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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Sound and Voice)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9-07-26 조회수1,495 추천수1 반대(0) 신고

 

김웅렬신부님복음묵상

Sound and Voice

찬미예수님.

오늘 성소주일이고 예전에는

예수 착한 목자주일이라고 그랬습니다.

우리의 소리를 영어로 뭐라고 그러죠?

사운드(sound)!

이 소리는 크게 자연적인 소리와

만들어낸 소리가 있지요.

자연적인 소리(natural sound)에는 바람소리,

새소리, 시냇물 소리,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천둥소리,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 등

사람이 억지로 만든 소리가 아니죠.

이런 자연적인 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기분이 좋아지고 편안해지죠.

또 만들어낸 소리가 있죠.

자동차 엔진 소리, 시계 초침 소리,

신발 끄는 소리, 휴대폰 벨소리 등이

인공의 소리죠.

이런 인공의 소리는

한참 들으면 피곤해져요.

그러면 방귀는 자연의 소리일까요,

인공의 소리일까요?

방귀 뀌는 옆에 있는 사람은 괴로우니

인공의 소리 쪽으로 봐요.

또 사운드 가운데서 하느님이

내시는 소리가 있죠.

아무리 좋은 라디오라도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음악을

들으려면 주파수를 맞춰야 되요.

주파수가 안 맞으면

잡음 밖에 안 들려요.

우리는 하느님과 주파수를

꼭 맞추어야만 하느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요.

그 주파수는 전통적으로

4가지 주파수가 있죠.

첫 번째 양심이라고 하는

주파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 양심은 세월이 갈수록

변질되고 자꾸 자기합리화를 시켜요.

주일에 싫어도 나와 사제 강론을 들으면

자꾸 끼는 양심의 때가 떨어져 나가죠.

말씀을 들으라는 겁니다.

우리 그런 말 있지 않습니까?

처음 바늘 훔칠 때는 떨리지만

나중에는 남의 집 소 휘파람 불면서

끌고 나온다.’

그 사람이 양심이 애초부터

소 끌고 나오면서 휘파람 불던

양심이 아니었어요.

이렇게 양심이라고 하는 것은

환경에 따라서 자꾸 퇴색되고

때가 묻어요.

양심이라고 하는 이 주파수는 성당에

다니든 안 다니든가지고 있지요.

독재자들도 양심은 있죠.

하지만 자기식대로의 양심을

만들어 합리화하는 거죠.

하느님의 소리를 듣는

두 번째 주파수는 체험이죠.

사건이에요.

기쁜 사건보다는 처절하게

슬픈 사건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소리를 내려주시죠.

하느님과 우리들 사이에

세 번째 주파수는 성사생활이에요.

성체와 고백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는 거죠.

네 번째 주파수는 말씀이에요.

사제의 강론, 우연히 들은

평화방송에서 어느 신부님

한 마디가 눈물을 펑펑 나게 하죠.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는

양심이라 하는 주파수,

십자가라 하는 주파수,

성사라 하는 주파수,

또 말씀이라고 하는 주파수를

통해서 끊임없이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계속 하시지요.

잘 살고 있을 때 하느님의

소리를 들으면 힘이 나지만,

하느님과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는

두려움이 와요.

그 소리 싫어 귀를 막고 피하지만

겸손하게 받아들이면

오히려 성인의 삶으로 바뀌죠.

어느 성인은 냉담자를 가리켜서

마른 장작이라고 그랬어요.

불 한 번 붙으면 뜨거워지죠.

다시는 절대로 냉담자로 돌아가지 않죠.

하느님의 소리 가운데 특별한 보이스

(voice,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있어요.

스페셜(special)한 부르심이 있어요.

나나 여러분이나 여기 예비자들

빼고는 모두 세례 받으셨죠.

세례 받은 것 자체가 하느님의

특별한 소리를 듣고

부르심을 받은 것이죠.

그리스도의 사제직, 예언직,

왕직이라는 어마어마한 지위에

우리들을 들어 올리신 거죠.

이렇게 특별한 소리를 듣고

세례받은 사람들 가운데서

또 아주 특별한 부르심이 있어요.

그게 누구냐? 사제들, 수도자들.

사제서품 때 많은 사제들이

똑같은 영대를 걸치고

똑같은 제의를 입었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특별 성소를 받는

동기들은 같은 경우가 거의 없어요.

