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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부활한 공동체)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6-27 조회수1,717 추천수1 반대(0) 신고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

부활한 공동체

찬미 예수님

여러분의 마음도

부활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아픈 몸이 있다면

아픈 몸뚱이도 건강하게

부활하시기를 바랍니다.

영과 육이 새로이 부활하셔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와

생선이 죽었을 때 나는 냄새 중

어디가 더 역합니까?

요즘은 송장 냄새 잘 못 맡죠?

대개가 병원에 계시다가 돌아가시고

돌아가시면 바로 냉동실로

들어가기 때문에,

예전에는 집에서 장사를 치렀는데

더운 삼복더위에 돌아가 보세요.

안방 한쪽에 병풍 치고

그 안에 시신을 모시면

조문객은 숨을 못 쉬고 나가요.

밑에다가 비닐을 깔아도

그 시체 물이 줄줄 흘러내려요.

역하죠.

그 시신을 산에다 묻으려고 하면

땅 파는 인분들은 소수를

몇 병씩 먹어야 돼요.

송장 끌어내면 온 천지가

송장 썩는 냄새에요.

생선 한 마리 썩을 때보다

사람 송장 썩을 때 냄새가 더 역해요.

바꿔서 이야기하면 귀하고 비싼 존재가

썩을 때일수록 냄새가 역해요.

더 쉽게 얘기하면 사제가

잘못 살았을 때 풍기는 냄새는

평신도들이 잘못 살았을 때

풍기는 냄새보다 훨씬 더 더러워요.

평신도들이 잘못 살았을 때

풍기는 냄새는 성당에 발 한 번

들여놓지 않았던 이방인들이

잘못 살았을 때 풍기는 냄새보다 역해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그 사람에 곁에만 가면

그 썩은 냄새를 주변 사람들은

다 맡는데 본인만 못 맡아요.

그러면서 나만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우리 성당에 나 없어 봐라. 돌아가나!’

그게 비극이에요. 송장들의 비극.

코를 막을 정도로 냄새가 나는데,

본인만이 못 맡는다는 것!

우리는 예수님께서 목숨 바쳐

구원해 주신 귀하고 비싼 존재예요.

그렇게 살려놓았음에도

썩은 냄새 풍기고 산다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슬퍼하시겠는가?

그래서 어제 부활 전야 미사 때

뭐라고 했습니까?

부활은 한마디로 변화다.

바뀌는 것에요.

변화되지 않는 사람에게

부활절이 60, 70번 찾아온다 한들

그 무슨 의미입니까?

그냥 행사입니다.

그냥 해치우는 일,

이벤트입니다.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상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 바로 변화입니다.

그것이 부활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종교자유가 있기까지 초대교회는

그야말로 죽음 자체였습니다.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의 목이 잘리고,

창에 찔리고, 사자 밥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천주교의 씨를 말리려고 했음에도

천주교가 죽었습니까, 이어졌습니까?

이어져서 오늘날까지 각자 각자에게

그 천주교의 피가 흘러내려 온 겁니다.

초기 수많은 박해 속에서도

교회가 무너지지 않았던 바탕은

부활에 대한 체험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는

바로 그 힘이 초대교회를

300년 동안의 박해 속에서,

또 조선 시대 수만 명이 죽으면서도

하느님을 증거 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에 대한 체험을 끝없이,

끝없이 계승시킨 교회 공동체는

살아났습니다.

자식들에게 부모가 부활에 대한

체험을 가르친 집안에는

냉담자가 있을 수 없습니다.

부활을 체험한 공동체는 반드시

성화가 되고 그 특징이

반드시 있습니다.

부활한 공동체는 크게 세 가지를

밑바탕으로 하고 삽니다.

첫 번째, 부활한 공동체는

말씀으로 사는 공동체입니다.

여러분 가정에 말씀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고 여러분 활동 단체에서

말씀 위주가 아닌 술 위주로 만난다면

그 공동체는 죽은 공동체입니다.

부활한 공동체의 첫 번째 단추는

말씀으로 사는 공동체입니다.

사도행전에 초대교회 신자들은

늘 저녁이면 모여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말씀을

나누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두 번째로 부활한 공동체의

두 번째 특징은 성사 생활로 사는

공동체입니다.

성사, 그중에서도 특히

고해성사와 성체성사. 중심에는

성체성사가 있고 여섯 성사는

성체성사를 둘러서

울타리를 쌓고 있습니다.

신품성사가 왜 필요합니까?

사제가 되어야만 주님의 성체성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왜 세례받은 겁니까?

성체를 영할 수 있기 때문에

세례를 받는 겁니다.

늘 빵을 나누어 마셨다.

부활을 체험한 공동체 안에

성사가 없다면 천주교 아닙니다.

세 번째로 부활한 공동체는

봉사와 애덕으로 사는

공동체이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말씀으로 사는 공동체,

성사로 사는 공동체,

봉사와 애덕으로 살아가는 공동체.

이것이 바로 초대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부활 신앙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가톨릭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부터는 수난공동체라고 하는

단어가 쓰이질 않습니다.

부활에 대한 체험을 바탕으로 시작된

신앙공동체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2000년 동안 천주교라는

이름이 붙은 모든 성당,

활동 단체, 모든 인간 조직이

부활에 대한 모습을 보이고 있을까요?

