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3월 23일(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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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3-23 | 조회수1,134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3월 23일 토요일 [(자) 사순 제2주간 토요일] 말씀의초대 미카 예언자는, 주님께서는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방탕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고 돌아온 아들을 맞아 주는 아버지의 비유를 말씀하신다. ◎제1독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말씀입니다. 7,14-15.18-20 숲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지팡이로 보살펴 주십시오. 그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나오실 때처럼 저희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여 주십시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저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아브라함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 ◎화답송◎ 시편 103(102), 1-2.3-4.9-10.11-12(◎ 8ㄱ)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네. 우리를 죄대로 다루지 않으시고, 우리의 잘못대로 갚지 않으시네.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드높은 것처럼, 당신을 경외하는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가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멀리 치우시네.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복음환호송◎ 루카 15,18 참조 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나이다.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복음입니다. 15,1-3.11ㄴ-32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하고 투덜거렸다.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둘 있었다.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찾아가서 매달렸다.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이렇게 말하였다.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아버지에게로 갔다.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종들에게 일렀다.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들에 나가 있었다. 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이냐고 묻자,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돌아오셨다고 하여 잡으셨습니다.’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를 타이르자,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어기지 않았습니다. 친구들과 즐기라고 없습니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오늘의묵상◎ 오늘 복음에서 작은아들은 아버지에게서 자기 것을 모두 챙겨 먼 고장으로 떠난 뒤 방종한 생활로 재산을 탕진합니다. 때마침 기근마저 들어 곤궁에 허덕이자 작은아들은 아버지께 용서를 청하려고 되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합니다. 아버지만이 자신을 거두어 주실 분임을 기억해 낸 것입니다. 그런 작은아들이 아버지께 돌아올 때 아버지는 아직 멀리 있는 그를 알아보고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제1독서에서 미카 예언자가 이야기하듯 죄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청하자 아무것도 묻지 않고 모든 것을 되돌려 줍니다. 그리고 큰 잔치를 열어 줍니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불평을 터트립니다. 종처럼 아버지를 섬긴 자신에게는 잔치를 열어 주지 않으면서, 작은아들에게만 잔치를 열어 주는 모습에 섭섭함을 표현합니다. 아버지는 그런 큰아들을 타이르며 돌아온 탕자인 작은아들을 보고 기뻐해야 하는 것이 도리라고 가르칩니다. 곧 세리들과 죄인들과 음식을 나누시는 예수님께 불평을 터트리던 큰아들들인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루카 15,1-2 참조). 그런데 오늘 복음은 그 큰아들이 아버지 말씀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큰아들과 같은 이들은 죄인들을 사랑하고 받아들이신 예수님을 죽음에 빠트리고 말 것입니다. 자신의 불만을 아버지에게 터트리며 그분을 죽음에 빠트린 꼴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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