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5.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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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5-14 | 조회수1,902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2019년 5월 14일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제1독서 사도 1,15-17.20-26 15 그 무렵 베드로가 형제들 한가운데에 서서 말하였다. 그 자리에는 백스무 명가량 되는 무리가 모여 있었다. 붙잡은 자들의 앞잡이가 된 유다에 관해서는,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언하신 성경 말씀이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17 유다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우리와 함께 이 직무를 받았습니다. 황폐해지고 그 안에 사는 자 없게 하소서.’ 또 ‘ 그의 직책을 다른 이가 넘겨받게 하소서.’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22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앞에 세우고, 24 이렇게 기도하였다. 아시는 주님, 이 둘 가운데에서 주님께서 뽑으신 한 사람을 가리키시어, 25 유다가 제 갈 곳으로 가려고 내버린 이 직무, 곧 사도직의 자리를 넘겨받게 해 주십시오.” 제비를 뽑게 하니 마티아가 뽑혀, 그가 열한 사도와 함께 사도가 되었다. 복음 요한 15,9-17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11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13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 15 나는 너희를 더 이상 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모두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 너희가 가서 열매를 맺어 너희의 그 열매가 언제나 남아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을 그분께서 너희에게 주시게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어느 책에서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기분 나쁜’ 상태로 있는 것이다.” 머물게 되었습니다. 사실 나쁜 기분은 전염이 됩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기분 나쁜 상태로 있으면 어떻습니까? 그 옆에 있는 자신 역시 기분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여기서 “하하하” 하고 혼자 웃으면 이렇게 말하겠지요. 이 역시도 전염이 됩니다. 우울한 기분이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밝은 분위기로 인해서 내 마음이 좋아진 적이 있지 않습니까? 결국 지금 내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는가에 따라서 다른 이들 역시 좋은 기분으로도 또 나쁜 기분으로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큰 죄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좋은 기분’을 만들 수가 있을까요? 바로 사랑이 있을 때입니다. 제가 요즘에 큰 조카의 아들, 그러니까 저의 손주만 보면 기분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아기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아기 역시 웃으면서 신나합니다. 아기 역시 사랑받고 있음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사랑을 주는 데에서 우리는 좋은 기분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늘 문제는 내 자신에게 있습니다. 받으려는 사랑에만 주목하면서 받은 사랑이 없다면서 사랑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마음에는 절대로 기분이 좋을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그래서 세상에 가장 큰 죄를 짓는 모습이 되고 말 것입니다. 늘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리고 여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여라.”라고 명령을 내리십니다. 사랑으로 이 세상 안에서 잘 살아갈 수 있으며, 사랑으로 좋은 기분에서 더 많은 기쁨과 행복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랑을 하라는 것이었을까요? 사랑이 아닙니다. 또한 자신의 이득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이유 있는 사랑도 아닙니다. 무조건적인 사랑. 심지어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큰 사랑까지도 가능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나태주 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좋게 생각해주는 사랑, 참아주는 사랑, 나중까지도 변함없는 사랑에 머물러 보십시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사랑할 때 우리 마음은 바닥나지 않는 선물의 집. 무엇을 줄까 어렵게 궁리하지 않아도 서로를 기쁘게 할 묘안이 끝없이 떠오르네. (이해인) (아기와 있으면 모두 행복해합니다) 운동 어떤 사람이 건강을 위해 우유를 주문해서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보다 더 건강해진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누구일까요? 바로 이 사람에게 우유를 배달해준 배달원이 더 건강해졌다고 합니다. 피곤함을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더 좋은 것들을 내게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예전에 신학생 때 영성면담을 하는데, 제 고민을 들으시던 신부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땀을 흘리지 않으니 쓸데없는 잡념이 생기고 또 여기에 스트레스도 쌓이는 것이라는 말씀이셨습니다. 운동을 통해 땀을 흘리라는 것은 운동선수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땀을 흘릴 정도로 집중하다보면, 내게 다가오는 다른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 수 있다는 것이었지요. 의미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혜택이 내게 돌아옵니다. 운동에서 땀을 통해 몸을 더욱 더 튼튼하게 만드는 것처럼,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더욱 더 튼튼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오늘은 성 마티아 사도 축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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