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7.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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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7-12 | 조회수2,314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2019년 7월 12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제1독서 창세 46,1-7.28-30 그 무렵 1 이스라엘은 자기에게 딸린 모든 것을 거느리고 길을 떠났다. 그는 브에르 세바에 이르러 자기 아버지 이사악의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다. 2 하느님께서 밤의 환시 중에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 “야곱아, 야곱아!” 하고 부르시자,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3 그러자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느님이다. 이집트로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그곳에서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4 나도 너와 함께 이집트로 내려가겠다. 그리고 내가 그곳에서 너를 다시 데리고 올라오겠다. 요셉의 손이 네 눈을 감겨 줄 것이다.” 떠났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은 아버지를 태워 오라고 파라오가 보낸 수레들에 아버지 야곱과 아이들과 아내들을 태웠다. 6 그들은 가나안 땅에서 얻은 가축과 재산을 가지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야곱과 그의 모든 자손이 함께 들어갔다. 7 야곱은 아들과 손자, 딸과 손녀, 곧 그의 모든 자손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들어갔다. 유다를 요셉에게 보내어, 고센으로 오게 하였다. 그런 다음 그들은 고센 지방에 이르렀다. 아버지 이스라엘을 만나러 고센으로 올라갔다. 요셉은 그를 보자 목을 껴안았다. 목을 껴안은 채 한참 울었다. “내가 이렇게 너의 얼굴을 보고 네가 살아 있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는 기꺼이 죽을 수 있겠구나.” 복음 마태 10,16-2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러므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18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22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박해하거든 다른 고을로 피하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스라엘의 고을들을 다 돌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이라는 책에서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어느 정도는 ‘그러면 좀 어때’라는 것을, 오늘 할 일을 다 못했어. 그러면 좀 어때? 차가 잘 안 나가. 그러면 좀 어때? 돈이 별로 없어. 그러면 좀 어때? 부모님은 날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그러면 좀 어때? 무슨 말인지 알겠지? 해방되는 기분이야.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내 방식이 될 거야.”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좀 어때?’라면서 살아가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유 있게 살아가는 세상이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세상인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훨씬 더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그러면 좀 어때?’라는 마음을 간직하려고 노력하기보다, ‘그러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의 마음을 계속해서 키우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여유가 없고 초조해질 수밖에 없고, 긍정적이기 보다 부정적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마음에서는 자유로움보다 억압과 구속의 삶을 살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품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는 구석이 생기면 이러한 마음을 품기가 훨씬 더 쉬워집니다. 어린아이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자기 옆에 부모님이 계시면 자신 있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하지만 자기 혼자만 있다면 자신 있게 말하고 행동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물쭈물하면서 주위 눈치만 보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기도 합니다. 믿을 대상이 없기 때문에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것입니다. 대상이 있을 때 훨씬 더 자연스럽게 가질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주님께 대한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고 또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굳은 믿음만 있다면 ‘그러면 좀 어때?’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더욱 더 자유롭게 살 수가 있습니다. 위험의 순간에서도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라고 하십니다.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도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다. 함께 하는 사람이야말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한 사람” 이 아닐까요? 그러나 지혜롭지도 또 순박하지도 못한 모습을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이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이 바로 슬기롭지 못한 모습입니다. 또한 주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만을 새기면서 부정하는 것은 단순하게 믿고 따르는 순박함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좀 더 쉽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좀 어때?’라는 마음을 품으면서 말이지요.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목표를 크게 잡아라. 실패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목표를 낮게 잡아 이루는 건 큰 문제다. (미켈란젤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예수님) 기도 어떤 말을 만 번 이상 되풀이하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렇게 반복한다는 것은 그만큼 기억을 하고 지향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 안에서 자신의 말과 행동도 이 지향에 따라 움직이게 되고 그 결과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늘 되풀이 하면서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기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위로와 힘을 얻게 해주세요.” 만 번 이상 되풀이 한 것이 분명한데, 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이 말이 이루어지는 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을까요?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위로와 힘을 받는 통로가 다르고, 또 그 강도 역시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루어졌다는 확신을 얻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루어지는 것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모호하게 “알아서 해주세요.”라는 기도보다는 주님의 손길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기도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주님 앞에 촛불을 켜고 마음을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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