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 [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 긴 고해를 하시는 분들은 명동성당의 상설고해소를 방문하세요 ]
재물에 대하여 (루카 12,13-21)
복음에서 주님은 군중 속의 어떤 사람으로부터 자기 집 재산 분배에 대해 관여를 해 달라는 부탁을 들으십니다. 그러나 당신은 그런 일을 하는 자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그 기회에 사람은 재물에 대해서 어떤 몸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첫째로, 재물 자체보다도 재물에 대한 탐욕이 위험스러운 하나의 큰 유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이런 유혹에 빠져들지 않도록 경계하라 이르십니다. "어떤 탐욕에도 빠져들지 않도록 조심하여라"(12,15).
둘째로, 우리가 재물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아무리 많이 모았어도 그 재물이 결코 우리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고 똑똑히 밝히십니다. "사람이 제아무리 부요하다 하더라도 그의 재산이 생명을 보장해 주시는 못한다"(12,15).
셋째로, 자기 자신만을 위해 재물을 긁어 모으려 드는 자는 뜻밖의 죽음으로 끝장날 수도 있다고 경고하십니다(12,20). 어떤 부유한 자가 욕심을 내서 몇 년씩 먹고도 남을 곡식을 창고에 쌓아 두고 스스로 자기를 위안하며 현명한 체하지만 하느님은 그 사람으로부터 영혼을 별안간 거두어 가심으로 만사가 헛 것이 되고 만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그의 생각과 계획은 어리석은 것이었다고 지적하십니다. 지혜도, 분별도 없이 덮어놓고 재물만 긁어 모아 물질로만 풍요한 자는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마련이고 어리석음이 자리잡고 정신이 비어 있는 자는 한 번은 결국 깊은 구렁텅이에 자신을 몰아넣고 맙니다.
복음은 금권만능이라는 생각에 깊숙이 젖어 있는 현대인들에게 크나큰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가르침은 재물이 많다고 반드시 나쁘다는 뜻이 아니요, 재물이 적다고 옳다는 뜻이 아닙니다. 재물 자체보다는 재물에 대한 올바른 마음가짐과 몸가짐이 중요한 일임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람은 탐욕에 젖지 말아야 할 것이며 재산으로 자기 생명을 떠받친다거나 의지하려는 의식은 하루 빨리 고쳐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하느님께 인색하고 자신만을 위해 재산을 모으려는 자는 결국 자신도 위하지 못하고, 생각지도 않은 죽음이 돌아올 것이며 쌓아 둔 재물은 남의 차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12,20). 끝으로 우리는 다 같이 다음의 주님의 충격적인 말씀을 들읍시다. "이렇게 자기를 위해서는 재산을 모으면서도 하느님께 인색한 사람은 바로 이와 같이 될 것이다"(12,21).
교만의 증상들
이기심
자기의 욕심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짓밟고 있다면, 자기의 재능을 활용해도 다른 이에게 축복이 되지 못한다면 자신의 재능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중심적인 교만으로 인해서 섬김을 받고자 하며, 항상 자기만 옳다고 여기며,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자신의 소원이 항상 성취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자라나게 된다.
우월감
교만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을 멸시하도록 부추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교리나 행동, 고유의 가치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여기게 만든다.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은 교리나 불화가 아니라 바로 교만이다. 서로에게 주고받을 만한 가치 있는 것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때, 모든 분쟁과 분열, 불신, 갈등과 불화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비꼬는 말
비꼬는 말은 위장된 유머로서 다른 사람의 결점을 부각시켜 상처를 입히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편견을 드러낸다. 비꼬는 말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거나 감정이 상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당당히 그것을 다룰 용기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마음속에는 쓴뿌리가 자라나는 것이다.
정죄와 비난
교만한 자는 비판하고 정죄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장점을 잘 발견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장점이 드러나면 삐딱하게 받아서 무시해 버린다. 비난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기쁨이나 은혜를 다른 사람과 나누지 못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다른 사람을 모함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한 점에 대해 있는대로 얘기해 버리는 것은 곧 그 사람에 대한 모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참지 못함
참지 못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계획, 일정을 사람보다 더 중시한다는 것을 나타내며,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 참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안에 사랑과 절제가 없다는 증거다.
탐심
질투와 탐심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 탐심은 우리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과는 동떨어진 세상의 것을 바라보게 하는 태도와 방식이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 갈망할 것이다.