복사서다가 신부님 되고 싶어

신학교 간 분도 있지만

전혀 복사와는 상관없는 분도 있죠.

우리나라 첫 번째 주교님이 누군지 아세요?

노기남 대주교님.

그 주교님은 신학교 들어가게 된

동기가 계란찜이예요.

아버지가 공소회장님이셨어요.

미국 신부님이 1년에 두 번

판공성사 주시느라고

공소에 며칠 동안 머물러요.

공소회장님 집에 머무르는데,

그러면 수발은 회장부인,

엄마가 들어요.

그런데 아침마다 엄마가 신부님한테

들고 가는 밥상에는

노란 계란찜이 있는 거야.

그래서 이 노기남 소년은

나도 신부되자. 그러면 저렇게

매일 계란찜을 먹을 수 있구나.’

신학교 들어가서 대주교까지 되셨죠.

전능하신 하느님은 계란찜 하나

가지고도 대주교를 만드는 분이예요,

또 우리 8대 본당신부님,

인천교구 주교님으로 가신

나길모(굴리엘모) 주교님.

그 양반은 부모님이 어마어마한

재벌이에다, 명문대학을 들어갔어요.

가만있어도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을 것인데, 어느 날

책 한 권 때문에 인생이 바뀌었죠.

그 책이 A. J. Cronin의 천국의 열쇠

(The Keys of the Kingdom)라고

하는 책이에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성소를 줬던

유명한 책이죠.

저도 일곱 번은 읽었던 것 같아요.

치셤이라는 사제가 중국으로

선교가 많은 환란 속에서

하느님을 전하는 얘기에요.

그 책을 읽고 청년 나굴리엘모는

신부가 되고자 메리놀 신학교 가서

한국 땅에 옵니다.

책 한 권 가지고 특별한 소리를 해서

사제로 부르신다 말이죠.

또 부활초있죠.

이 부활초 때문에

신부된 사람을 알아요.

경상도에 있는 제 동창 신부,

어릴 때 복사를 섰대요.

부활 전날 사제가 초 들고 입장하죠.

제의실 옆에 준비된 부활초가 있었는데,

복사들이 까불다 초를 넘어뜨렸어요.

땅에 떨어지면서 초가 반 동강이 났으니.

이것 보통일 아니죠. 큰 일이 난 거죠.

신부님이 제의를 입고 들어와 보니

애들이 침을 발라

초를 붙이려고 하고 있는 것에요.

애들은 신부님이 들어오는 순간,

얻어 터졌구나. 큰일났다.’

신부님이 보더니 큰일났네. 누가 그랬니?’

동창 신부님이 제가 그랬습니다.’

그 소년은 혼이 날 각오하고 있는데,

조심해야지. 제의실에서는 뛰면 안 된다.’

신부님도 복사아이들이랑

쭈그려 앉아 붙이려고 하고 있는데,

수녀님이 들어왔데요.

복사들이 까불다 떨어뜨린 것을

짐작한 수녀님이 뭐야?’

하고 소리를 질렀죠.

그런데 신부님이 일어나

소년을 당신 수단 뒤에 숨기고

제의 입다가 내가 부러뜨렸어요.’

수녀님은 신부님이 떨어뜨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뭐라 할 말이 없잖아요.

그날 신부님의 수단 뒤에 있던

그 소년은 성소를 받은 것에요.

그날 그 거룩한 밤에

사제가 만들어졌어요.

그 소년은 나도 신부님이 되어

우리 신부님처럼 저런 신부님 될 거야.’

그 사제는 지금도 빈민 사목을 하며

정말 어려운 사람 도와주려하고

착한 목자로 살아요.

하느님께서는 동강이 난 부활초를

가지고도 거룩한 사제로 만드십니다.

이렇게 그 이유가 다 달라요.

제가 신학교 간 이유는 거의 다

아실 테니 생략합니다.

환난의 시대에 사제들은

살아가고 있습니다.

점점 더 사제생활 하기가 어려워지죠.

또 아이들이 하나, 많아야 둘이다 보니

제대로 인성교육이

집에서 안 될 때가 많아요.

잘못되고 정화되지 않은 부모에게

이미 받아야 될 인성이

제대로 못 받은 것이

신학교 들어가서 정리가 되느냐?

아니에요.

신학생 때는 남 공부할 때

공부하는 척하고, 남 기도할 때

기도하는 척하면 돼요.

시간 지나면 신부돼요.

지도신부가 그 뱃속을

어떻게 다 들어봐요?

