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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 자녀가 되느냐 악마의 자식이 되느냐!
작성자강만연 쪽지 캡슐 작성일2019-02-14 조회수1,283 추천수1 반대(0) 신고

 

 

 

다음 글은 지난 월요일 마산교구 지속적인 성체조배회의 월례회에서 나누어주신 아름다운 글 한 편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대헌장

 

오직 사랑만이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식을 구별해 줍니다. 모두가 다 그리스도의 십자성호를 긋고, 모두가 아멘하고 대답하고 알렐루야를 노래한다 할지라도 또 모두가 세례를 받고 교회에 다니고 성전을 지어 올린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식을 구별하는 것은 오직, 하나 사랑뿐입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고 사랑이 없는 사람은 하느님에게서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이야말로 위대한 표지요, 위대한 식별입니다. 그대, 원하는 것 다 가지십시오. 그러나 이것 하나를 지니지 못한다면 그대에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할지언정, 사랑을 지니고 있다면 그대는 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남을 사랑하는 것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로마서 13,8)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서 13,10)라고 말합니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장사꾼이 찾는 진주가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 없이는 그대가 지니고 있는 모든 것이 그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대, 이 사랑 하나만 지닌다면, 그것으로 넉넉합니다.

 

이건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요한 서간 강해에 나오는 글입니다. 마산교구보 181230일자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월요일 마산교구지속적인 성체조배회의 때 교구 회장님께서 매번 회의를 시작하실 때 아름다운 글 하나를 소개하면서 회의를 주재하십니다. 사실 이 글은 오래전에 봐서 또 성경도 너무나도 유명한 구절이라서 익히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지만 월요일 그날 다시 보니 느낌이 또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중국에는 유명한 고전소설인 삼국지가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은 삼국지를 가리켜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삼국지를 십대에 읽었을 때랑 이십대에 읽었을 때랑 삼십대에 읽을 때랑은 그 책이 주는 의미는 각각 다르다고 합니다. 이 말은 무슨 말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의식은 계속 성장도 하면서 자기가 살아가는 동안 경험적으로 얻어지는 여러 가지 지식 등 이런 것이 어우러져 또 하나의 다른 자기가 형성되고 그 또 다른 자기가 가진 의식으로 기존의 사실을 바라보았을 때 다른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렇게 본다면 사람의 시각도 어느 정도 고정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유동적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사고의 흐름이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면 사람의 의식도 아주 유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생각이 유연하지 않은 사람치고 온유한 성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저는 아직 많은 세월을 살아 본 사람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제 경험상으로는 그런 사람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한번 다시 보니 저도 나름 성장을 했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지만은 이것만은 확실한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 봤던 내용이고 물론 교구보에 나오기 전에 책을 통해서 봤지만 월요일 회의 때 본 글과의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신앙생활하면서 어떤 발전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잘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생각의 변화는 있지 않았나 하고 나름 한번 추측해봅니다. 그랬기에 아무래도 예전과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날 회의 도중에 오늘 이걸 한번 묵상 주제로 삼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돌아와서 묵상을 한번 해봤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께서 말씀하시기 전에 이미 2000년 전에 바오로 사도께서 말씀하신 게 가장 정답이지 않겠습니까? 이 말씀에 근거한다면 우리는 시시때때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다가 또 악마의 자식이 되었다가를 수도 없이 반복한다는 사실에 한번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떨 때는 정말 우주를 다 품을 수 있을 만큼 하느님의 마음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또 어떨 때는 좁쌀영감처럼 정말 옹졸한 생각으로 자신을 감싸는 인간의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건 인간의 본성이 가지고 있는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독서에서도 나오는 것처럼 에덴동산에 처음부터 하느님께서 선악과를 없애버리셨다면 선악과를 따먹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 죄를 짓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것도 한가운데 놔두셨습니다. 그만큼 위치적으로 봐도 더 유혹을 자극하는 위치입니다. 차라리 어디 구석에다가 놔두셨다면 좀 더 덜 유혹이 되지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이 부분은 어제 마침 옆 본당에서 제가 오전 미사를 봉헌했는데 이 부분은 신부님께서 강론하신 부분입니다.

