앓던 여자 그 여자의 이야기에 붙어 있는게 12난 야이로의 딸의 이야기 예수님에 의해 아들로 혼인이 인제 하나 되는 것이니까 아들로 연합되는 그런 그림이란 말입니다

루가복음 242-49절 보세요 42 예수가 열두살이 되던 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명절의 기간이 다 끝나 집으로 돌아 올 때에 어린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부모는 44 아들이 일행 중에 끼어 있으려니 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제야 생각이 나서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찾아 보았으나 45 보이지 않으므로 줄곧 찾아 헤매면서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갔다. 부모가 도대체 아들을 무엇으로 생각하였길래 12살 먹은 아이인데 하루를 가도록 밥도 안 먹이고 찾지도 않았다는 이야기죠 이것이 아들의 삶이에요 하루가 가서 찾아본거에요 뭐 심부름이나 시키려고 찾아본거 같해요 내가 보니까 찾아보니까 없는 거에요

46 사흘 만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거기서 예수는 학자들과 한 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중이었다. 47 그리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능과 대답하는 품에 경탄하고 있었다. 48 그의 부모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예수를 보고 '예야, 왜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고 말하였다. 49 그러자 예수는 ', 나를 찾으셨습니까?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가 부모를 떠나 예루살렘에 남아서 율법과 대화를 하고 있는데 사흘 만에 그가 뭐라고 부르는지 보세요 하느님을 처음으로 아버지라고 불러요 하느님의 참 아들이 요렇게 된다 요렇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설명해 주는 그림이에요 이거는요 단순히 12살에 예수님이 속썩였다 이런 얘기가 아니란 말이에요 옛 성전에 있는 땅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율법과 싸우는 예수예요 율법주의와 인본과 싸우는 예수 새 성전이신 하늘의 예루살렘이 옛 성전인 땅에 예루살렘을 부수시고 계시는 거에요 무엇으로 지혜로 창조의 지혜잖아요 그 잠언에 보면 지혜로 부수고 계시는 거에요 그게 아들이에요 그래서 12살인 거에요 하늘의 아들 완료된 아들이란 의미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발견된게 사흘 뒤라고 그랬습니다. 십자가 사건이 이미 여기에서 예표 되는 거에요 십자가 뒤에 아들을 완성하신 이가 성전의 선생들로 대표되는 그 옛 성전을 부수시는 거에요 그래서 거기서 예수님이 뜬금없이 하느님을 내 아버지라고 이야기한거에요 그 부모가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랬을 것이란 말입니다 하느님을 내 아버지 성경은 항상 교회에게 주는 글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교회 만 알아듣게 되어있는 거에요 이거는요 이거 부모에게 한 말도 아니에요 우리에게 들으라고 예수님이 부모에게 엉뚱한 소리 한 거에요 하느님이 내 아버지라고, 그렇다면 구약의 이스라엘이 모형하고 있던 신약의 교회도 역시 열둘과 관련이 있어야 되잖아요 구약의 이스라엘이 교회를 모형 하는 것이니까 교회가 바로 예수와 연합한 장자 맏아들이라는 말이에요 교회를 맏아들 아들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그래서 열둘 이어야 되요

에베소서 220-2120 여러분이 건물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건물의 가장 요긴한 모퉁이돌이 되시며 사도들과 예언자들은 그 건물의 기초가 됩니다. 21 온 건물은 이 모퉁이돌을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고 점점 커져서 주님의 거룩한 성전이 됩니다.

새 성전이에요 새성전 교회는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졌어요 사도는 몇 명 12 그래서 묵시록의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12지파 12사도의 이름이 기록된 거고 12열매가 거기에 아들의 생명이라는 뜻이죠 심겨져 있는 거에요 하느님 나라에 거기에 가면 12가지 열매가 많을 것이다 그러니까 거기서도 과일을 먹겠네 이렇게 생각을 하시면 안돼요

 

묵시록 2110-14절 보세요 10 그리고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은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 가 하느님께서 계시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게 신부예요 우리 이야기하는 거에요) 11 그 도성은 하느님의 영광에 싸여 그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과 같았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과 같았습니다. 12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 두 대문이 있었고 그 열 두 대문에는 천사가 하나씩 있었으며 또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13 그 대문은 동쪽에 셋, 북쪽에 셋, 남쪽에 셋, 서쪽에 셋이 있었습니다. 14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 두 주춧돌이 있었는데 그 주춧돌에는 어린 양의 열 두 사도의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결국 뭐라는 거에요 완료된 아들이라는 뜻이죠 그래서 열둘이에요 그래서 계속 이렇게 반복되는 거에요 예수를 머리로 한 한 몸으로서의 아들 이것이 신부란 말이에요 우리란 말이에요

