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7월 6일(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 |||
---|---|---|---|---|
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7-06 | 조회수1,12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7월 6일 토요일 [(녹) 연중 제13주간 토요일] 말씀의초대 야곱은 어머니 레베카의 도움으로 아버지 이사악이 맏아들인 에사우에게 내리려던 축복을 받는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오면 당신 제자들도 단식할 것이라고 하시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신다. ◎제1독서◎ <야곱은 형을 속이고 축복을 가로챘다(27,36 참조).> 27,1-5.15-29 잘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내 아들아!” 하고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자, 2 그가 말하였다. 언제 죽을지 모르겠구나. 화살 통과 활을 메고 들로 나가, 별미를 만들어 나에게 가져오너라. 너에게 축복하겠다.” 에사우에게 하는 말을 엿듣고 있었다. 그래서 에사우가 사냥하러 들로 나가자, 15 레베카는 자기가 집에 가지고 있던 큰아들 에사우의 옷 가운데 가장 값진 것을 꺼내어, 그의 손과 매끈한 목둘레에 입힌 다음, 아들 야곱의 손에 들려 주었다. “아버지!” 하고 불렀다. 너는 누구냐?” 하고 묻자, “저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사우입니다. 이르신 대로 하였습니다. 제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찾을 수가 있었더냐?” 하고 묻자, 주님께서 일이 잘되게 해 주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내 아들아, 가까이 오너라. 아닌지 내가 만져 보아야겠다.” 가까이 가자, 이사악이 그를 만져 보고 말하였다. 손은 에사우의 손이로구나.” 그의 형 에사우의 손처럼 털이 많았기 때문에 그에게 축복해 주기로 하였다. 에사우냐?” 하고 다져 묻자, 하고 대답하였다. “그것을 나에게 가져오너라. 너에게 축복해 주겠다.” 가져다 드리니 그가 먹었다. 드리니 그가 마셨다. 이사악이 그에게 말하였다. 와서 입 맞춰 다오.” 나는 냄새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였다. 주님께서 복을 내리신 들의 냄새 같구나. 하늘의 이슬을 내려 주시리라. 술을 풍성하게 해 주시리라. 뭇 겨레가 네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지배자가 되고 네 앞에 무릎을 꿇으리라. 자는 저주를 받고 자는 복을 받으리라.” ◎화답송◎ 시편 135(134), 1ㄴㄷ-2.3-4.5-6(◎ 3ㄱ) 좋으신 주님.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주님의 종들아. 주님의 집에 서 있는 이들아. 우리 하느님의 집 뜰에 서 있는 이들아. ◎ 주님을 찬양하여라, 좋으신 주님. 찬미 노래 불러라, 정겨운 그 이름. 주님은 야곱을 뽑으시어, 이스라엘을 당신 소유로 삼으셨네. ◎ 주님을 찬양하여라, 좋으신 주님. 모든 신들 위에 뛰어나신 우리 주님. 하늘에서나 땅에서나, 바다에서나 심연에서나, 주님은 바라시는 것 모두 이루시네. ◎ 주님을 찬양하여라, 좋으신 주님. ◎복음환호송◎ 요한 10,27 참조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복음◎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복음입니다. 9,14-17 예수님께 와서, 단식을 많이 하는데,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물었다. 있는 동안에 슬퍼할 수야 없지 않으냐?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찢어지기 때문이다. 부대에 담지 않는다. 부대도 버리게 된다. 담아야 한다. ◎오늘의묵상◎ 제1독서에서 레베카와 야곱은 이사악을 속이고 장자권, 곧 하느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레베카와 야곱이 마치 속임수로 에사우에게 갈 장자권을 가로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25장 23절에서 주님께서는 이미 레베카에게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말해 주신 바 있습니다. 주님의 뜻에 반하여 에사우에게 축복을 내리려던 이사악을 막고, 주님의 뜻대로 야곱에게 축복이 돌아가도록 만듭니다. 어떻게 보면 이사악을 속였다기보다는, 잘못된 이사악의 행위를 바로잡아 준 셈입니다. 실제로 에사우는 장자권, 곧 하느님의 축복을 빵과 불콩죽에 팔아넘길 정도로 업신여기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둘째였던 야곱이 축복을 받는데, 그가 바로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왜 단식을 하지 않는지 묻습니다. 이스라엘의 올바른 이라면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 단식을 해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에게, 신랑이 그들과 함께 있기에 ‘슬퍼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단식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되었음을 슬퍼하며 행하는 참회의 표지였는데, 예수님 당신을 통하여 이미 혼인 잔치, 곧 메시아 시대가 열렸고, 혼인 잔치의 신랑인 메시아가 그들과 함께 있으니 굳이 슬퍼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들도 곧 신랑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때가 되면 제자들은 단식하게 될 것입니다. 슬퍼할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길 것이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구약의 백성이 슬퍼하듯이 그렇게 슬퍼할 필요는 없습니다. 신약의 백성은 비록 신랑을 빼앗겼지만, 그 신랑을 곧 되돌려 받을 것입니다. 아니 그 신랑과 영원히 함께 살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는 단식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빵을 배불리 먹고 마시는 그런 시대를 살아갈 것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