 

마침 제가 글을 쓰는 지금 시점에서 어제 신부님께서 강론하신 내용과 조금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아 신부님의 강론을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면 으레 하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의미가 영원히 한 번의 타고난 정해진 신분이 계속 지속된다고는 볼 수가 있는지요?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면 그에 걸맞는 합당한 모습을 갖추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노블리스 오블리지 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바로 어떤 신분이 있으면 그 신분에 맞는 권리와 의무를 이행하는 게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권리가 주어지면 그에 상응하는 의무가 발생됩니다. ,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면 그에 맞갖은 행동을 해야 됨은 당연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약한 인간인지라 유혹에 못이겨 선악과를 따먹은 화와처럼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망각한 채 정말 하느님의 자녀가 맞나 싶을 정도의 모습을 보여주며 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우리는 이런 나약한 면을 가진 인간이기에 또 그런 나약한 모습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고 정말 원래 하느님의 사랑으로 좀 더 나은 하느님의 자녀로 변화되기를 끊임없이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으로 인간 본성을 하느님의 본성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며 살아가야 하는 게 어쩌면 신앙을 가진 사람의 본분이며 자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을 하듯이 우리의 영성도 어린아이의 영성에서 성숙된 신앙으로 발전을 하지 못하고 늘상 제자리 걸음의 신앙생활을 한다면 우리는 이런 신앙생활을 제대로 된 신앙생활이라고 쉽게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냥 성당 마당만 밟는 신자로서의 신앙생활만 하다가 언젠가 하느님 대전에 가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이왕지사 하느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확실히 신앙인답게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으로 자신을 탈바꿈하려고 하는 게 현명한 생각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속된 표현으로 세상 사람처럼 그냥 신앙생활이라는 어떤 구속이나 제약도 받지 않고 사는 게 훨씬 더 편할지도 모릅니다.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적군과 아군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면 확실한 노선을 취해야 확률적으로도 더 생존할 확률이 높습니다.

 

마냥 기회주의자처럼 행동한다면 적군 아군 양쪽으로부터 다 신분을 보장 받지 못하기 때문에 생존의 가능성이 더 위험한 상황에 이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우리의 신분은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합당한 행동을 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살아가야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하더라도 부단히 노력해서 그런 몸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며 성장하는 모습과 변화가 있어야 제대로 된 신앙인이 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를 지되 그 전제조건으로 자신을 버리고 라는 조건이 따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결국은 자신이라는 자아를 버리지 않고서는 되지 않겠죠. 이 모든 경우를 봐서 하느님의 자녀가 되느냐 악마의 자식이 되느냐는 자신이 선택하는 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결국 자신의 아집을 버리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무장을 시키면 하느님의 자녀인 신분이 되고 결국 그런 사랑을 내팽개치면 자기 스스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나는 지금 현재 하느님의 자녀인지 악마의 자식인지 어디에 속하고 있는지를 한번 생각해본다면 어쩌면 무시무시한 두려움에 떨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항상 자신이 악마의 자녀라고는 전혀 상상을 해 본 적이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근데 우리는 생각보다는 악마의 자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한번 묵상해본다면 정말 신앙생활에서 긴장을 늦출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결국 자기 안에 하느님의 사랑으로 채워서 하느님의 자녀가 될지 아니면 그런 사랑이 없이 악마의 자식이 될지는 자신이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결국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느냐 악마의 자손이 되느냐는 하느님 소관이 아니고 전적으로 자신에게 그 모든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나중에 어떤 신분이 될지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일 겁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로 되지 않는다면 그 어느 누구에게도 원망의 화살을 보낼 수 없는 일일 겁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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