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꽃씨도둑 - 윤경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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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윤경재 | 작성일2019-03-14 | 조회수1,863 | 추천수2 | 반대(0) 신고 |
[해설] 집 근처 성당에서 새벽 미사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에 야트막한 철책을 두른 집이 있다. 오월이 되면 청록색 담장 위에 덩굴장미가 하나둘 피어난다. 덩굴장미로 이름난 붉은색 스칼릿 메이딜란드와 분홍빛 안젤라가 여명을 뚫고 피어나 나 같은 행인을 기쁘게 맞이한다. 작년 4월 초 수년간 병상에서 고생하시던 어머니를 여의고 어머니의 명복을 위해 한동안 새벽 미사를 다녔다. 죽음 앞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기도밖에 없으니 자식으로서 죄스럽고 서운한 마음을 달래고픈 심정이었다. 담장 위에 여러 화초를 내놓은 그 집 앞을 지날 때면 유난히 꽃을 좋아하시던 어머니가 떠올라 자주 걸음을 멈추었다. 봄부터 한여름 능소화가 필 때까지 다닌 새벽 미사에서 돌아올 때 그 집 담장 안에서는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고 졌다. 늘 눈으로만 아름다운 꽃을 지켜보고 감탄하며 지났는데 그날은 향이 짙은 장미 앞에서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가고 말았다. 무성하게 피어오른 메이딜란드와 안젤라 중에서 한두 송이쯤 꺾어다가 본명이 안젤라인 집사람에게 가져다준들 무슨 큰 허물이 되랴 싶었다. 초록 잎사귀 사이에 핀 붉은색 장미는 도드라진 보색 관계로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게다가 꽃잎에 새벽이슬이라도 맺히면 그야말로 도저히 유혹의 손길을 멈출 수가 없다. 안젤라 한 송이를 따고 흥분된 마음이 허물어져 조심성 없이 메이딜란드를 꺾다가 그만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고 말았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손끝이 아려왔다. 피천득의 ‘꽃씨와 도둑’ 아마 어느 날 피천득 시인의 집에 도둑이 들었나 보다. 검약한 시인은 마당에 한가득 꽃을 가꿨고 집안에는 온통 책으로 가득했다. 도둑이 들었다가 값나가는 걸 하나도 찾지 못해 아무것도 훔치지 못하고 그냥 뒤진 흔적만 남기고 떠나갔나 보다. 시인은 이런 광경을 도둑의 입장에서 보고 멋진 시를 지었다. 봄에 온 도둑이 가을에 다시 와서 꽃씨를 얻어 가겠단다. 햐! 꽃과 책이란 시어에서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아름다움과 지혜를 사랑하는 시인의 면모가 보인다. 심지어 그 도둑이 다시 와도 좋다는 삶의 여유와 유머가 드러나는 아주 훌륭한 시이다. 행간에서 도둑이 양심의 가책을 느껴 아름다움을 찾는 삶을 살기를 바라는 심정이 배어 나온다. 아주 짧고 평범하고 쉬운 말만 썼으나 그 광경을 제대로 상상하고 읽지 않으면 무슨 뜻인지 얼른 이해되지 않는다. 그날 내가 잠시 꽃씨도둑이 되었다. 아마 그 장면을 부지런한 집 주인 보았으면 넉넉한 마음에 손수 전지가위를 가져다가 몇 송이를 더 잘라 선물로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좀 구차한 변명과 낯빛을 지어야 했겠지. 자연의 아름다움은 떨림에 있다.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꽃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크고 작은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아름다운 장미를 손에 쥐기 위해서는 가시에 찔리는 아픔을 견뎌야 하는 게 인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은 실수를 용서받는다 해도 그 책임까지 면하는 것은 아니다. 그날 난 손에 쥔 안젤라 꽃 한 송이마저도 가시 울타리에 남겨놓고 자리를 떠났다. 거룩한 미사를 드리고 나오면서 취할 행동이 아니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손과 어깨에 묻은 장미의 붉은 향기, 붉은 씨눈, 응축된 떨림만 가득 안고서 걸음을 옮겼다. 나와 하늘만 아는 비밀로 묻어두고서. 그러니 오히려 가벼운 마음에 ‘꽃씨도둑’이란 시 한 수가 떠올랐다. 피천득 시인의 담장을 넘었던 도둑이 혹시라도 아름다운 꽃 두세 송이쯤 꺾어 들고 갔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 상상하며 지금 나는 미소를 짓는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410656 [출처: 중앙일보] 피천득이 빈손으로 돌아간 도둑의 입장서 쓴 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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