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는 하느님의 요청 / 연중 제18주일 다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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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9-08-04 | 조회수1,257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탈무드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늘 세 친구가 있단다. 제일 친한 건 돈인데 매일 만나지만 죽음 앞에서는 언제나 별 볼일 없이 떠난다나. 그 다음이 가족이라지만 그놈의 돈 때문에 평소에는 자주 만날 기회를 갖지 못하나, 죽음에는 그 누구보다 그렇게 슬퍼하면서 무덤까지만 배웅을 한단다. 마지막은 선행이라는 친구인데, 그와는 언제 어디서나 돈과 가족 때문에 만나기가 좀처럼 어렵지만, 마지막 하느님께 가는 길에는 꼭 함께하는 이다. 지금 우리의 진정한 친구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이르셨다. “어떤 이가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는 ‘수확한 것을 모아 둘 데가 없으니 곳간들을 더 크게 지어 거기에 두자.’ 그리고 ′자, 여러 해 쓸 것을 쌓았으니, 먹고 즐겨라.′’ 그러나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자신만을 위하고 하느님께 부유하지 못한 이가 바로 이렇다.”(루카 12,16-21 참조)‘ 오로지 자기 생명을 유지하려고 재물을 모으는 행위는 정말 바보짓이다. 주님만이 참된 생명과 재산을 주실 수 있기에 그렇다. 모은 재물은 최대한 모두 어렵게 사는 이들에 대한 배려로 나누어야 한다. 모은 재물에 행복이 있는 양 생각한다면, 그는 주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사는 정녕 불쌍한 이다. 이는 재물을 삶의 첫 자리에 앉히려고 바장이는 이에 대한 큰 경각심이다. 지나치지만 않다면 어느 정도의 욕심은 필요하다. 그렇지만 어떤 것이 지나치지 않는 욕심일까? 그 기준은 감사를 드리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주어진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탐욕에 절대 빠지지 않는다. 감사는커녕 오로지 끝없는 부족감을 탓하며 살기에, 모모한 탐욕이 생기는 거다. 우리는 공수래공수거를 늘 생각하면서, 그저 주심에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살자. 하느님께서 주신 것에 대한 이 감사만이, 모든 탐욕을 이기는 첫걸음일 게다. 어쩜 많은 소출을 거두어 보관만 한 부유한 이는 오로지 재물에만 관심을 둔 이 일게다. 그리하여 그는 하느님께 감사는 물론 관심마저 두지 않았으며, 자신의 재물을 형제들과 나누지 않은 채 오직 자신만을 위해 모은 죄인이다. 그는 재물을 우상으로 섬겼고 착취밖에 다른 의미를 부여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이다. 반면에 하느님께는 마음이 열려 형제들을 위해 자신의 풍요함이나 부족함을 나눌 줄 아는 이는, 진정 하느님 앞에서는 언제나 부자이고 행복한 이다. 이처럼 하느님 안에서의 삶을 통한 재산의 사용과 나눔만이 진정한 의미가 있다. 그분께서 주신 것은 분열의 도구가 아닌, 하느님 안에서 나눔으로써 친교를 이루어 가는 데 의미가 있기에.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 앞에서 부유한 이가 되도록 늘 초대받았다. 따라서 그분 선물인 재산을 움켜쥐지 않고 손을 펴 가난한 이들과 나눌 때, 하느님께서 주시는 참된 부를 가질게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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