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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8.12.11)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8-12-11 조회수1,772 추천수4 반대(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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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1일

대림 제2주간

제1독서 이사 40,1-11

1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 너희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

 2 예루살렘에게 다정히 말하여라.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나고 죗값이

치러졌으며 자기의 모든 죄악에 대하여

주님 손에서 갑절의 벌을 받았다고 외쳐라.

3 한 소리가 외친다.
“너희는 광야에

주님의 길을 닦아라.

우리 하느님을 위하여

사막에 길을 곧게 내어라.

4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거친 곳은 평지가 되고

험한 곳은 평야가 되어라.

5 이에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리니 모든 사람이

다 함께 그것을 보리라.

주님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6 한 소리가 말한다.
“외쳐라.”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하고 내가 물었다.
“모든 인간은 풀이요

그 영화는 들의 꽃과 같다.

 7 주님의 입김이 그 위로

불어오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진정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우리 하느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 있으리라.”
9 기쁜 소식을 전하는 시온아,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아,

너의 목소리를 한껏 높여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라.

유다의 성읍들에게 “너희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시다.” 하고 말하여라.
10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당신의 팔로 왕권을 행사하신다.

보라, 그분의 상급이 그분과 함께 오고

그분의 보상이 그분 앞에 서서 온다.

11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당신의

가축들을 먹이시고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복음 마태 18,12-14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2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가운데 한 마리가 길을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 않느냐?

13 그가 양을 찾게 되면, 내

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는데,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한다.

14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

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산책을 하다가 너무나도

아름다운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서쪽으로 해가 지면서

노을이 지고 있는 모습이었지요.

이 장면을 기록에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얼른 휴대전화를 찾았습니다.

옷의 모든 주머니를 뒤졌지만

휴대전화가 나오지 않습니다.

산책을 나오면서 휴대전화를

가져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마음으로만

 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사진기가 있을 때에는 잘 보이지

않다가 막상 없을 때에는

이런 멋진 장면이 보일까?’
사실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그 장소는 제가 자주 걸어

 다니는 곳이었습니다.

그렇다면 1년 365일 중에서

똑같지는 않아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아름다운 장면이

몇 차례 있었을 것입니다.

 이는 평소에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면서 걷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요?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나 싶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삶이라고는 하지만

사진에 담고 싶을 만큼의 아름답고

멋진 삶이 전혀 없었을까요?

특별한 일, 특별한 장소,

특별한 때에만 멋지고

아름다운 삶이 보일까요?

아닙니다. 평범한 일상의

 삶 안에서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의 깊게 바라보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즉, 나의 일상 삶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평범한 일상의 삶이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소홀하면

소홀할수록 내 삶 안에서

계속 등장하는 멋지고

아름다움을 놓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기억한다면

 우리의 일상 삶 안에 많은

주님의 멋지고 아름다운

선물이 있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선물을 보지 못하고

또 갖지 못하는 어리석은

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잃어버린 양

비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마리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남겨 둔 채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선다고 하십니다.

 사실 우리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혹시 그 한 마리를 찾으러 나갔다가

산에 남겨 둔 아흔아홉 마리의 양까지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를 위해서 소를 희생한다는 말처럼,

가슴 아파도 있는 아흔아홉 마리에 집

중하는 것이 지혜로워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 작은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해주시지요.

단 한 명도 잃지 않으려는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이 사랑을 기억하면서

우리도 이런 사랑을 가지고

 내 평범한 일상 안에서 끊임없이

실천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착한 목자를 따르는 착한 양의

 모습이 될 때, 구원의 길은

멀리에 있지 않게 됩니다.

물건은 이용하고,

사람은 사랑하라.

반대로 하지 마라.

(존 파웰)


우리 모두의 구원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십니다.

어떤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십니까?

“인터넷 덕분에

전 세계 지식을 폭 넓게

접할 수 있습니다.”
“인터넷 덕분에 잘못된 정보와

증오의 메시지가

 훨씬 더 빨리 확산됩니다.”
만약 아직 인터넷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첫 번째 문장을

먼저 봤다면

‘인터넷을 반드시 해야겠구나.’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반대로 두 번째 문장을

먼저 봤다면 어떨까요?

‘인터넷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위의 두 문장 모두 진실입니다.

그러나 진실이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양한 측면 중에서 부정적

측면만 보게 되면 절대로

좋게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긍정적 측면만 보면

모든 것을 좋게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 렌즈는 대개 서로 다른

진실에 의해 형성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렌즈로

세상을 바라보십니까?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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