강퍅한 마음
마음이 강퍅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은근히 기뻐한다. 다른 이들을 위로할 줄도 격려할 줄도 모르며, 다른 사람이 잘 되는 일에 함께 기뻐해 주지 못한다. 강팍한 마음으로 변해가는 첫 단계는 싫어하는 사람과 마주하지 않는 것이다.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되면서 서서히 냉각되어 그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다. 그대로 방치하면 교만에 뿌리를 내린다.
배우기 싫어하는 마음
고침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완전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 어떤 잘못을 지적할 때, 그 말을 경청하는가?, 화를 내는가? 합리화하고 변명하는가? 아니면, 해명하는가? 성숙한 사람일수록 남의 충고나 지적을 잘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훈계 속에는 최소한의 진실이 들어있게 마련이다.
아부
칭찬과 아부는 같은 것이 아니다. 칭찬은 다른 사람을 신실히 세워주기 위한 것이지만, 아부는 조종하려는 의도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얻기 위한 정직하지 못한 행위이다.
자기연민
상처받고 지치고 약점잡히고 오해받고 압박받고 죄를 지을 떄, 그리고 낙심하거나 침체될 때 우리는 쉽게 자기연민에 빠진다. 이런 습관을 깨뜨리기 위해 때로는 격전을 치러야 하며,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자기 연민은 교만을 조장하며 그 이면에 있는 이기적인 목적을 합리화한다. 만족할 줄 모르며 이기적이기 때문에 또 다른 무언가를 요구한다.
(창골산 봉서방)
성모 승천 (루카 1,39-56)
우리 교회는 성모 마리아께서 하늘 나라로 영광스럽게 개선하시어 하늘에 오르셨음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모 승천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분명한 기록이 없다 하더라도 모든 크리스찬들은 의심할 여지 없는 역사(성전)로 믿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높은 자격과 신분을 보아서라도 그분의 육신이 무덤에 묻혀 썩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성경의 말씀을 좀더 깊이 살펴볼 때 그분이 하늘 나라에 오르셨음은 추호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인간 마리아는 그의 전 일생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했습니다(1,38). 이러한 성경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우리 교회는 성모 승천을 모든 신자들이 반드시 믿어야 할 진리로 공포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모님의 승천을 경축하면서 성모님이 세상에 살면서 지니셨던 마음가짐의 일부를 복음을 통해 잠시나마 더듬어 보기로 합시다. 복음에서 성모님은 언니 엘리사벳으로부터 축복의 인사를 받으십니다(1,42). 그러나 당신은 축복을 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고 축복받는 모든 일은 다 하느님의 은혜요 덕분이라고 이르십니다(1,49). 성모님은 지난날 미천했던 자신의 처지를 보더라도 축복받을 만한 이유가 없음을 솔직히 밝히십니다(1,48). 당신이 가지신 것은 가난과 미천 같은 보잘것 없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이렇게 엄청난 은혜를 베푸시는 것으로 보아,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큰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전인류에게 알려 주십니다(1,50). 하느님의 이 같은 섭리를 찬송하는 마음이 성모님의 감사가(1,46-55) 전체에 잘 흐르고 있습니다. 성모님이 읊으신 이 감사가는 성모님 한 분의 감사가일 뿐 아니라, 동시에 당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당신 이전의 모든 사람들과 당신 이후의 모든 사람을 대표한 감사가이기도 합니다.
성모님은 평범한 인간이시면서도 우리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성모님께는 항상 인간이라는 신분에서 더하거나 덜하거나 하는 과장과 꾸밈이 없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신분에 솔직하셨고 그 이상을 넘어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높은 지위에 올림을 받으신 다음에도 당신은 여전히 비천한 여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심으로써(1,38.48), 당신 본래의 겸손한 자세에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성모님의 이 같은 겸손한 자세야말로 하느님의 어떠한 은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완전한 바탕이기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와 같이 성모님께 크신 은혜를 주신 것처럼, 진실하고 겸손한 바탕 위에 당신의 모든 계획을 펴신다는 섭리를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 승천을 축하하면서, 하느님의 엄청난 은혜를 받게 된 성모님의 깊은 겸손을 마음으로부터 본받고 몸으로 따를 때 성모 승천을 축하하는 뜻이 되겠습니다.
(김용배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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