에베소서 15절 보세요 5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언제 창세전에, 묵시 속에 일이잖아요 이게 그 아들 그것을 이 땅에서 설명해 내는 거에요 열둘로. 성경은 이렇게 먼지들의 그 하느님 아들 되기 관한 내용으로 가득 차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흥미있는건 항상 그 열둘 중에 한사람이 죽고 나머지가 열둘로 다시 채워져 아들로 완성이 되는 그런 형국으로 열둘이 아들이 돼요

 

야곱에 열두 아들 중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으로 가서 죽은 자로 살아요 아버지는 요셉을 죽은 아들로 여기면서 살아요 그래서 나중에 나타났을 때에 깜짝 놀란 거예요 그 기간 동안에 얼마나 아팠겠어요 이 아버지가 이게 하느님의 마음인 거에요 아들은 죽은 자예요 아버지에게 있어서는 그런데 아들이 돌아오는데 구원자가 되어 돌아오죠 기근으로 다 죽어야 되는데 기근으로 다 죽어야 되는데 아들이 구원자가 되어 죽은 아들이 구원자가 되어서 돌아온다 말이에요 예수의 이야기에요 그리고 열둘이 채워진대니깐요 다시 돌아와서 요셉이라는 이름의 뜻이 그가 더하실 것이다 에요 그가 누구에요 누구로 더해요 무엇으로 더해요 예수로 더한다는 뜻이에요 그는 죽고 그 대신에 뭘로 다른걸로 더해 주는데 그게 구원자로 오는 거에요 죽은 아들은 없어지고 구원자가 된 아들이 더해져서 돌아오는 그 이야기가 요셉의 이야기란 말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형들의 죄를 아버지께 고자질하는 이야기를 했죠 팔려가기 전에 율법의 역할이에요 참소하는 자의 역할이에요 그게 뭐에요 참소하는 자가 뱀 마귀란 말이에요 요셉이 인격이 미성숙하여 형들을 그렇게 자주 고자질하고 그런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에요 구원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그 뱀 율법 참소하는 자 마귀가 되어서 요셉이 죽고 그 나머지들을 구원하는 자로 그가 참소한 죄에서 구원하는 자로 다시 오는 거에요 그리고 열둘이 채워지는 거에요 그래서 요셉이 열두지파에 끼지 못하고 요셉의 두 아들 요셉이 갖고 있는 내용이에요 그건요 성경에 보면 야곱의 약전이 이러하니라 하고 요셉의 이야기를 설명하죠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갖고 있는 내용이란 말입니다 야곱이 갖고 있는 내용이 이것이였다 라는 것을 설명하는게 요셉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요셉은 열두지파에 못 들어가고 두 아들이 12지파에 들어가요 므낫세와 에브라임 그런데 이게 뒤집어 진다 말이죠 그리고는 열둘이 완성이 되는 거거든요.

 

열두 사도들 중에서 유다가 빠져요 예수님이 유다 보고 뭐라고 그랬어요 마귀라고 그랬잖아요 나 판 놈은 마귀다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하였다 그랬어요 그런데 유다는 이스라엘의 이름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유대인이라고 하는 거에요 그리고 다윗 예수님이 유다의 자손으로 와요 유다지파에서 온다는 말이에요 뭔가 연관이 있겠죠 유다가 뱀으로 마귀로 죽는 거에요 그리고는 마티아로 채워지죠 그런데 마티아는 거기 이외에 한 번도 안나와요 마티아는 그냥 열둘을 채우는 그런 역할만 하고 사라져 버려요 그리고 그 열둘 나머지 하나의 일을 사도 바오로라는 인물이 해요 그래서 열둘이 되요 아들이 된다 말이에요 그런데 사도 바오로는 어떤 지파 베냐민지파예요

필립보서 35-6절 보세요 5 나는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났으며 난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히브리 사람 중의 히브리 사람입니다. 나는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파 사람이며 6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써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다면 나는 조금도 흠이 없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성경이 너무 기가 막히지 않아요 오른손의 아들로 열둘이 완성이 되잖아요 라헬을 이스라엘의 어머니라고 그러잖아요 라헬이 낳은 것은 요셉과 베냐민 밖에 없단 말이에요 그런데 요셉은 죽는 자 베냐민은 오른손의 아들 완성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리고 이 베냐민을 나으면서 여자가 죽는 거에요 이것이 구원의 이야기란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열둘 아들이 완성되는 거에요 예수님이 그 베냐민이라는 단어의 뜻은 오른손의 아들 진리의 아들 보편에 앉음 이런 뜻이거든요 그렇게 하여 아들이 완성되는 거잖아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우편에 앉으셨죠 그리고 또 어디에서는 하느님의 오른손으로 그를 들어올렸다. 그런다 말이에요 베냐민의 이야기에요 그것이 사도행전 232-35절 보세요

