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10월 29일(겨자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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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10-29 | 조회수961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10월 29일 화요일 [(녹)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말씀의초대 바오로 사도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들이는 겨자씨와 밀가루를 온통 부풀어 오르게 하는 누룩에 비유하신다. ◎제1독서◎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말씀입니다. 8,18-25 18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배 아래 든 것은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간직하고 있습니다.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알고 있습니다.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화답송◎ 시편 126(125),1-2ㄱㄴ. 2ㄷㄹ-3.4-5.6(◎ 3ㄱ) 큰일을 하셨네. 풀어 주실 때, 우리는 마치 꿈꾸는 듯하였네. 그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넘치고, 우리 혀에는 환성이 가득 찼네. ◎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네. “주님이 저들에게 큰일을 하셨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네. 네겝 땅 시냇물처럼 되돌리소서.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네. ◎복음환호송◎ 마태 11,25 참조 찬미받으소서. 아버지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나이다. ◎복음◎ <겨자씨는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 복음입니다. 13,18-21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자기 정원에 심었다.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21 그것은 누룩과 같다. 밀가루 서 말 속에 집어넣었더니, ◎오늘의묵상◎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와 누룩에 비유하신 것은, 하느님 나라가 겨자씨나 누룩처럼 그 시작이 비록 작을지라도 그 자체가 지닌 역동성 때문에 커다란 결과를 낳는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그 역동성은 온전히 하느님 나라의 본질에 속한 것이기에 하느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겨자씨가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것이나 누룩이 밀가루 반죽을 부풀게 하는 것에 사람이 하는 일은, 오로지 씨를 밭에 뿌리고, 밀가루 반죽에 누룩을 집어넣는 일뿐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의 역동성은 사람이 언제 그런 일이 이루어지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이루어지지만, 결국 커다란 결과를 가져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의 공생활 안에서 이 비유의 의미가 이루어짐을 볼 수 있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의 삶은 비록 소외된 땅 갈릴래아에서 남들 눈에 크게 띄지 않게 조용히 시작되었지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겨자 열매처럼 생기와 활력을 주고, 새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겨자 나무처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였습니다. 그 의미는 우리 신앙생활에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바라며 살아갑니다. 그 나라가 지금 우리와 함께, 우리 안에 있고, 또 자라고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이 땅에 하느님 나라의 희망이 지속되고 그 완성에 도달할 때를 기다립니다. 그 완성이 언제 올지 안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역동성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작용하고 있으며, 결국 커다란 결과를 만들어 내리라는 것이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다른 무엇보다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는 하루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성근 사바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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