아니죠.

부활한 모습을 보여주는

교구가 있습니다.

그리고 죽어있는

교구가 있습니다.

부활한 모습을 보여주는

성당이 있고

송장 썩는 냄새가 나는

성당이 있습니다.

성당 안에 파는 수십 개로

갈라져 있고, 목자와 양은

서로 반목하고 살아가고 있고,

이건 죽은 공동체이지

절대 부활 공동체는 아닐 겁니다.

100억짜리 성당을 짓고

으리으리한 대리석으로

치장했다고 하여 공동체는 아닙니다.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던

프랑스의 노틀담 성당이 불길에

순식간에 잿더미가 됩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을 가지고

교회라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부활한 모습의 성지가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모습의 성지가 있습니다.

저는 성모님성지에서도 살았고

배티성지에서도 살았지만,

죽을힘을 다해 순례자들이 왔을 때

살아있는 부활한 성지 모습을

보여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부활한 수도회가 있고

죽은 모습의 수도회가 있습니다.

부활한 모습의 공소가 있는

죽은 공소가 있습니다.

부활한 모습의 구역, 반이 있고

죽은 듯이 살아가는 구역,

반이 있습니다.

늘 새롭게 부활하려고 애쓰는

나 자신이 있고,

늘 시체처럼 살면서

송장 냄새 풍겨도 풍기는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그러한

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김웅렬 신부가 한 평생

사제 생활 왜 하는 겁니까?

사제가 직업입니까?

만일 직업이라면 저는 절대로

택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교우들이 농담 반,

진담 반, ‘신부님 나중에

다시 태어나시어도 사제하시겠죠?’

그러면 저는 미쳤냐!

한 번 사는 것도 힘든데,

성가정을 이루면서 멋지게 살지

그만큼 제대로 사제로 살려면

힘들다는 얘기죠.

사제는 놀고먹으려면

실컷 놀고먹을 수 있어요.

미사 한 대만 해 주고.

그러나 사제가 양들을 찾아서

일을 하려면 하루 24시간도 부족해요.

사제가 하느님 앞에

무릎 꿇기 시작하면 게세마니

예수님처럼 기도로 하루가 짧아요.

여러분들이 신자 생활하는 이유는

현세에 대한 보상도 받아야 되지만

결국에는 영원을 지향해야 됩니다.

이제 잠시 후 세례받을 8.

나이들이 다 달라요.

나이가 다른 만큼 알게 모르게

지은 죄의 종류도 다 다를 것에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ㅇㅇㅇ에게 세례를 베푸나이다.’

하는 바로 그 순간

지금까지 여러분이 살면서 지었던

모든 죄는 아무리 커도

그 순간에 사라질 것입니다.

또 죄를 지으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되는데,

그 벌도 다 탕감이 될 것에요.

세례 받은 그 순간 하얀 눈처럼

천사의 날개가 될 겁니다.

새로 태어나는 거죠.

그렇지만 살다가 죄 지을 수도 있겠죠.

그럴 때마다 말씀으로 성화되고,

성사로 하느님에게 나아가면서

그 힘을 가지고 봉사와 애덕의 삶을

살아야 됨을 명심해야 될 것입니다.

세례 성사는 졸업식이 아니라

입학식이에요.

예비자 때는 열심히 나오다

세례 후 그 뜨거움이 사라지는 것을

종종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늘 명심해야 될 것은

세례는 졸업식이 아니라 입학식이다.

아직도 하느님 앞에서는

아기라고 하는 것.

아기는 기어야 될 때도 있고

벽 짚고 일어나야 될 때도 있고,

자기 발로 걸어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늦게 받았지.’

걱정할 게 없어요.

우리 교우들한테 강조하는 얘기지만,

구원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응답의 문제다.

세례 받고 6-70년 동안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아가다가 죽는 사람과

세례 받고 몇 년 뜨겁게 살다가

죽는 사람 중에 과연 하느님은

누구를 선택하실 것인가?

똑같은 날 세례를 받았어도

1년 후 성숙한 모습을 보이는

교우가 있는가 하면,

교리 배울 때보다도

훨씬 더 처지는 교우도 있어요.

그래서 응답을 하셔야 될 겁니다.

시간 간다고 저절로 때 되면

열심해지고저절로 믿음이

깊어지겠지? 누가 그래요?

세월과는 아무 상관없어요.

끊임없이 응답하고,

찾으려고 애를 쓰고,

말씀 가까이 하려고 애를 써야합니다.

1주일에 주일 한 번 미사 하는 것으로,

한 번 영성체 하는 것으로는

약발이 딸려요.

고혈압 환자들 매일같이

약 먹잖습니까?

적어도 이틀 간격으로

주님의 성체를 영해야 산다.‘

이런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해요.

나중에 두 다리를 못 움직일 정도로

나이가 들면 성당 문턱을 넘고 싶어도

못 넘어요.

내 두 다리로 움직일 수 있을 때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가지 말고

거룩한 땅을 향해 찾아오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의 영과 육이

오늘 부활하셨음을 믿습니다. 아멘.

2019년 주님부활 대축일(04/21)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photo by - 느티나무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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