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8년 12월 23일(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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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8-12-23 | 조회수1,245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8년 12월 23일 주일 [(자) 대림 제4주일] ▦ 오늘은 대림 제4주일입니다. 이스라엘의 목자이신 주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보잘것없는 딸을 선택하시어 주님의 거처로 삼으셨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보여 주신 순종과 섬김을 우리도 배워 언제나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릅시다.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을 마리아와 함께 기뻐하며 영원한 찬미의 노래를 부릅시다. 말씀의초대 미카 예언자는,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나오리라고 한다(제1독서) 하브리서의 저자는, 그리스도께서는 두루마리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뜻을 이루러 오셨다고 한다(제2독서) 엘리사벳은 자신을 찾아온 마리아를 보고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하고 외친다. ◎제1독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5,1-4ㄱ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화답송◎ 시편 80(79),2ㄱㄷㄹ과 3ㄴㄷ. 15-16.18-19(◎ 4)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귀를 기울이소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분, 광채와 함께 나타나소서. 당신 권능을 떨치시어, 저희를 도우러 오소서. ◎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어서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살피시고 이 포도나무를 찾아오소서. 당신 오른손이 심으신 나뭇가지를, 당신 위해 키우신 아들을 찾아오소서. ◎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당신 위해 키우신 인간의 아들에게 손을 얹으소서. 저희는 당신을 떠나지 않으오리다. 저희를 살려 주소서. 당신 이름을 부르오리다. ◎ 하느님, 저희를 다시 일으켜 주소서. 당신 얼굴을 비추소서. 저희가 구원되리이다. ◎제2독서◎ <보십시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10,5-10 5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마련해 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 보십시오, 하느님!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바치는 것입니다.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복음환호송◎ 루카 1,38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복음◎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복음입니다. 1,39-45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42 큰 소리로 외쳤다.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오늘의묵상◎ 미카 예언자는 부도덕하게 살고 가난한 이들을 억압하며 예루살렘 성전에서 형식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을 질책합니다. 그러면서, 오직 도래하시는 메시아만이 주실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이 평화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능력이나 지혜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계획에 기쁘게 순종하며 자신을 내놓는 사람들을 활용하십니다.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인 베들레헴, 작은 지파인 유다, 그 가운데서 가장 작은 다윗 가문! 하느님께서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장소로 수도인 예루살렘보다는 오히려 베들레헴을 선택하셨습니다. 동물이나 봉헌물을 바쳤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예배가 형식적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메시아께서 오심으로써 성전에서 바치는 그런 예배 행위는 가치와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마리아의 태중에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께서는 “영과 진리 안에서” (요한 4,24)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예배하는 데 가장 합당한 유일한 방법은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사촌 엘리사벳을 방문하러 떠납니다. 교통편이 발달하지 않던 시대에 걸어가는 여정은 무척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계획에 겸손하게 열린 마음으로 순종한 마리아는 세례자 요한의 출산을 준비하는 사촌 엘리사벳을 돌봄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합니다. 마리아는 자신도 힘든 처지이지만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겸손하고 기쁘게 봉사하는 참된 ‘주님의 여종’, 이웃에 대한 배려가 가득한 여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안봉환 스테파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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