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3월21일(목) 부부가 함께 수도회에 입회한 聖女 베네데타 님
작성자정태욱 쪽지 캡슐 작성일2019-03-20 조회수1,313 추천수1 반대(0) 신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3월21일(목) 음 2/15

                      

부부가 함께 수도회에 입회한 聖女 베네데타

 

 

                        
                                     
베네데타(3.21)

 성인명

베네데타(Benedetta)

 축일

3월 21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설립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791?1858년

 같은이름

베네데따,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

 

                

 

성녀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Benedetta Cambiagio Frasinello)

 

 

 

 

 

     
  

                              

 성녀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Benedetta Cambiagio Frasinello)

1791년 10월 2일 이탈리아 제노바(Genova)의 란가스코(Langasco)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부모로부터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았고
이는 그녀의 믿음에 깊숙이 뿌리를 박았다.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아직 어린 소녀였을 때 파비아(Pavia)에 정착했다.
성녀 베네데타는 20세 되던 해에 신비한 체험을 겪고
기도와 속죄의 삶을 살며 하느님을 위한 축성된 삶을 갈망하였다.
하지만 부모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그녀는 1816년
조반니 프라시넬로(Giovanni Frassinello)와 결혼하고 2년 동안 함께 지냈다.
1818년 남편 조반니는 부인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각자 '형제와 자매로서' 순결하게 지낼 것을 약속하고
대장암으로 투병 중인 성녀 베네데타의 여동생 마리아를 간호해 주기로 하였다

1825년 마리아가 세상을 떠난 후 조반니는

성 히에로니무스 에밀리아니(Hieronymus Aemiliani, 2월 8일)가 설립한
'소마스카(Somascha)의 성직 수도회'에 입회했고,
성녀 베네데타는 카프리올로(Capriolo)의 우르술라회에서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을 위해 봉헌하였다.
그녀는 일 년 후 건강상의 문제로 파비아로 돌아오게 되었지만
성 히에로니무스 에밀리아니에 의해 기적적으로 완전한 치유를 받았다.
건강을 회복한 그녀는 주교의 허락하에 어린 소녀들의 교육을 위해
온갖 노력을 다했다.
성녀 베네데타는 도움이 필요했으나 그녀의 아버지는 이를 거부했다.
그래서 파비아의 토시(Tosi) 주교는
조반니에게 소마스카의 성직 수도회를 나와
성녀 베네데타를 도와주도록 권고하였다.

 

둘은 서로에게 온전한 순결을 맹세하고 도시의 가난하고 소외된 소녀들의
인간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인 생활을 위해 노력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의 교육적인 활약은 파비아에 큰 도움이 되었으며,
성녀 베네데타는 여성 최초로 이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되었기에
오스트리아 정부는 그녀를 '공교육의 장본인'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녀는 젊은 여성들의 도움을 받아 그들의 생활 규칙을 만들어
교회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성녀 베네데타는 일반 교육과 더불어 교리교육을 실시하였고
요리와 바느질 같은 유용한 기술을 가르쳐서
학생들을 '그리스도인 삶의 모범'으로 변화시키고자 하였고
또 가족의 형성을 돕고자 하였다

 

 


성녀 베네데타 캄비아지오 프라시넬로(Benedetta Cambiagio Frasinello)

 

 

 

이러한 성녀 베네데타의 업적은 당시에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유력한 인사들로부터 반대를 받았고 몇몇 성직자들의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래서 그녀는 1838년에 자신이 만든 조직을 파비아의 주교에게 넘기고
조반니를 포함한 5명의 동료들과 함께 제노바 지방의
론코 스크리비아(Ronco Scrivia)라는 곳으로 이동하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파비아에서 했던 활동의 연장선상에서 여학교를 만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성녀 베네데타는 베네딕토 섭리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그녀는 소녀들에게 학업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곤 했고,
가난과 봉헌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무한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수녀회는 그 규모를 점차 확대시켰고
성녀 베네데타는 죽을 때까지 수녀회의 발전을 이끌었다.
1858년 3월 21일 론코 스크리비아에서 생을 마감한 성녀 베네데타는
초자연적인 모성애의 모범이었고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용기와 충성심을 보여준 좋은 본보기였다.

오늘날 베네딕토 섭리 수녀회는 이탈리아, 에스파냐, 부룬디(Burundi),

코트디부아르(Cote d'Ivoire), 페루, 브라질에 퍼져 있다.
그들은 어리고, 가난하고, 병들고, 나약한 이들을 돌보고 있다.
설립자인 성녀 베네데타는 보게라(Voghera)에도 수녀원을 세웠는데,
그녀가 생을 마감하고 40년이 흐른 후 그곳의 주교는
그 수녀원을 나머지 수녀회와 분리하여 설립자를 공경하는 의미에서
하느님 섭리의 베네딕토 수녀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녀는 참된 아내이자 설립자였다.
성령께서 그녀를 이끌어 결혼 생활에서부터
교육과 종교적 정화를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남편의 관대한 도움으로 그녀는 젊은 여성들을 위한 학교와
종교 단체를 세울 수 있었다.
성녀 베네데타는 '새로운 그리스도교적 사회'에서 가정을 만든다는 것과
여성들이 완전한 교육을 제공받아야 할 의무를 활성화시키고
젊은 여성들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개척자로 여겨진다.
그녀는 1987년 5월 10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Joannes 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2년 5월 19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자료집에서 발췌

 

김예정 say

 

             

부모의 뜻을 따라 결혼 했으나
남편 조반니와 함께 남매처럼 지내는 순결의 삶을 약속하여
각자 수도원에 입회하여

 
부인은 소외된 여성들에게 교리와 직업 교육을 실시하다가

남편의 협조로 '베네딕토 섭리 수녀회'를 설립하였으니.

성녀 베네데타 님이시여


부부의 삶을 통해서 각자의 영성을 승화하여

성가정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