그런데 신부 딱 되고 나면

나 이제 신부됐어.’

그 원래의 인성이 드러납니다.

환난의 시대일수록 거룩한 사제가

많이 나와야 되는데

쉽게 사제직을 버리기도 해요.

오늘은 위기를 겪고 있는

사제들을 위하여

기도해주시는 날이에요.

이 환란의 시대에 양들을 끌고 갈

목자가 반드시 있어야 해요.

그 목자를 거꾸러뜨리려고 하는

어둠의 세력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제 하나가 무너지면

교구 전체가 흔들려요.

한 사제가 환속하면 한 세대 동안에는

그 성당에서 성소자 안 나와요.

여러분들이 한 사제에게서

예수님을 다 보려고 하면 못 봐요.

예수님이 본당 신부해도

반대쪽에 서는 사람은 서요.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고,

어떤 신부님은 가정방문 열심히

다니는 사제가 있고,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입을

보여주는 사제가 있고,

또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착한 모습을 보여주는

신부님이 있어요.

여러분, 이제껏 많은 신부님을 겪었죠?

그 신부님을 생각하면 그분의 제일

예수님 닮은 것이 생각날 것에요.

그 조각들을 잘 쥐고 있다가

나중에 세상 떠날 때쯤에

하얀 도화지에 놓고 붙여보세요.

그러면 예수님 모습이

하나 만들어질 것에요.

사제들은 사제 혼자가

예수님을 다 못 보여줘요.

본당 신부에게 예수님의 모습

한 가지만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사제는 성인사제에요.

목자의 의무와 목자의 사랑이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시대입니다.

저는 늘 그러죠.

지금은 똑똑한 신부들이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거룩한 사제가 필요한 시대다.

지금 시대는 능력 있는

수녀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거룩한 수녀가 필요한 시대다.

지금 재주 많은 평신도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거룩한 평신도가 필요한 시대다.

어둠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거룩함뿐이에요.

머리 가지고는 어둠을 못 이기고,

의지 가지고도 어둠을 못 이기죠.

IQ 높다고 해서 마귀한테 휘둘림을

안 당하는 것 아니라는 거죠.

어느 신부님이 인간적으로

약한 모습 보이고,

혹시 그 신부에게

상처 받은 것이 있다면,

바로 그 순간이야말로 그 사제에게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제를 위하여 피눈물을 흘려가면서

기도해야 하는 순간입니다.

사제 하나 만드는 것도

많이 힘들지만 숨 끊어질 때까지

사제로 사는 것은 더 힘들어요.

내가 입고 있는 제의가

1984513일 날 입고 있었던

36년 된 제의에요.

이 제의 입고 관속에 들어가야 되거든요.

관 뚜껑 닫히는 순간까지

아무도 안심 못 해요.

성소는 죽을 때까지 확인해 가는 것에요.

다짐하고 또 결심하고 또 결심하고...

얼마나 이 옷 훌훌 내던지고

자유롭게 살고 싶은 생각이

사제들에게 없겠습니까?

그럴 때 마다 기억합니다.

이 순간에도 묵주 들고 기도하고 있을

할머니들이 있지,

기도하는 교우들이 있지.’

내가 이렇게 말하는 데도 앞으로

기도 안 할 사람이 있을까요?

신부님들 위해 기도하고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죠.

이제는 수도원들도 텅텅 비었어요.

신학교도 애들이 없으니까

지원자가 없어요.

유럽처럼 되 가요.

유럽 수녀원에 가보면 80이 넘은

수녀님들 밖에 없어요.

젊은 수녀들 없어요.

오늘 보좌신부님은 초등학교,

중등학교 아이들 데리고 신학교 갔어요.

신학교가 개방이 되는 날이죠.

신학생들 방이 다 오픈되는 날이죠.

그 아이들을 열심히 꼬시는 날이에요.

여기 들어와서 같이 살자.’

신학교 방문하고 성소를 받는

아이들이 있단 말이에요.

손주, 손녀가 있다면 세상적으로

큰 사람 만들려고 하지 말고

하느님께 봉헌할 손주, 손녀

집중적으로 기도해서

우리나라의 목자 수,

수도자 수가 줄지 않을 수 있도록,

또 착한 목자, 선한 목자,

분별 있는 목자,

교회를 사랑하는 목자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아멘.

2019년 부활 제4주일(05/12)

(서운동성당)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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