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Maria Magdalena Postel)은
1756년 11월 28일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의 바르플뢰르(Barfleur)에서
요한 포스텔과 테레사 러발로 사이에서 태어나
율리아 프란치스카 카타리나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다른 아이들보다 4년 먼저인 8세 때에 첫 영성체를 하였다.
그 후 지방 학교를 나온 후 베네딕토 수녀회에서 교육을 받으며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생활을 소망하였으나 결국 사적인 서원만 발하였다.
바르플뢰르로 돌아온 뒤에 그녀는 여학교를 개교했는데,
이 학교는 프랑스 혁명 동안에
성직자법을 거부하는 교회 인사들의 지하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혁명의 와중에서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와 보속의 삶을 실천하던 그녀는 작은 형제회의 3회원으로 입회하였다.
마침내 프랑스 혁명이 끝나자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은
다른 동료들과 더불어 혁명의 후유증,
특히 신자들의 종교적 무관심을 치유하고 교육하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그래서 여성 교우들을 모집하고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여자 수도회를 설립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러한 그녀의 노력이 계기가 되어 1807년 61세의 늦은 나이에
'자비의 그리스도인 학교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새로운 이름을 수도명으로 선택하였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포스텔은 수녀회 설립 초기에 많은 난관에 부딪혔지만
결코 좌절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극복하였다.
결국 1830년 생-소뵈르-러-비콩트(Saint-Sauveur-le-Vicoste)에 본원을 개설하였고,
1837년에는 교황청으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그 후 이 수녀회는 날로 발전해 나갔고,
설립자는 거의 40여 년 동안 수녀회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경주하다가
1846년 7월 16일 본원에서 사망하였다.
그녀는 1925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다.
* 자료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