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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전례] 슬기로운 전례상징: 주일과 여덟째 날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3-12-06 조회수1,417 추천수0

[슬기로운 ‘전례상징’] 주일과 여덟째 날

 

 

‘평화의 도시’이면서 평화가 필요한 도시인 예루살렘에 순례 갔을 때, 현지 가이드가 자유시간을 주면서 하는 말이 떠오릅니다. “신부님! 예루살렘은 세 종교가 공존합니다.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비록 지역을 구분하여 살고 있지만, 함께 어우러진 도시이기에 가계마다 쉬는 날이 다릅니다. 유다인은 ‘안식일’인 토요일, 그리스도인은 ‘주일’인 일요일, 이슬람인은 ‘주무아’라고 합동 예배를 행하는 금요일에 쉽니다. 그래서 헛걸음을 하지 않으려면 가게 주인이 어느 종교를 믿느냐를 알아야 하지요.” 각 종교마다 자신들이 믿는 신에 대한 예배를 하는 날을 쉬는 날로 정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유다교의 안식일(현재의 토요일)은 하느님께서 “이렛날에 복을 내리시고 그날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여 만드시던 일을 모두 마치시고 그날에 쉬셨기 때문”(창세 2,3; 참조. 탈출 20,10)에 쉬면서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로 정해졌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날을 ‘주일’(주님의 날)로 정하고 쉬면서 수난과 부활, 승천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리고 그날을 ‘여덟째 날’ 또는 ‘여드렛날’이라고 하여 창조의 첫째 날과 연결하여 창조의 새로운 버전인 부활을 기념합니다.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마태 28,1)인 주일!

 

주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당신 제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신 때는 “주간 첫날”(마태 28,1; 마르 16,9; 루카 24,1; 요한 20,1) 아침이었습니다. 거룩한 여인들과 베드로에게 발현하신 다음 “바로 그날”(루카 24,13)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동반하셨는데, 이 제자들은 예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루카 24,30) 주셨을 때,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은 당신의 다섯 상처를 보여주시고, 제자들에게 파견하시면서 성령을 불어넣어 주셨지요(요한 20,19-23).

 

예수께서 부활하신 “안식일이 지나고 주간 첫날”(마태 28,1)은 십자가에서 그분의 피로 맺은 “새 계약”(1코린 11,25)이 성취된 날입니다. 제자들은 주간 첫날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기 위해 모였음을 다음의 구절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요한 20,26). 이 장면에서 예수님은 두 가지로 제자들의 관심을 끕니다. 하나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상처를 보여주시면서 십자가를 그리스도인의 예배 모임의 중심에 놓습니다. 다른 하나는 토마스의 신앙을 요청하시면서 그 모임이 믿는 이들 곧 ‘믿는 이들’의 모임이어야 함을 요청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바오로 사도를 중심으로 한 트로아스에서의 모임을 “주간 첫날에 우리는 빵을 떼어 나누려고 모였다”(사도 20,7)라고 하며, 이 모임이 한 신자의 집 이층에서 밤에 이루어졌으며, 바오로의 긴 설교와 “빵을 나눔” 예식(성찬례)이 이루어졌다고 묘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의 날인 “주간 첫날”이 요한 묵시록에 와서는 ‘주님의 날’을 의미하는 “주일”(묵시 1,10)로 용어가 바뀝니다.

 

 

모두가 쉬며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는 주일!

 

100년 경에 작성된 ‘디다케’ 14장에서는 “주님의 주일마다 여러분은 모여서 빵을 나누고 감사드리시오”라고 권고합니다. 또한 순교자 유스티누스가 153년경에 작성한 ‘호교론’ 1권 67장에서 “태양의 날”에 모여 사도들의 비망록이나 예언자들의 글을 읽고, 주재자는 좋은 사례들을 본받도록 가르치며, 성찬례를 드리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서술합니다.

 

몇 차례의 박해에도 계속된 이 모임은 313년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자유를 선포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에 따라 로마 제국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313년 3월,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태양신 예배와 그리스도교 예배를 함께 증진하고자 태양신의 날이자 동시에 주일인 일요일에 일을 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로부터 4개월 후에는 종들에게 일에서의 자유를 주기로 한 태양의 날에 법정 다툼과 불화를 일삼는 것은 마땅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이 특별히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귀하고 마땅한 일이라고 법을 제정하여 선포합니다.

 

이로써 주일에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과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보장되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니케아 공의회(325년) 이전에 그리스도교 주일은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고 성찬례를 거행하는 전례 모임을 갖는 날, 일상적 일을 포기하는 가운데 드러나는 축제의 날로 나타납니다.

 

 

‘첫날’이면서 ‘여덟째 날’인 주일!

 

주간 첫날은 창조의 날, 안식일 다음 주간 첫날인 주일은 주님 부활의 날, 여덟째 날은 부활을 기념하면서 동시에 장차 도래할 세상의 표상입니다. 세례를 통한 구원을 말하는 베드로 전서 3장 20절은 여덟이란 숫자를 구원과 연결하여 밝혀줍니다.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미셜 푀이예는 ‘그리스도교 상징사전’에서 “성경에서 7이라는 숫자는 완벽을 상징하고, 히브리 단어 ‘cheba’는 ‘일곱’과 ‘계약’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에서 거룩한 숫자가 7이라면, 8은 저편으로 향한 숫자입니다. 이렛날 죽은 그리스도는 여드렛날 부활했습니다. 여덟은 부활의 숫자이면서 구원자, 인류 전체를 상징하는 숫자이며 또한 새 시대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에서 여덟 가지 행복을 선언하셨습니다(마태 5,1-12)”라고 설명합니다.

 

130년 경에 저술된 ‘바르나바의 편지’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부활의 관점에서 분명하게 밝혀줍니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현재의 안식일이 아니라 내가 행했던 그날로서 이날 모든 것을 안식에로 이끈 다음 제8일을, 다시 말해 새 세상을 시작할 것입니다. 예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발현하신 다음 하늘에 오르셨던 제8일에 즐거운 축제를 지내는 까닭이 바로 이것입니다.” 곧 여덟째 날은 주님의 부활과 더불어 승천을 기념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례당을 팔각으로 짓고, 성탄과 부활에는 팔일 축제로 연장하여 육화와 파스카 신비를 통한 구원에 대한 희망을 더욱 부각시켰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우리는 태양신의 날에서 유래한 ‘일요일’이 아니라, 부활을 통해 우리의 참된 주님임을 드러내신 ‘주님의 날’, 곧 ‘주일’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말 한마디가 우리의 신앙을 드러내지요.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12월호, 윤종식 디모테오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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