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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미사강론]복자 바오로 6세 등 일곱분의 시성과 거룩한 미사 [2018.10. 14.주일]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8-11-27 조회수1,837 추천수1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s://www.vaticannews.va/en.html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8.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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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81014일 주일[연중 제28주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지혜서 7,7-11

화답송 : 시편 90(89),12-13.14-15.16-17(◎ 14 참조)

2독서 : 히브리서 4,12-13

복음 : 마르코 복음 10,17-30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8893&gomonth=2018-10-14&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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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자 바오로 6, 오스카 로메로, 프란치스코 스피넬리, 빈센조 로마노,

마리아 카테리나 카스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나자리아 이그나시아,

눈치로 술프리치오의 시성과 거룩한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광장

2018 10 14일 주일

 

2독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리서 4,12).”라고 말합니다. 정말 그러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단순히 한 세트의 진실들이거나 교훈적인 종교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닙니다-그것은 우리의 삶을 어루만지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그곳에서 사람이신 예수님, 하느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 우리 마음에 말씀하십니다.

 

복음은 특히 그분 앞에 달려온(마르코 복음 10, 17 참고) 그 사람의 예를 들면서 주님과의 만남으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 사람 안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마치 그 사람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표할 수 있다는 듯이 성경은 그의 이름을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마르코 복음 10, 17) 하고 묻습니다. 그는 영원한 생명, 완전한 생명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이것을 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 사람이 그것[영원한 생명]을 유산으로서, 획득되는 좋은 것으로서,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 내는 좋은 것으로서 청하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사실 그는 이 좋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서 그가 어려서부터 계명들을 다 지켜 왔고 이것을 얻기 위해서 그는 다른 것들을 따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묻습니다.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예수님의 대답은 그의 허를 찌르십니다. 주님께서 그를 바라보시고 그를 사랑하십니다(마르코 복음 10, 21 참고). 예수님께서 관점을 바꾸십니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 지켜져 왔던 계명들에서 온전하고 거저 받는 사랑으로. 그 사람은 수요와 공급에 대해 말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사랑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율법의 준수에서 자신을 위한 선물로 나아가라고 청하십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하는 행함에서 하느님과 함께 있음으로 나아가라고 청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 사람에게 그의 가장 깊은 곳에 사무치는 생명을 이렇게 제안하십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당신에게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와라, , 멈춰 서 있지 말아라 왜냐하면 예수님과 같이 있기 위해서는 악을 행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를 따라라. 네가 원할 때만 예수님 뒤에서 걷지 말아라, 매일 그분을 찾아라. 계명을 지키는 것에 만족하지 말아라, 약간의 자선 기금을 내고 조금 기도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아라. 그분 안에서 언제나 너를 사랑하는 하느님 찾아라. 예수님 안에서 네 인생의 의미이신 하느님, 너 자신을 위해서 너에게 힘을 주시는 하느님을 구하라.

 

예수님께서는 혁신적인 분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주시고 그리고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사랑 전부를 주시고 분리되지 않은 완전한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오늘도 그분께서는 살아 있는 빵으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십니다. 그 답으로 우리는 빵 부스러기라도 드릴 수 있습니까? 그저 몇 가지 계명들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우리는 그분께 응답하지 못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로 하시면서까지 당신 자신을 우리의 종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그분께 드리지 못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몇 퍼센트의 사랑으로 만족하지 않으십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그분을 20퍼센트나 50퍼센트 또는 60퍼센트 사랑할 수 없습니다. 완전히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은 자석과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사랑에 끌리도록 스스로를 놓아 둡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한 분이신 스승님에게 끌려 매달릴 수 있고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즉 하느님을 사랑하든지 아니면 세상의 보물을 사랑하든지(마르코 복음 8,35). 하느님과 우리의 사랑 이야기에서 우리가 어디쯤에 있는지 우리 자신에게 물어 봅시다. 약간의 계명에 스스로 만족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연인으로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그분을 위해 어떤 것을 버릴 준비를 진정으로 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우리 모두에게 나아가는 여정에 있는 교회로서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좋은 계명들만 가르치는 교회입니까 아니면 주님과의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앞으로 내달리게 하는 정배인 교회입니까? 우리는 진정으로 그분을 따르고 있습니까 아니면 복음 속의 그 사람처럼 세상의 길로 되돌아가고 있습니까? 한마디로 우리에게 예수님으로 충분합니까 아니면 많은 세속적인 안전들을 찾고 있습니까? 주님과의 사랑을 위해서 버릴 수 있는 은총을 언제나 간구합시다. 부유함을 버리고 지위와 권력에 대한 열망을 버리고 복음을 선포하기에 더 이상 적절하지 않은 조직의 구조들을 버리고 우리의 소임을 늦추는 저 무거운 짐들을 버리고 세상과 우리를 묶어 놓는 끈들을 버리는 은총을 간구합시다. 사랑 안에서 앞을 향한 도약 없이 우리의 삶과 우리의 교회는 자기 만족과 방종으로 병들게 됩니다(Evangelii Gaudium, 95). 우리는 어떤 덧없는 쾌락에서 기쁨을 찾습니다, 우리는 쓸모 없는 뒷담화 안에 우리 자신을 폐쇄시킵니다. 우리는 힘없는 그리스도인 삶의 단조로움으로 자리 잡습니다. 거기서는 약간의 나르시시즘(자기 도취)가 채워지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 슬픔을 다 가려 줍니다.

