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 자캐오마냥 회개하는 그 삶을 / 연중 제31주일 다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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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박윤식 | 작성일2019-11-03 | 조회수1,037 | 추천수3 | 반대(0) 신고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께서 세관장이고 또 부자인 자캐오가 있는 예리코에서 거리를 지나셨다. 자캐오는 키가 작았기에 그분을 앞질러서 달려 돌무화과나무로 올라갔다. 그곳을 지나시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그는 얼른 내려와 집으로 모시고 말하였다. “주님!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19,1-10 참조)’ 자캐오가 로마의 지배하에 세금 징수를 위임받아 제국의 압제자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 그가 받은 멸시는 누구나 상상해 볼 수가. 민족에게서 외면당한 자캐오라고 해서 메시아로 칭송받던 예수님을 어디 보고 싶지 않았겠는가? 비록 먹고살려고 지배 세력에 협력하였지만, 그 불편한 마음인들 오죽했으랴? 그냥 예수님을 멀리서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받고 싶었으리라. 그래서 돌무화과나무에 올라 자신을 쳐다보는 그를, 예수님은 자비의 마음으로 바로 알아보셨다. 그렇게 예리코의 키 작은 세관장 자캐오는 직업상 적잖이 무시당했다. 그래서 그는 돈을 모아 자신의 열등감을 이기고자 했다. 곧 세관장이 되어 돈을 착취해 떵떵거리는 부자가 되면, 누구나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건 오산이었고 그럴수록 그는 더 증오감이었다. 그가 나무로 올라갔다는 게 이를 간단히 증명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하면 많은 이가 자신을 우러러볼 것이고, 자신도 예수님을 떳떳이 바라볼 수 있을 것으로 여겼으리라.
자캐오는 정녕 놀란 가슴으로 내려왔다. 그는 예수님을 마냥 모시고 그분만이 주시는 평화를 만끽하였다. “주님! 제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꼭 나누어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공으로 챙겼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이 얼마나 담대하며 순진한 감동인가? 그는 정작 진심으로 말했을 게다. 예수님을 가까이 모셨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게 없었건 거다.
예수님은 이처럼 죄인을 부르시고자 우리에게 오셨다. 그리고는 비난받는 키 작은 자캐오를 자비로 부르셨다. 그는 예수님 부르심에 큰 기쁨을 받아 그간의 잘못을 솔직히 뉘우쳤다. 구원은 바로 그에게 내린 이런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의 은총이다. 자비는 이렇게 우리의 생각과 판단을 넘어선 하느님의 선물임에 틀림없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알게 모르게 죄를 범하지만, 그래도 주님 부르심을 받은 몸이다. 우리도 자캐오마냥, 예수님 면전에서 회개하는 삶을 살자.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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