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10월 13일(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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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10-13 | 조회수777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10월 13일 주일 [(녹) 연중 제28주일] ▦ 오늘은 연중 제28주일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현세의 생명과 영원한 생명의 샘이시니, 육신의 건강만을 찾지 맙시다. 이 거룩한 날 모두가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와 믿음을 주신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며,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끊임없이 구원하심을 깨닫고, 그 구원의 증인이 되게 해 주시기를 청합시다. 말씀의초대 엘리야 예언자가 일러 준 대로 하여 나병이 치유되자, 시리아 사람 나아만은 주님만을 섬기겠다고 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며,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다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 치유를 받은 나병 환자 열 사람 가운데, 외국인 한 사람만이 돌아와 감사를 드린다(복음). ◎제1독서◎ <나아만은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주님께 신앙 고백을 하였다.>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가 14 일러 준 대로, 살처럼 새살이 돋아 깨끗해졌다.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되돌아가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하느님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하고 거절하였다. 받아 달라고 거듭 청하였지만 엘리사는 거절하였다. 만큼의 흙을 이 종에게 주십시오.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드리지 않을 것입니다.” ◎화답송◎ 시편 98(97),1.2-3ㄱㄴ.3ㄷㄹ-4 (◎ 2 참조) 민족들의 눈앞에 드러내셨네. 새로운 노래. 그분이 기적들을 일으키셨네. 그분의 오른손이, 거룩한 그 팔이, 승리를 가져오셨네. ◎ 주님은 당신 구원을 민족들의 눈앞에 드러내셨네. 민족들의 눈앞에, 당신 정의를 드러내셨네. 이스라엘 집안을 위하여, 당신 자애와 진실을 기억하셨네. ◎ 주님은 당신 구원을 민족들의 눈앞에 드러내셨네. 온 세상 땅끝마다 모두 보았네. 주님께 환성 올려라, 온 세상아. 즐거워하며 환호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 주님은 당신 구원을 민족들의 눈앞에 드러내셨네. ◎제2독서◎ <우리가 견디어 내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릴 것이다.> 2서 말씀입니다. 2,8-13 8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나는 죄인처럼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고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위하여 이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예수님 안에서 받는 구원을 하려는 것입니다. 11 이 말은 확실합니다. 그분과 함께 살 것이고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며 그분도 우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언제나 성실하시니 부정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복음환호송◎ 1테살 5,18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너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이다. ◎복음◎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복음입니다. 17,11-19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다. 들어가시는데 나병 환자 열 사람이 그분께 마주 왔다.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 몸이 깨끗해졌다. 병이 나은 것을 보고 찬양하며 돌아와,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그런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오늘의묵상◎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 열 사람을 치유해 주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예전에 나병은 하늘이 내린 징벌로 여겨졌고, 전염을 우려하여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병이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뿐 아니라 소외와 고독, 그리고 하느님께 받은 징벌이라는 사회적·종교적 인식까지 더해서 나병 환자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는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십니다. 이 말씀은 그들의 병이 그 자리에서 나았다고 선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틀림없이 치유해 주시려는 의도를 지닌 말씀이지만, 거기에는 나병 환자들의 믿음이 작용해야 하는 여지가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였습니다. 그들은 길을 가는 동안에 치유되었는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 사람은 유다인들이 경멸하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고 선포하십니다.열 사람이 모두 치유를 받았습니다. 그 치유는 아홉 명에게는 단순히 육체적인 치유에 머물고 말지만, 돌아와 감사를 드린 그 사마리아 사람에게는 구원으로 연결됩니다. 돌아보면 하느님의 은총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지만, 우리는 그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마치 치유를 받고도 돌아와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명의 환자들과 비슷합니다. 행복하기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를 드리기에 행복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우리 생활을 감사로 시작하고 또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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