32 바로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으며 우리는 다 그 증인입니다. 33 하느님께서는 이 예수를 높이 올려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성령을 지금 여러분이 보고 듣는 대로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했으나 그는 '주 하느님께서 내 주님께 35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 아래 굴복시킬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고 하셨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시편의 이 이야기는 다윗의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의 이야기였다 라고 하는 거에요 그러면서 시편을 인용해다가 뭐라 그러냐 하면 우편에 앉으셨다 하느님이 오른손으로 그를 드셨다 이렇게 이야기해요 무슨 이야기에요 이게 아들을 완료하시는 베냐민 이라는 뜻이에요 그래서 사도 바오로가 열둘의 마지막으로 들어가서 베냐민지파의 바오로가그 일을 완료해 내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시작하셔서 하느님이 완료하는 하느님의 창조 역사이에요 그걸 아는 이들이 두려움과 공포에서 서서히 벗어나게 되는 거에요 우리가 무엇을 하려 할 때에 우리는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죽음에 도달하게 돼요 그래서 무서운 거죠 그런데 그 모든 것의 주권이 하느님께 있다는 게 점차 확고하게 깨달아질 때에 우리는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거에요 평화 안식 기쁨 복 이게 천국의 현실이란 말이에요 그게 어떻게 오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그것과 반대되는 것을 우리가 육을 입고 이 세상에서 많이 경험해 봐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불안해하지 마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라고 설교를 하는 놈이 제일 불안해 막 119에 연행되고 막 그래요 불안해서 나좀 숨겨주세요 그랬더니 그게 다 해결된 뒤에 설교를 하면 내가 예수죠 그리고 여러분에게 여러분 우리는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아들을 완성하시죠 그리고 제자들에게 뭘 주시죠 평화를 주시잖아요

 

요한복음 2021-23절 보세요 21 예수께서 다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 주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셨다. 22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을 계속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23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다.'

성령을 주세요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예수님의 역할을 우리에게 맡기는 거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이제 열둘로 아들을 완성하세요 유다가 빠지고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 예수님이 뱀 마귀 놋뱀 유다가 되셔서 죽으셨잖아요 근데 구원자가 되어 열둘을 채우러 오신 거에요 지금 이 장면이요 유다는 없는 자리란 말입니다 여기가 그런데 그 아들을 완성하신 예수님이 오셔갖고 그 아들에게 뭘 주냐하면 성령을 주세요 그리고는 평화다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평화를 받으라가 아니라 평화다 그러세요 평화다 여러분 이 평화이라는 단어는 평화롭다 둘이 하나가 되다 뭐 이렇게 등지고 있던 사람이 돌아서서 꽉 끌어 앉다 연합 이런 의미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깊은 메시지가 들어있는데

열왕기상 925, 솔로몬은 그가 야훼께 지어 바친 제단 위에서 번제와 친교제를 일 년에 세 차례 드렸고 야훼 앞에서 분향제도 올렸다. 이리하여 솔로몬은 성전 공사를 모두 마쳤다.

솔로몬이라는 이름 자체가 샬롬이죠 평화, 평화의 왕이에요 예수님을 모형하는 거에요 그런데 이 문장에 또 하나의 평화가 있어요 평화의 왕이 평화를 완성하는 건데 맨 뒤에 전 공사를 마쳤다 그러죠 이거는 홀 히스토리란 말이 아니라 성전 짓는 일이 완성됐다 라는 뜻이거든요 고 단어가 샤람 샬롬이에요 신기하죠 성전이 완성되는 그 일을 히브리사람들이 샬롬이라고 그래요 따라서 평화는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에 평화의 왕에 의해 성전이 완성 되었을 때에 그 완성에서 오는 자유와 평안을 가리키는 거에요 그게 샤람 샬롬이에요. 따라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부으시면서 평화다 라고 말씀하시는 건 이젠 너희는 성령에 의해 완성이 된 성전이다 라는 거에요 그러니까 자유하라 이게 평화에요 그러면서 성령을 확 불어넣어 주는 거죠 그러니까 두려움이 있으면 안 되는 거에요 하느님 나라에 완료됬으니까 평화니까 그런데 주님은 제자들에게 평화를 선포하시면서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 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그래요 그냥 완료됐으니까 하늘로 가자가 아니라 역사속에서 할일이 있다 그래요 평화의 완료자인 평화의 왕인 내가 한 일을 너희들이 역사속에서 해야 된다는 뜻이에요 성전 짓기 창조의 사역에 우리를 동참시키겠다는 거에요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예수님에 육에 죽음이란 말이에요 처절하게 버림을 받는 거에요 아담에 지혜 선악과에 지혜 율법이 하느님으로부터 처절하게 버림을 받는 그 그림인 거죠 이렇게 옛 성전으로서에 예수는 처절하게 철저하게 버림을 당하고 새성전인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을 하시는 거에요 성령과 함께 엄밀히 말하면 예수 안에 늘 존재하던 새 성전이 밖으로 이렇게 드러나는 거란 말이에요 이게 진짜다 표상이 표적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그런데 예수님이 그런 일을 시키기 위해 우리도 보내겠다는 거에요 우리도 그 과정을 말씀으로써에 과정을 똑같이 겪게 된다는 그런 뜻이에요 그리고는 너희들이 뉘 죄라도 사하면 그 죄가 사해지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그래요

