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9월 20일(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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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09-20 | 조회수1,051 | 추천수1 | 반대(0) 신고 |
2019년 9월 20일 금요일 [(홍)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9월22일 주일로 경축 이동을 하지 않을 곳에서는 대축일 미사를 드린다.> 우리나라는 18세기 말 이벽을 중심으로 한 실학자들 몇몇의 학문적 연구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이들 가운데 이승훈이 1784년 북경에서 ‘베드로’로 세례를 받고 돌아와 신앙 공동체를 이룸으로써 마침내 한국 천주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선교사의 선교로 시작된 다른 나라들의 교회에 비하면 매우 특이한 일이다. 그러나 당시 한국 사회는 전통을 중시하던 유교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어, 그리스도교와 크게 충돌하였다. 결국 조상 제사에 대한 교회의 반대 등으로 천주교는 박해의 시대를 맞이하였다. 신해박해(1791년)를 시작으로 병인박해(1866년)에 이르기까지 일만여 명이 순교하였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의 해인 1984년 우리나라를 방문하여 이들 순교자들 가운데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와 평신도인 정하상 바오로를 비롯한 103명을 시성하였다. 이에 따라 9월 26일의 ‘한국 순교 복자 대축일’을 9월 20일로 옮겨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로 지내고 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 시복시성 주교특별위원회’ 를 중심으로 아직 시성되지 못한 순교자들의 시복 시성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입니다. 자랑스러운 신앙 선조들을 기리며, 순교자들의 피로 우리를 복음의 빛 안으로 불러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신앙 선조들의 순교 신앙을 본받아, 저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기로 다짐합시다. 말씀의초대 지혜서의 저자는,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는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냐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라고 하신다.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가득 차 있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아셨기 때문이다.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다스리실 것이다. 진리를 깨닫고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돌보시기 때문이다. ◎화답송◎ 시편 126(125), 1-2ㄱㄴ.2ㄷㄹ-3.4-5.6(◎ 5)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귀양에서 풀어 주실 때, 우리는 마치 꿈꾸는 듯하였네. 그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넘치고, 우리 혀에는 환성이 가득 찼네. ◎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주님이 저들에게 큰일을 하셨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네겝 땅 시냇물처럼 되돌리소서.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제2독서◎ <죽음도, 삶도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말씀입니다. 8,31ㄴ-39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위험입니까? 칼입니까? 그대로입니다. 살해되며 도살될 양처럼 여겨집니다.”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권능도, 그 밖의 어떠한 피조물도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복음환호송◎ 1베드 4,14 참조 모욕을 당하면 너희는 행복하리니 하느님의 성령이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리라. ◎복음◎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복음입니다. 9,23-26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부끄럽게 여기면,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오늘의묵상◎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하였던 성 요한 23세 교황은 ‘나’라는 1인칭 주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라고 할 수 있는 권한은 하느님밖에 없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나를 더 생각하면 이웃을 덜 생각하게 됩니다. 이웃을 더 사랑하려면 나를 잊어야 합니다. 또 그는 길을 다닐 때, 눈에 보이는 것들에 정신을 팔지 않으려고 고개를 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루하루의 삶이 자기 자신과의 작은 싸움이었기에 성인이 되었습니다. 성인은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의 작은 순교들이 모여 완성됩니다. 오늘은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의 모범을 본받고자 그분들의 순교 정신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현시대에는 이런 피의 순교를 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의 순교 정신이 멀게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순교 없는 신앙생활은 없습니다. 매일의 작은 순교가 모여 목숨까지 아낌없이 내어 놓을 수 있는 큰 순교에 이르는 것입니다.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 기도하는 것도 나 자신을 죽이는 작은 순교입니다. 성경 한 줄을 읽으며 주님의 뜻을 찾는 것도 순교입니다. 내 몸이 원하지 않는 것을 하기 때문입니다. 더 사랑하고자 나의 욕구를 죽일 때 그것이 순교인 것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해군 장교는 “세상을 바꾸고 싶습니까? 이불 먼저 개십시오.”라고 말합니다. 순교자들을 기리고 그들을 기쁘게 하고 싶다면, 오늘 하루 단 1분이라도 순교의 삶으로 나아가려는 구체적인 결심을 해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믿음이 없듯 순교 없는 신앙도 없습니다. 아침에 1분 더 일찍 일어나 성경 한 줄이라도 읽는 작은 순교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전삼용 요셉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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