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9월 3일(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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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09-03 | 조회수1,527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9월 3일 [(백)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은 540년 무렵 로마의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문에서 태어났다. 법학을 비롯한 귀족 계층의 고등 교육을 받은 그는 로마의 고위 공직자를 지낼 정도였으나 모든 재산을 교회에 기증하고 수도원에 들어가 사제가 되었다. 590년에 교황으로 뽑힌 그레고리오 성인은 교황을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라고 표현한 최초의 교황이다. 교황권을 ‘지배하는 특권’이 아니라 ‘봉사하는 특전’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오 성가’도 그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듯이, 그레고리오 교황은 전례 음악뿐 아니라 신앙과 윤리에 관한 저서를 많이 남기고 604년에 세상을 떠났다. 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안식일에 이사야 예언서 두루마리를 펴시고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신다. ◎제1독서◎ <나는 여러분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였습니다.> 말씀입니다. 2,1-5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나는 약했으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이루어졌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화답송◎ 시편 119(118), 97.98.99.100.101.102 (◎ 97ㄱ) 사랑하나이다. 사랑하는지! 온종일 그 가르침을 묵상하나이다. ◎ 주님, 제가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나이다. 그 계명 저를 원수보다 슬기롭게 하나이다. ◎ 주님, 제가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나이다. 어느 스승보다 지혜롭사옵니다. ◎ 주님, 제가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나이다. 어느 노인보다 현명하옵니다. ◎ 주님, 제가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나이다. 온갖 악한 길에서 발길을 돌렸나이다. ◎ 주님, 제가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나이다. 당신 법규에서 벗어나지 않았나이다. ◎ 주님, 제가 당신 가르침을 사랑하나이다. ◎복음환호송◎ 루카 4,18 주님이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복음◎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복음입니다. 4,16-30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회당에 들어가셨다. 일어서시자,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해방시켜 내보내며 선포하게 하셨다.”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좋게 말하며,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그들에게 이르셨다.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해 보아라.’할 것이다.”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들었던 엘리야 때에,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오늘의묵상◎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의 회당에서 당신 사명을 공적으로 선포하십니다. 특히 이사야 예언서의 한 부분을 읽으심으로써, 당신께서 맡으신 사명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히십니다. 그 사명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눈먼 이들은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는 일입니다. 매우 이상하지 않습니까? 처음에는 예수님을 칭찬하다가, 잠시 뒤에는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아 산벼랑에서 밀어 떨어뜨리려 합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두 가지 마음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복을 받으려는 마음과 복을 받지 못하면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거부하는 마음이 대조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놀라워하다가, 예수님께서 이방인들이 구원받은 사례를 말씀하시자, 그만 격노하였지요. 유다인을 제쳐 두고 이방인인 사렙타 마을의 과부와 시리아 사람 나아만에게 은총이 내렸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있었기에 이방인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누구나 다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께서도 가난한 이들, 잡혀간 이들, 억압받는 이들을 구원하시겠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주변의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처지에 있더라도 희망을 품을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모든 이가 인간다운 품위를 누리도록 사랑의 실천을 펼쳐야 하겠습니다.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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