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1.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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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11-27 | 조회수1,826 | 추천수4 | 반대(0) 신고 |
2018년 11월 27일 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제1독서 묵시 14,14-19 나 요한이 14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에서 나와, 구름 위에 앉아 계신 분께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땅의 곡식이 무르익어 수확할 때가 왔습니다.” 계신 분이 땅 위로 낫을 휘두르시어 땅의 곡식을 수확하셨습니다. 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왔는데, 그도 날카로운 낫을 들고 있었습니다. 18 또 다른 천사가 제단에서 나왔는데, 그는 불에 대한 권한을 지닌 천사였습니다. 그가 날카로운 낫을 든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포도나무에서 포도송이들을 거두어들이십시오. 포도가 다 익었습니다.”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들이고서는, 하느님 분노의 큰 포도 확에다 던져 넣었습니다. 복음 루카 21,5-11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한때 저에게는 부러운 사람이 너무 많았습니다. 노래 잘 부르는 사람, 말 잘 하는 사람, 운동 잘 하는 사람, 공부 잘 하는 사람, 친구가 많은 사람, 부유한 사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등등... 세상에는 왜 이렇게 나보다 뛰어난 사람이 많은지 모르겠더군요. 그런데 어느 날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 보이는 친구가 어두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마음이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지요. 그때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외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뿐 아니라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의 무게까지 헤아려야 한다는 것을 말이지요. 지금 현재 제 마음의 무게는 그 누구보다도 무겁다고 자부합니다. 비록 겉보기에는 볼품없어 보이지만, 마음의 무게만은 그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로 무겁습니다. 그래서 어떤 고통과 시련이 찾아와도 밝게 웃을 수 있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제외하고는 형편없는 제 모습이지만, 주님과 연결해보니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하지만 항상 마음의 무게가 무거운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마음이 뻥 뚫린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바로 마음이 가벼워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마음이 가벼워질 때를 떠올려보면 주님과 함께 하지 못했음을 깨닫습니다.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 더 많은 집중을 하고 있을 때인 것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세상의 것들에 집중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뜻에 집중하면서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마음의 무게가 더욱 더 무거워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세상 안에서 어떤 시련과 고통이 찾아와도 거뜬하게 이겨낼 수 있습니다. 보고 있는 화려한 성전을 보면서 감탄을 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화려함도 금세 사라질 수밖에 없음을 말씀하십니다. 즉, 영원할 것만 같았던 성전이 곧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만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비록 그 날과 그 시간은 알 수가 없지만 주님을 충실하게 따름으로 인해 하늘에서 보여주는 큰 표징들을 알아챌 수 있게 된다고 하시지요. 들어야 합니다. 순간의 만족만을 가져다주는 화려함과 풍요로움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시는 주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을 선택하게 될 때, 내 마지막 순간에서도 큰 두려움 없이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 내 마음의 무게가 그만큼 무거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풍요보다는 마음의 풍요를 통해서 더욱 더 기쁘게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삶의 길목마다 사는 맛이 마련돼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박완서)
어제 조형예술대학에 강의를 갔다가 산책을 했던 학교 옆 미추홀 공원입니다. 죽음을 떠올리며...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는 ‘분노를 다스리는 법’에서 “내가 죽여 버리고 싶은 사람을 굳이 죽이지 않아도 자연이 알아서 죽인다.”라고 말했습니다. 어차피 늙어 죽을 사람을 복수라는 이유로 좀 더 빨리 보내고 싶어 살인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죽음’으로 끝납니다. 이 마지막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 누구에게도 그러한 권한이 주어지지도 않습니다. 오로지 주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라보고 힘을 쏟아야 할 것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바로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세계를 바라보고,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힘을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영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영역을 침범하는 죄를 범해서 주님으로부터 멀어져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주님께 순명하면서 주님의 자리를 지켜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하느님 나라는 우리에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게 됩니다.
미추홀 공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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