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7월 16일(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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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7-16 | 조회수1,28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7월 16일 화요일 [(녹) 연중 제15주간 화요일] 말씀의초대 모세는 강가에서 건져져 파라오의 딸의 아들이 되었는데, 자라서 동족을 편들다가 살인을 하고 파라오를 피하여 도망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을 꾸짖으시며, 심판 날에는 소돔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라고 하신다. ◎제1독서◎ <물에서 건져 냈다고 해서 그 이름을 모세라 하였다. 그는 자란 뒤, 자기 동포들이 있는 데로 나갔다.> 레위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석 달 동안 그를 숨겨 길렀다.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갈대 사이에 놓아두었다. 멀찍이 서서 아기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목욕하러 강으로 내려왔다. 있었는데, 공주가 갈대 사이에 있는 상자를 보고, 그것을 가져오게 하였다. 아기가 울고 있었다. 가운데 하나로구나.” 하였다. 파라오의 딸에게 말하였다. 아기에게 젖을 먹일 불러다 드릴까요?” “그래, 가거라.” 하자, 어머니를 불러왔다. 그에게 말하였다. 젖을 먹여 주게. 삯을 주겠네.” 그리하여 그 여인은 아기를 데려다 젖을 먹였다. 아이를 파라오의 딸에게 데려갔다. 하면서 그 이름을 모세라 하였다. 그는 자기 동포들이 있는 데로 나갔다가, 그들이 강제 노동하는 모습을 보았다. 하나가 자기 동포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없는 것을 확인한 뒤에, 모래 속에 묻어 감추었다. 히브리 사람 둘이 싸우고 있었다. “당신은 왜 동족을 때리시오?” 하고 말하였다. 우리의 지도자와 판관으로 세우기라도 했소? 나도 죽일 작정이오?” 하고 대꾸하였다. 그러자 모세는 “이 일이 정말 탄로 나고야 말았구나.” 하면서 두려워하였다. 듣고 모세를 죽이려 하였다. 피하여 도망쳐서 미디안 땅에 자리 잡기로 하였다. ◎화답송◎ 시편 69(68),3.14.30-31.33-34 (◎ 33 참조)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우어라. 발 디딜 데 없나이다. 깊은 물속에 잠겨, 급물살이 저를 덮치나이다. ◎ 가난한 이들아, 하느님을 찾아라.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우어라. 당신께 다다르게 하소서. 은총의 때이옵니다. 하느님, 당신의 크신 자애로 제게 응답하소서. 당신은 참된 구원이시옵니다. ◎ 가난한 이들아, 하느님을 찾아라.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우어라. 하느님, 저를 도우시어 보호하소서. 하느님 이름을 노래로 찬양하리라. 감사 노래로 그분을 기리리라. ◎ 가난한 이들아, 하느님을 찾아라.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우어라. 하느님 찾는 이들아,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우어라. 주님은 불쌍한 이의 간청을 들어 주시고, 사로잡힌 당신 백성을 멸시하지 않으신다. ◎ 가난한 이들아, 하느님을 찾아라.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우어라. ◎복음환호송◎ 시편 95(94),7.8 주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라.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복음◎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복음입니다. 11,20-24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을 꾸짖기 시작하셨다.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티로와 시돈에서 일어났더라면, 뒤집어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남아 있을 것이다. 너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오늘의묵상◎ 제1독서에서 파라오의 딸은 물에서 건져 낸 아이의 이름을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 라는 의미로 “모세”라고 부릅니다. 모세 입장에서 볼 때 ‘건져 내어진 이’ 라는 의미를 지닌 ‘마수이’라는 이름이 더 적절해 보입니다. 그러나 파라오의 딸은 무의식적으로 ‘건져 내는 이’라는 뜻을 가진 “모세”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모세는 이 이름처럼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 바다에서 건져 내는 역할을 합니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가 바로 파라오의 딸이라는 점이 참 역설적입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자기 땅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데, 그의 딸이 모세를 구출해 냄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을 떠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줍니다. 더 나아가 파라오 역시 모세를 죽이려 하지만, 이 때문에 모세는 광야로 나가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코라진과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을 꾸짖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역, 특히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활동 중심지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았고, 많은 기적을 경험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께서 가장 많은 기적을 행하신 곳이 그곳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지 않습니다. 이렇게 보니, 믿음은 예수님 말씀을 많이 듣는다고, 또 그분이 일으키는 기적을 많이 본다고 생기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같은 사람을 만나 극도의 어려움을 겪을 때 더 강해지나 봅니다. 어려움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릴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참된 부활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를 두고 우리는 신앙의 역설이라 부릅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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