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2.0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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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12-09 | 조회수1,564 | 추천수7 | 반대(0) 신고 |
2018년 12월 9일 대림 제2주일 제1독서 바룩 5,1-9 예루살렘아, 슬픔과 재앙의 옷을 벗어 버리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영광의 아름다움을 영원히 입어라. 2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의 겉옷을 걸치고 영원하신 분의 영광스러운 관을 네 머리에 써라. 3 하느님께서 하늘 아래 어디서나 너의 광채를 드러내 주시고 4 ‘의로운 평화, 거룩한 영광’이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너를 부르실 것이다. 동쪽으로 눈을 돌려 보아라. 네 자녀들이 거룩하신 분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서 기억해 주신 것을 기뻐하면서 해 지는 곳에서 해 뜨는 곳까지 사방에서 모여드는 것을 보아라. 6 그들은 원수들에게 끌려 너에게서 맨발로 떠나갔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왕좌처럼 영광스럽게 들어 올려 너에게 데려오신다. 7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당신 영광 안에서 안전하게 나아가도록 높은 산과 오래된 언덕은 모두 낮아지고 골짜기는 메워져 평지가 되라고 명령하셨다. 향기로운 나무도 이스라엘에게 그늘을 드리우리라. 9 하느님께서는 당신에게서 나오는 자비와 의로움으로 당신 영광의 빛 속에서 이스라엘을 즐거이 이끌어 주시리라. 제2독서 필리 1,4-6.8-11 형제 여러분, 나는 4 기도할 때마다 늘 여러분 모두를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립니다.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6 여러분 가운데에서 좋은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그 일을 완성하시리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애정으로 여러분 모두를 몹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십니다. 9 그리고 내가 기도하는 것은, 여러분의 사랑이 지식과 온갖 이해로 더욱더 풍부해져 10 무엇이 옳은지 분별할 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순수하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날을 맞이하고, 11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는 의로움의 열매를 가득히 맺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복음 루카 3,1-6 1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2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4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5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6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1800년 중반, 가난한 아일랜드 청년이 미국으로 이민 가기로 결심을 하고 배 값 마련을 위해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모은 돈으로 간신히 삼등칸 배표를 샀습니다. 하지만 식사비를 낼 돈이 없어서 빵 몇 개만 사서 배에 탔습니다. 빵을 조금씩 아껴 먹었지만 대서양을 항해하는 내내 굶주림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큰맘을 먹고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마지막 식사만큼은 돈을 다 털어서라도 번듯하게 먹고 싶어서였기 때문입니다. 맛나게 식사를 하고 돈을 내려고 하자 종업원이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며 말합니다. 운임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섣부른 지례짐작으로 인해서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하고 또 얻을 수 있는 것도 얻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요? 앞선 이야기에서 식사 가격만 미리 물어봤더라면 배고픔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청년의 모습이 우리 안에 담겨 있을 때가 많습니다. 행복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 안에 나만 만들지 않고 이웃 역시 함께 만드셨습니다. 또한 불편함 없이 살라고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늘 주셨습니다. 그런데 시도도 하지 않고 ‘할 수 없다’라는 말만을 외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우리는 할 수 없는 이유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우리를 어렵고 힘들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기쁨과 행복 속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나 이 역시 지례짐작으로 자신은 할 수 없는 일로, 다른 이들만 할 수 있는 일로, 그래서 내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요?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땅에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라는 표시입니다. 주님을 제대로 맞이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는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습니다. 광야에서의 삶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먹고 마시고 자는 것 모두가 불편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철저하게 주님을 준비하는데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고 이로써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볼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주님을 드러내는데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큰 기쁨과 행복을 분명 얻을 수 있습니다. 나는 삶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가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늘 말해 왔어요. (시모어 번스타인)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세례자 요한. 행복에 대해... 1983년 사람들은 500원으로 구입한 주택복권으로 1억 원의 당첨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열광했습니다. 조금이라도 좋은 꿈을 꾸면 복권을 사야한다고 생각했고, 어느 자리에서 구입하면 당첨 확률이 높아진다면서 길게 줄을 서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1억 원의 당첨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필요한 액수를 물어보면 1억 원이 아닙니다. 한 50억 원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말하지요. 그래야 집도 사고, 하고 싶은 사업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의 소망이 50배가 커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의 크기도 50배 커졌을까요? 대신 자그마한 행복이 많아야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그마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함께 하는 행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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