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믿는 우리도 연민과 자비의 마음을 / 연중 제24주간 화요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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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8-09-18 | 조회수1,57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우리는 고통이나 어려움을 겪을 때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더 나아가 누군가의 귓속말도 은근슬쩍 기대기도 할게다. 척 보면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이런 곤경을 호소하는 말없는 이의 그 눈빛에 뿜는 딱한 사정도 마냥 귀담아보시면서 늘 돌보셨으리라. 모르긴 몰라도 이런 견딜 수 없는 큰 고통에서 주님을 더 자주 더 깊이 만난다나. 자신의 잘남만을 믿다가, 한 치 앞도 어찌 할 수 없는 골목에 맞닿는 순간, 그 끝장에서는 결국 주님을 부른단다. ‘그분은 우리의 그 어떤 슬픔도 결코 외면하지 아니하시기에.’
자식의 시신을 메고 가는 상여 뒤를 그 어미와 큰 무리가 행렬을 지어 따라간다. 과부 홀로 오로지 이 외아들에게만 온 희망을 두고 모든 것을 바치며 산 여인의 모습이 끝내 안쓰럽다. 수많은 이가 같이 슬퍼하며 상여 뒤를 따르는 것으로 보아 그 여인의 그 한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할 수 있겠다. 자식이 먼저 죽으면 가슴에 묻는단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을 먼저 보내는 그 심정은, 차마 그 누구도 표현키 어려운 고통이라나.
예수님께서는 불쌍한 과부의 외아들 상여를 메고 나오는 장례 행렬과 마주쳤다. 그분께서는 유일한 희망인 외아들을 잃은 과부의 딱한 처지에 측은한 마음이 드셨으리라. 이처럼 생명과 죽음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곤경에 처한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연민과 자비의 하느님이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하느님의 참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할게다. 비록 하느님이 침묵하시고 무력하신 분, 우리를 아랑곳하지 않는 분인 것처럼 느껴지는 유혹의 순간에도, 예수님께서 몸소 보여 주신 참 모습에서 오직 그분만을 기다려야 하리라. 이것이 믿는 우리가 늘 지녀야만 하는 ‘중요한 자세’일 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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