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6월 6일(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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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6-06 | 조회수1,396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6월 6일 목요일 [(백) 부활 제7주간 목요일] 말씀의초대 주님께서는 바오로에게 용기를 내라고 하시며, 예루살렘에서 당신을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하라고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시라고 아버지께 기도하신다. ◎제1독서◎ <너는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22,30; 23,6-11 고발하는지 확실히 알아보려고, 명령을 내려 수석 사제들과 온 최고 의회를 소집하였다. 내려가 그들 앞에 세웠다. 사두가이들이고 일부는 바리사이들이라는 것을 알고, 이렇게 외쳤다. 나는 바리사이이며 바리사이의 아들입니다. 부활하리라는 희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면서 천사도 영도 없다고 주장하고, 그것을 다 인정하였다. 몇 사람이 일어나 강력히 항의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을 수 없습니다. 말하였다면 어떻게 할 셈입니까?” 바오로가 그들에게 찢겨 죽지 않을까 염려하여, 바오로를 빼내어 부대에 명령하였다. 앞에 서시어 그에게 이르셨다.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화답송◎ 시편 16(15),1-2ㄱ과 5.7-8.9-10.11(◎ 1)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주님께 아뢰나이다. “당신은 저의 주님.” 주님은 제 몫의 유산, 저의 잔. 당신이 제 운명의 제비를 쥐고 계시나이다.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주님 찬미하오니 한밤에도 제 양심이 저를 깨우나이다. 언제나 제가 주님을 모시어, 당신이 제 오른쪽에 계시니 저는 흔들리지 않으리이다.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제 영혼 뛰노니, 제 육신도 편안히 쉬리이다. 당신은 제 영혼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께 충실한 이에게 구렁을 보지 않게 하시나이다.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고, 당신 오른쪽에서 길이 평안하리이다. ◎ 하느님, 저를 지켜 주소서. 당신께 피신하나이다. ◎복음 환호송◎ 요한 17,21 참조 아버지, 아버지가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소서. 아버지가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소서. ◎복음◎ <이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복음입니다. 17,20-26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20 저는 이들만이 아니라 이들을 위해서도 빕니다.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해 주십시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십시오. 영광을 저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는 제 안에 계십니다.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또 저를 사랑하셨듯이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저에게 주신 이들도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시어 저에게 주신 영광을 아버지를 알지 못하였지만 알고 있었습니다.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알려 주었고 앞으로도 알려 주겠습니다. 그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부께 기도하시며, 당신의 제자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공동체의 특징 가운데 하나인 일치가 나옵니다. 교회 공동체는 세상에 던져진 그물, 곧 물고기가 아무리 많이 잡혀도 터지지 않는 그물로 상징됩니다. 모은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만큼은 아니어도 공동체 안에도 물욕이나 명예욕이 끼어들 여지가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본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묘미가 있습니다. 일치는 절대 획일성을 뜻하지 않습니다. 요즘 여러 가지로 사람들의 성격을 분석하고 분류하는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었고, 그것이 나와 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는 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생각이 다르고, 느낌이 다르고, 일을 하는 방법도 다릅니다. 이렇게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길이 시작됩니다. 부정하거나 억눌러서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은, 오히려 일치를 깨뜨릴 수 있습니다. 일치는 서로의 다름 안에서 공동선의 목표를 향하여 스스로를 조절해 나갈 때 가능한 것이고, 그 다름은 더 이상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풍요로움이 될 수 있습니다.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태도를 지양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의 다름을 끌어안을 때,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일치하여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 안에서 일치하여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합시다. (이성근 사바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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