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1월 29일(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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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1-29 | 조회수1,169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1월 29일 화요일 [(녹) 연중 제3주간 화요일] 말씀의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러 오셨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라고 하신다. ◎제1독서◎ <보십시오,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1 율법은 장차 일어날 좋은 것들의 그림자만 지니고 있을 뿐 지니고 있지 않으므로, 같은 제물로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이들을 완전하게 할 수 없습니다. 다음에는 더 이상 죄의식을 가지지 않아 제물을 바치는 일도 중단되지 않았겠습니까? 죄를 기억하게 될 뿐입니다. 없애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오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마련해 주셨습니다. 당신께서는 기꺼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록된 대로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제물과 예물을”, 또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기꺼워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하고 말씀하시는데, 바치는 것입니다. 이루러 왔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첫 번째 것을 치우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화답송◎ 시편 40(39),2ㄱㄴ과 4ㄱㄴ.7-8ㄱㄴ.10.11 (◎ 8ㄴ과 9ㄱ 참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나를 굽어보셨네. 새로운 노래,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을, 내 입에 담아 주셨네. ◎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제물을 즐기지 않으시고, 도리어 저의 귀를 열어 주셨나이다. 번제물과 속죄 제물을 바라지 않으셨나이다. 제가 아뢰었나이다. “보소서, 제가 왔나이다." ◎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정의를 선포하나이다. 보소서, 제 입술 다물지 않음을. 주님, 당신은 아시나이다. ◎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감추어 두지 않고, 당신 진리와 구원을 이야기하며, 자애와 진실을 큰 모임에서 숨 기지 않나이다. ◎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복음환호송◎ 마태 11,25 참조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복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복음입니다. 3,31-35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오늘의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성모님을 나 몰라라 하시는 것처럼 비춰지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모님과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외면하십니다. 이는 당신 스스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어기시는 듯합니다. 어머니로 대접하지 않으실 수 있으실까요? 여기에서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진정한 가족이 되는 법’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라고 말씀하시듯, 하느님의 가족이 되게 만드는 것은 핏줄이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 가족 안에 흐르는 ‘뜻’에 있지, 피만 나누었다고 가족이 아닙니다. 만약 자녀라 하면서 옆집 부모의 뜻을 따른다면, 또는 부모라 하면서 옆집 자녀의 뜻만 따른다면 가족이라 할 수 있을까요? 가족은 자기 가족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의 가족이 되려면 하느님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보듯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여 그분의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아멘.” 하실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모님만큼 주님의 가족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이웃 사랑’이라는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만 그분의 가족으로 인정받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요한 13,34; 15,12 참조) 관계를 유지시키는 힘은 그 관계를 꿰뚫는 ‘뜻’에 있습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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