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11월 15일(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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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11-15 | 조회수1,63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11월 15일 [(녹)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필레몬에게, 옥중에서 얻은 아들 오네시모스를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맞아들여 달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고 하신다. ◎제1독서◎ <그를 종이 아니라 사랑하는 형제로 맞아들여 주십시오.> 말씀입니다. 7-20 7 나는 그대의 사랑으로 큰 기쁨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생기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안에서 큰 확신을 가지고 명령할 수도 있지만, 탁을 하려고 합니다.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얻은 내 아들 부탁하는 것입니다. 쓸모없는 사람이었지만, 쓸모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대에게 돌려보냅니다. 갇혀 있는 동안 그대 대신에 나를 시중들게 할 생각도 있었지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떨어져 있었던 것은 위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종이 아니라 종 이상으로, 돌려받게 되었습니다. 사랑받는 형제라면, 주님 안에서 보나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나를 동지로 여긴다면, 맞아들여 주십시오. 입혔거나 빚을 진 것이 있거든 직접 씁니다. 내가 갚겠습니다.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그대의 덕을 보려고 합니다. 생기를 얻게 해 주십시오. ◎화답송◎ 시편 146(145), 6ㄷ-7.8-9ㄱ.9ㄴㄷ-10ㄱㄴ (◎ 5ㄱ) 야곱의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는 이! 억눌린 이에게 권리를 찾아 주시며, 굶주린 이에게 먹을 것을 주시네. 주님은 잡힌 이를 풀어 주시네. ◎ 행복하여라, 야곱의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는 이! 주님은 꺾인 이를 일으켜 세우시네. 주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주님은 이방인을 보살피시네. ◎ 행복하여라, 야곱의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는 이! 악인의 길은 꺾어 버리시네. 주님은 영원히 다스리신다. 시온아, 네 하느님이 대대로 다스리신다. ◎ 행복하여라, 야곱의 하느님을 구원자로 모시는 이! ◎복음화답송◎ 요한 15,5 참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복음◎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복음입니다. 17,20-25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 있다.” 이르셨다. 하루라도 보려고 보지 못할 것이다. ‘보라, 저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따라가지도 마라.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그러할 것이다.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배척을 받아야 한다.” ◎오늘의묵상◎ 하느님 나라, 천국은 모든 인간이 갈망하는 영원한 안식처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예수님께 묻는 바리사이들의 질문에는, 율법을 준수하고 경건하게 살아가는 자신들 같은 사람들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있다는 교만한 마음이 숨겨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결코 인간이 세운 잣대에 부합하는 이들만의 소유가 될 수 없음을 밝히십니다. 하느님 나라는 오히려 고난을 겪고 배척을 받으며 이 세상이 아닌 하느님 안에서 참된 평화와 기쁨을 누리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수인이 되었지만 하느님과 함께 살았고, 하느님의 마음으로 사람들을 섬겼기에, 살면서 이미 하느님을 만난 분이었습니다. 그가 담은 하느님의 마음은 필레몬에게 자신이 아들처럼 아끼던 오네시모스를 보내는 애틋한 사랑에서 잘 드러납니다. 자신의 심장처럼 여기고, 자신 곁에 두고 시중을 들게 하고 싶었지만, 그를 더 이상 종이 아닌 자유인으로, 사랑하는 형제로 보내는 마음이나, 그가 진 빚을 자신이 직접 갚아 주겠다고 약속하는 바오로 사도의 마음에는, 한 인간을 사랑하는 하느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감옥에 갇혔어도 바오로와 그가 사랑한 사람들 사이에는 평화롭고 사랑 넘친 하느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곁에 두고 있습니까? 나만 아는 이기적인 삶에 빠져 심장처럼 아낄 만한 사람 하나 없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세상에서 실컷 즐기며 살다가 하느님을 만나 당혹해 하기 전에, 세상에서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내 이웃을 통하여 먼저 만나 보고 싶지 않으십니까?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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