무슨 말이겠어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은혜를 올바로 깨닫고 또 그 삶을 자기 부인에 삶을 살게 되고 입으로 전하게 될 때에 그리스도에 편지잖아요 그게 말씀이잖아요 우리가 달리는 말씀 그 때에 하느님에 선택안에 있는 사람들은 알아듣고 죄가 사해지는 거에요 우리에게 능력이 있는게 아니라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에 일이 이루어지는 거니까 그거는 우리께 아니란 말이에요 그러나 제가 이렇게 말씀을 던졌을때 여러분이 이해하는게 사해지는 거잖아요 그게 우리에게 그러니까 그리스도에 역할을 하는 거에요 우리가요 역사속에서도 그게 그리스도가 하신 일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니깐요 그런데 그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어야 되요

 

성경은 우리가 이미 하느님에 아들들이 되었다라고도 하고 하느님이 우리를 보좌 우편에 앉히셨다 그래요 우리가 벌써 오른손에 아들 완전한 성전이 되어 있다라는 거에요 뭘 근거로 한 사람 예수 그 사람에 그 아들로 말미암아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에 삶을 반드시 살게 되어 있어요 따라서 우리는 우리에 외모나 됨됨이나 삶에 열매나 헌신에 모양등으로 우리 자신을 평가하거나 정죄해서 스스로 두려움과 공포에 들어가서는 안되는 거에요 자유하세요 한사람이 다 이루셨습니다.

요한복음 313절 보세요 13 하늘에서 내려 온 사람의 아들 외에는 아무도 하늘에 올라 간 일이 없다.

그 인자 안에 누구있다 나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왔고 카타 바이노 하늘로 다시 올라갈 자는 그들 밖에 없는 거에요 아나바이노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우리가 근데 올라가기 위해서는 그 하늘에서 내려온 그분이 죽은 그 죽음을 반드시 죽어야 되요 놋뱀에 죽음을 죽어야 된다는 거에요 그래요 올라간다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그랬죠 너는 거듭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못들어간다 그랬을때 거듭나다가 위로 부터 나다에요 예수님이 위로부터 내려온 자는 반드시 올라가게 되는데 놋뱀이 되어 십자가에 달린다 그랬잖아요 지금 위로부터 난 거듭난 우리가 바로 그 사람을 살게 된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 사람들에 됨됨이나 그들의 행위나 이런거 갖고 뭐 존경할 것도 없고 부끄러워 할것도 없고 지적할 것도 없어요 그 모든 것들은 다 그냥 그 안에서 일어나는 그 각자에 인생속에서 일어나는 예수에 삶인 거에요 그것이요 그래서 결국 우리는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라는 이 고백까지 하게 되는 거에요 처절하게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경험을 하지 못하는 자는 진짜 아들 아니에요 왜 하느님이 나를 버리셔야 되요 그 사람은 아직 구원이 복음이 뭔지 모르는 거에요

 

여러분은 이 땅에서 철저하게 하느님으로부터 버려짐을 당해 봐야 되요 그리고 그 두려움과 공포를 겪어 내셔야 되요 지옥이거든요 그걸 지옥에 백신이라고 그래요 그리고는 하느님이 완료하실 수 밖에 없는 그 하느님 나라를 희망하게 되는 거에요 진심으로 우리에 현실은 이미 하늘에 완료가 되어 있습니다. 평화로워라 십자가에서 육을 삭제당하신 예수께서 평화를 이루시고 우리에게도 너희도 그렇게 될 것이니 평화로워라 제발 그 육좀 바라보지마 니네 육신좀 바라보지마 평화다 완료됐다 성전은 이미 끝났다 말씀하시는 거에요 잊지 마세요 우리가 하느님께 우리의 인생을 차압당하고 세상에서 죽어가는게 평화로 가는 길임을 잊지 마시고 두려움 공포 불안 부끄러움 등에서 자유하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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