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10월 9일(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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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10-09 | 조회수2,00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10월 9일 [(녹)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자신 안에 계시해 주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시중드는 일로 분주한 마르타에게,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했다고 하신다.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 주셨습니다.> 말씀입니다. 1,13-24 13 내가 한때 유다교에 있을 적에 여러분은 이미 들었습니다. 몹시 박해하며 아예 없애 버리려고 하였습니다. 사람들보다 앞서 있었고, 일에도 훨씬 더 열심이었습니다.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을 찾아 예루살렘에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갔습니다. 케파를 만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 만나 보지 않았습니다. 보았을 뿐입니다. 이 글은 하느님 앞에서 말합니다만 거짓이 아닙니다. 킬리키아 지방으로 갔습니다. 그리스도의 여러 교회에 얼굴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박해하던 그 사람이 지금은 자기가 한때 그렇게 없애 버리려고 하던 믿음을 전한다.”는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화답송◎ 시편 139(138), 1-3.13-14ㄱㄴ.14ㄷ-15 (◎ 24ㄴ 참조) 저를 이끄소서. 잘 아시나이다. 앉으나 서나 당신은 저를 아시고, 멀리서도 제 생각 알아차리시나이다. 길을 가도 누워 있어도 헤아리시니, 당신은 저의 길 모두 아시나이다. ◎ 주님,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어미 배 속에서 저를 엮으셨나이다. 오묘하게 지어 주신 이 몸, 당신을 찬송하나이다. 당신 작품들은 놀랍기만 하옵니다. ◎ 주님,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제가 남몰래 만들어질 때, 땅속 깊은 곳에서 짜일 때, 제 뼛속까지 당신께 드러났나이다. ◎ 주님, 영원한 길로 저를 이끄소서. ◎복음환호송◎ 루카 11,28 참조 지키는 이들은 행복하여라. ◎복음◎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복음입니다. 10,38-42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동생이 있었는데,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대답하셨다.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한 가지뿐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묵상◎ 바오로 사도는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자신을 선택하신 하느님의 섭리를 간파하고 있습니다. 불철주야 소아시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한 사도의 활동은 하느님께서 주신 부활의 은총에서 그 원동력을 얻습니다. 대접하느라 분주하였습니다. 그녀는 손이 모자라자 동생 마리아의 도움을 예수님께 요청하였습니다. 의외로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가지고 있는 좋은 몫을 존중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르타에게 너무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지 않도록 당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봉사한다는 명목으로, 바쁘다는 핑계로 하느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를 주십니다. 정신을 쏟다 보면 외면적인 업적에 매달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의 분주한 일과 걱정에 마음을 빼앗겨 우리 마음속에 하느님의 말씀을 모시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점점 우리의 마음은 메말라 가고 하느님의 뜻과 섭리를 알아듣지 못하게 됩니다. 마음에 새기며 봉사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입니다. 참되게 하느님을 섬기는 길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마르타는 자신의 봉사를 자랑하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잘 모시고 섬기는 길을 알려 주는 모범이 됩니다. 그녀는 사랑의 봉사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참된 힘을 발휘하는 길을 보여 주는 표징이 되고 있습니다. 마르타가 하는 봉사와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귀담아듣는 행위는 모두 귀중한 것이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두 가지 방식입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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