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6월 15일(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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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6-15 | 조회수1,23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6월 15일 토요일 [(녹) 연중 제10주간 토요일] 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셨다며, 하느님과 화해하라고 권고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맹세하지 말라고 하시며,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라고 하신다.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셨습니다.> 2서 말씀입니다. 5,14-21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 위하여 돌아가셨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되살아나신 분을 위하여 아무도 속된 기준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기준으로 이해하였을지라도 이해하지 않습니다.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맡기신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세상을 당신과 화해하게 하시면서, 잘못을 따지지 않으시고 말씀을 맡기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 통하여 권고하십니다. 여러분에게 빕니다.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 ◎화답송◎ 시편 103(102), 1-2.3-4.8-9.11-12(◎ 8ㄱ) 너그러우시네.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네 모든 아픔을 없애시는 분. 네 목숨을 구렁에서 구해 내시고, 자애와 자비의 관을 씌우시는 분.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끝까지 캐묻지 않으시고, 끝끝내 화를 품지 않으시네.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당신을 경외하는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가 먼 것처럼, 우리의 허물들을 멀리 치우시네. ◎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네. ◎복음환호송◎ 시편 119(118),36.29 참조 제 마음 기울게 하소서. 자비로이 당신 가르침을 베푸소서.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복음입니다. 5,33-37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주님께 해 드려라.’ 하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말한다. 아예 맹세하지 마라. 하느님의 옥좌이기 때문이다. 그분의 발판이기 때문이다. 맹세하지 마라. 위대하신 임금님의 도성이기 때문이다. 맹세하지 마라. 하나라도 희거나 검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할 것은 ‘예.’ 하고, 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 ◎오늘의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거짓 맹세를 하지 말고, 맹세한 대로 주님께 해 드리라는 계명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두고 하는 맹세입니다. 하느님을 두고 하는 맹세, 하느님을 증인으로 하는 맹세이기에 거기에는 어떤 거짓이 들어가서도 안 되고, 하느님과 한 약속은 성스러운 의무로서 꼭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하느님의 이름을 입 밖에 낼 수 없을뿐더러, 하느님을 두고 맹세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러나 하느님이나 하느님의 이름 대신 하늘이나 예루살렘을 두고는 맹세할 수가 있었고, 그런 맹세가 남용되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하늘이 하느님의 어좌이고 땅은 하느님의 발판(이사 66,1-2 참조) 이라면, 하늘이나 땅을 두고 맹세하는 것은 곧 하느님을 두고 맹세하는 것과 같은 것임을 지적하십니다. 하느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두고 맹세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은 사람들 사이에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가시적으로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말라고 하시면서, 다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라고만 하여라.”라고 하십니다. 여겨지지 않습니다. ‘예.’와 ‘아니요.’ 로 대답하는 것이 어렵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무엇에 ‘예.’를 하고, 무엇에 ‘아니요.’를 해야 하는지 구분하는 것이 어렵고, 또 ‘예.’라고 대답한 것을 실제로 내가 실천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두렵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에 의지하며,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도록 청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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