 

이것이 어떻게 그 사람이 복음이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슬퍼하며 떠나갔는지(마르코 복음 10,22) 보여 줍니다. 그는 율법의 규제들에 묶여 있었고 자신이 가진 많은 재물에 묶여 있었습니다. , 그는 자신의 마음을 바치지 못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분의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는 눈빛을 받고서도 그 사람을 슬퍼하며 떠나갔습니다. 슬픔은 충족되지 못한 사랑의 증거이고 미지근한 마음의 징표입니다. 반대로 가진 것들의 짐을 지지 않은 마음은 자유롭게 주님을 사랑합니다. 항상 기쁨을 널리 퍼지게 합니다. 그러한 기쁨은 오늘날 너무나 많이 필요합니다. 교황 성 바오로 6세는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 사람들은 정말로 고통 속에서 기쁨을 알아야 하고 그 노래를 들어야 합니다 (Gaudete in Domino,I). 오늘 예수님께서는 기쁨의 원천으로 돌아가도록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그 기쁨의 원천은 예수님과의 만남이고 그분을 따르기 위해서 모든 것을 감수하겠다는 용기 있는 선택이고, 그분의 길을 껴안기 위해서 무언가를 버렸다는 만족입니다. 성인들은 이 길을 달려 왔습니다.

 

바오로 6세 성인도 자신이 이름을 딴 사도의 모범을 따라 그렇게 했습니다. 그분처럼 바오로 6세 성인도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을 보냈습니다. 새로운 경계선들을 건너면서 그리고 선포와 대화 안에서 그 증인이 되면서 그리고 멀리 있는 사람들을 찾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면서 밖을 향한 교회의 예언자가 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자신의 삶을 보냈습니다. 피곤함과 오해의 한가운데에서조차 바오로 6세 성인은 열정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온전히 따르는 아름다움과 기쁨을 증언했습니다. 오늘 그는 자신이 현명한 조타수였던 공의회와 함께 우리의 공통된 소명을 살라고 아직도 우리에게 권고하고 있습니다. 거룩함이라는 보편된 소명, 어설픈 미봉책이 아니라 거룩함으로의 보편된 소명. 그와 함께 오늘의 다른 성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입니다. 그 안에 로베로 주교가 있습니다. 그는 복음을 따르며 가난한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사람들과 가까이 있고 예수님께 다가가는 마음으로 그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하며 자신의 삶을 내어 주기 위해서 세상의 안전과 자기 자신의 안전까지도 떠났습니다. 우리는 프란치스코 스피넬리, 빈첸조 로마노, 마리아 케테리나 카스퍼, 예수의 성녀 데레사 나자리아 이그나시아, 그리고 Abruzzese-Neapolitan 청년 눈치오 술프리치오에 대해서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청년 눈치로 술프리치오는 그의 고통 가운데에서 침묵과 자기 자신의 봉헌 속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성인다운 용감하고 겸손한 젊은이입니다. 이 모든 성인들은 다른 상황 안에서 미지근하지 않게 계산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감수하고 그 모든 것을 버리는 열정으로 오늘의 말씀을 그들의 삶 속에서 실천했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그들을 본받도록 주님께서 우리를 도우시기를 빕니다.

 

 

강론 영어 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8/documents/papa-francesco_20181014_omelia-canonizzazione.html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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