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2월 23일(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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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2-23 | 조회수1,096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2월 23일 토요일 [(홍)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일] 폴리카르포는 요한 사도의 제자로, 스미르나 곧 오늘날 터키 이즈미르 지역의 주교였다. 그는 특히 정통 교리의 열렬한 수호자로 여러 이단들과 격렬한 투쟁을 벌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당시 이교적 교리에 심취하였던 아우렐리우스 황제에게 체포되어 166년경 순교하였다. 폴리카르포 주교는 사도 시대와 이후의 교회를 연결하는 위대한 기록자이자, 2세기 그리스도교 최고의 지도자로 평가되고 있다.. 말씀의초대 히브리서의 저자는,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이라고 한다. (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산에 오르셨는데,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신다. ◎제1독서◎ <믿음으로써,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깨닫습니다.> 바라는 것들의 보증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들의 확증입니다. 믿음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마련되었음을, 보이지 않는 것에서 나왔음을 깨닫습니다. 아벨은 카인보다 나은 제물을 하느님께 바쳤습니다. 의인으로 인정받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여전히 말을 하고 있습니다. 에녹은 하늘로 들어 올려져 죽 음을 겪지 않았습니다. 들어 올리셨기 때문에, 볼 수가 없었습니다.” 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들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 계시다는 것과 이들에게 상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관하여 지시를 받고 마련하여 자기 집안을 구하였습니다.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화답송◎ 시편 145(144),2-3.4-5.10-11 (◎ 1ㄴ 참조)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주님은 위대하시고 드높이 찬양받으실 분, 그분의 위대하심 헤아릴 길 없어라. ◎ 주님,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업적을 기리고, 당신 위업을 널리 전하리이다. 당신의 위엄 그 찬란한 영광을 이야기하고, 당신의 기적을 노래하리이다. ◎ 주님,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주님,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복음환호송◎ 마르 9,7 참조 목소리가 들려왔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복음◎ <예수님의 모습이 변하였다.> 복음입니다. 9,2-13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모습이 변하셨다.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께 말하였다. 지내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것을 바로잡는다. 고난과 멸시를 받으리라고 무슨 까닭이겠느냐? 록된 대로 그가 이미 왔지만 ◎오늘의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앞에서 당신의 천상 모습을 계시하시는 변모 사건에 대하여 듣습니다. 예수님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고,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눕니다. 천상의 영광을 표현합니다. 율법과 예언서를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되어 있던 메시아이심을 확증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 곧 하느님께서 직접 예수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이심을 계시해 주십니다. 당신의 천상 영광을 보여 주신 목적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날 일을 앞두고 제자들을 대비시키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면, 제자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 곧 수난과 십자가의 여정이 펼쳐질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제자들은 혼란스러워하고 흩어질 것이 분명하였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본모습을 보여 주심으로써 제자들을 굳건히 하고 신앙의 확신을 주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스승의 의도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초막 셋을 지어 놓고 머물러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산을 내려오셔서 십자가가 기다리는 예루살렘으로 가셔야 했습니다. 체험 속에 머무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광의 산꼭대기에서 내려와 일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거기에는 얽히고설킨 인간관계가 있고, 견뎌야 하는 생활고가 있으며, 의미 없이 반복되는 날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셨던 위로와 행복을 영원히 누릴 그날을 위하여 오늘도 한 발자국씩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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