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목행역과 牧杏驛 사이 - 윤경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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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경재 | 작성일2019-01-31 | 조회수1,470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 윤경재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해설]
위기에 빠진 나를 구해주는 진정한 멘토란
모순어법을 통해서 삶의 위기와 고통을 비껴갈 수 있는 유머와 여유를 찾게 된다. 시에는 모순어법이 자주 등장한다. ‘소리 없는 아우성’, ‘찬란한 슬픔’ 등이다. 그러기에 시에는 복원력과 위로하는 힘이 있다. 목행역은 충주시 목행동에 있는 충북선의 간이역이다. 한때는 화물과 승객으로 번창하던 정식 역이었다. 그러다가 근처 큰 공장이 문을 닫고 화물이 줄어들어 간이역이 되었다. 충주시가 커지고 도시계획으로 신작로가 생기자 목행역은 뒷길에 나앉게 되었고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목행역’을 한자 음훈으로 읽으면 牧杏驛, ‘살구나무를 키우는 동네의 역’이라는 뜻이다. 아마도 근처에 살구나무가 많았나 보다. 한자는 한글 이름과 달리 그 속뜻을 금세 알 수 있다. 그 대신 한글 이름은 상상의 나래를 자유롭게 널리 펼 수 있다. 우리의 삶을 빼닮은 목행역 자신의 꿈을 펼치다가 무상한 세월 탓에 뒤로 물러앉은 간이역인 목행역은 우리 삶을 그대로 닮았다. 목적지를 향해 평행선처럼 팽팽히 맞서면서 달리는 철로는 인간의 타자성을 상징한다. 그 위를 굴러가는 둥근 바퀴는 각자가 지닌 양심이다. 양심의 속성은 우리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며, 자기가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은 남에게도 저지르지 말라 요청한다. 또 질서를 지켜 폐를 끼치지 말라 하며, 진리가 무엇인지 살펴가며 살라 한다. 양심은 내 안에서 언제나 작고 고요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런데 살면서 얼마나 자주 양심을 외면하면서 꺼림 직하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이제 생각하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인간의 귀는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면 오히려 병의 징조이다. 타인의 목소리는 하나로 또렷하게 들리지만, 자신의 목소리는 귀와 뼈의 울림, 투 트랙으로 들린다. 그래서 녹음기에서 재생한 자기 목소리는 처음 듣는 것 같고 타인처럼 늘 낯설다. 제 몸 밖에서는 뼈의 울림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내면의 소리 즉, 양심의 소리는 뼈의 울림이다. 각자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다. 우리는 비록 간이역처럼 세월의 뒤안길로 퇴장하지만, 살구나무 꽃 등불은 꺼지지 않고 세상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출처: 중앙일보] 뒤로 물러앉은 간이역, 그 곳서 찾은 지금 우리의 모습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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