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아들 신부의 눈물 | |||
---|---|---|---|---|
작성자강만연 | 작성일2019-03-24 | 조회수1,638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드라마 열혈사제에서 봤습니다. 어제 올린 글에서 말씀드렸지만 한꺼번에 8회를 봐서 명확하게 기억을 하지는 못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기억합니다. 지금 드라마 속에 나오는 신부님의 아버지 신부님이 돌아가셨을 때 아들 신부가 흘리는 눈물을 보았습니다. 물론 드라마 속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순간 짠했습니다. 내용이 비극적인 거라서도 짠했겠지만 그것보다도 더 짠한 건 바로 이런 이유였습니다. 우리가 보통 말할 때 사용하는 아들 신부라는 말을 한번 살펴보면 신부라는 말 앞에 아들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근데 아들은 어떤 말입니까? 정상적인 부모님이 계셔야 있을 수 있습니다. 근데 어째서 신부님께서 아들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자식이 있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아들 신부라는 말이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의미의 아들이겠죠. 저는 아들 신부, 아버지 신부 라는 이 말을 예전부터 듣게 되면 참 마음이 짠합니다. 왜 그런지 아시나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한번 해봤습니다. 하느님께 봉헌된 신분이고 가정을 가질 수 없기에 당연히 자식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하느님께 봉헌된 몸이지만 인간적으로 세상에 와서 자신의 당대에서 후손 없이 다음에 하늘 나라에 가다 보니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좀 짠하지 않겠습니까? 그나마 그런 애닯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영적으로 아들이라는 게 있어서 조금이나마 수도자 분들에게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만약 그런 것도 없으면 얼마나 서글플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아버지 신부로 나오는 분이 한번은 소주 한 병 들고 아들 신부가 있는 방으로 찾아가는 장면을 봤습니다. 그 장면을 보면서도 짠했습니다. 정말 드라마지만 육적인 친아들은 아니지만 자식이 없기에 실제로 부모의 심정이 되어 보지 못했다고는 하나 실제로 그런 상황을 상상을 해보면 아버지와 아들 같은 느낌이 강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느냐면요 사람은 원래 같은 처지의 입장이면 더 잘 상대방을 이해를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 세상에 육적으로 맺어진 인연은 아니지만 영으로 맺으진 아들이니 참으로 각별한 인연이지 않을까요?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본 적도 있습니다. 오히려 어쩌면 더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가슴으로는 영으로 맺어진 부자가 더 각별하고 애틋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냐하면요 아버지 신부님의 입장에서요 물론 드라마 같은 상황이 아니더라도 현실에서도 말입니다. 한번 생각을 해보시면요 아버지 신부는 아무래도 좀 더 오래 아들 신부보다 더 사제의 길을 먼저 걸어가신 분입니다. 그러니 그 길을 먼저 가셨기에 외롭고 고독한 길이라는 걸 아시니 아버지 신부님의 입장에서는 나야 어쩌다 보니 시간이 흘러 이렇게 사제로서 살아왔지만 앞으로 많은 세월을 살아가야 하는 아들 신부를 바라보니 정말 아비야 그렇게 살았다고는 하지만 자신이 살아온 그 삶을 아들이 다시 평생을 걸어가야 될 걸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인간적으로는 가슴이 짠할 것 같다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가 어떻게 지상에서 최후에 어떤 모습으로 삶을 마감할지를 미리 아셨기 때문에 물론 부족한 면도 있고 때로는 예수님을 배신했지만 나중에는 진정으로 회개를 하고 자신의 한 몸을 예수님께 온전히 바쳤지 않습니까?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신성을 가지셨지만 인성도 취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쳐서 당신께서 가신 그 길을 따르는 제자를 바라보셨을 때는 한편으로 인간적인 시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도 얼마나 가슴으로는 가슴이 아프셨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나야 원래 하느님이니까 하느님으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는 하지만 너는 단지 나를 따른 제자라는 이유만으로 그 길을 따라서 마지막 순교할 때는 그것도 나를 배반했다고 자신의 스승을 욕되지 않게 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청하는 모습을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면 예수님의 마음에서는 한편으로는 대견하다는 마음도 가질 수가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인간적으로 생각을 해보면 정말 너가 단지 세 번의 배신으로 나에게 마지막 때 그런 죄스런 마음을 속죄하는 뜻에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를 하기를 청하는 모습을 보니 내 가슴이 정말 찢어지는 느낌이구나 하고 생각하실 것 같습니다. 이처럼 이 드라마 속에 나오는 아버지 신부와 아들 신부가 잠시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연상해보면 영판 세상의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바로 조금 전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를 바라보는 그런 마음이 아들 신부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신부님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참 가슴이 짠합니다. 그런 아버지께서 이 세상에 안 계시니 그 아들 신부의 마음도 어떻겠습니까? 드라마 속 아들 신부의 눈물을 잠시 다시 회상해보니 잠시 제 눈에도 눈물이 조금 맺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한 번 더 보면 눈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