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11월 11일(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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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11-11 | 조회수1,42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11월 11일 [(녹)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평신도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으로서,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크게 부각하면서, 평신도를 통하여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이러한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지금은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의 결성과 더불어 해마다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 로 지내기로 하였다.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직의 사명을 거듭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뒤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연중 마지막 전 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하면서 2017년부터 한 주 앞당겨 지내고 있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32주일이며 평신도 주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고아들과 과부들의 아버지, 떠돌이들의 피난처, 억눌린 이들의 정의이시니, 하느님 사랑에 의탁하는 불쌍한 이들을 지켜 주십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자유와 빵을 넉넉히 얻어,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가진 것을 형제들과 함께 나누도록 합시다. 말씀의초대 엘리야 예언자는 사렙타의 과부에게 물과 빵을 청하고는, 그 여자의 밀가루 단지는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제1독서). 히브리서의 저자는,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하신다. ◎제1독서◎ <과부는 밀가루로 작은 빵을 만들어 엘리야에게 가져다주었다.> 말씀입니다. 17,10-16 10 일어나 사렙타로 갔다. 마침 한 과부가 땔감을 줍고 있었다. 하고 청하였다. 엘리야가 다시 불러서 말하였다. 살아 계시는 한, 한 조각도 없습니다. 병에 기름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주워다가 음식을 만들어, 먹고 죽을 작정입니다.” 당신 말대로 음식을 만드시오. 빵 과자 하나를 만들어 내오고, 위하여 음식을 만드시오. 이렇게 말씀하셨소. 다시 내리는 날까지,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다. 그 여자의 집안은 오랫동안 먹을 것이 있었다. 통하여 하신 말씀대로, 병에는 기름이 마르지 않았다. ◎화답송◎ 시편 146(145), 6ㄷ-7.8-9ㄱ.9ㄴㄷ-10ㄱㄴ (◎ 1ㄴ)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여라.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 9,24-28 참성소의 모조품에 지나지 않는 곳에,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하느님 앞에 나타나시려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피를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듯이, 들어가신 것이 아닙니다. 창조 때부터 여러 번 고난을 받으셔야 했을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에 죄를 없애시려고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그 뒤에 심판이 이어지듯이,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바치셨습니다. 이들을 구원하시려고 나타나실 것입니다. ◎복음환호송◎ 마태 5,3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복음◎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복음입니다. 12,38-44 38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이르셨다.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즐기고, 잔치 때에는 윗자리를 즐긴다. 등쳐 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한다. 단죄를 받을 것이다.” 맞은쪽에 앉으시어,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 ◎오늘의묵상◎ 진심은 통한다고 합니다. 가뭄에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줌과 기름으로, 죽기 전에 아들과 마지막 음식을 만들어 먹으려던 사렙타의 한 과부는 엘리야 예언자를 믿었기에 살 수 있었습니다. 궁핍한 가운데 하루 먹고 살 생활비를 모두 헌금함에 넣는 과부의 모습을 칭찬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채워 주신다는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 주십니다. 갖고 있기에 어떻게 해서든 살길을 찾기 마련입니다. 인간도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니 생존의 문제라면 도덕 가치나 윤리 규범들이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더 나쁜 것은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 먹으면서도 도덕적으로 남에게 흠이 없는 것처럼 보이고, 윗자리에 앉아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뽐내면서 기도하는 위선적 삶입니다. 예수님께 심한 질책을 받는 바리사이들의 모습이 결코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고, 지금의 교회의 모습이 아니라고 선뜻 부정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완전한 희생 제물로 봉헌하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자기 비움으로 하늘 나라의 문을 여시고, 죄와 죽음을 이겨 내신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승리에 희망을 두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를 봅니다. 비록 현실은 어둡고 힘들지만, 그리스도인은 시편 저자의 기도가 현실이 될 것임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은 영원히 신의를 지키시고,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아멘! 그렇게 되기를 빕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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