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9년 11월 10일[(녹)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 |||
---|---|---|---|---|
작성자김중애 | 작성일2019-11-10 | 조회수1,020 | 추천수0 | 반대(0) 신고 |
2019년 11월 10일 주일 [(녹) 연중 제32주일 (평신도 주일)] 평신도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으로서,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신자를 가리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평신도의 역할을 크게 부각하면서, 평신도를 통하여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1968년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지금은 ‘한국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의 결성과 더불어 해마다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 사도직의 날’로 지내기로 하였다. 평신도들에게 주어진 사도직의 사명을 거듭 깨닫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뒤 1970년부터는 연중 마지막 주일의 전 주일을 ‘평신도 주일’로 지내 오다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연중 마지막 전 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하면서 2017년부터 한 주 앞당겨 지내고 있다.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32주일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도 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삶과 죽음에서 복된 희망을 품고, 우리 마음에 심어 주신 성자의 말씀을 착한 행실로 열매 맺는다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말씀의초대 일곱 형제가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법으로 금지된 돼지고기를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지만, 다들 거부하고 죽는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테살로니카 신자들의 힘을 북돋우시고 악에서 지켜 주실 것이라고 한다(제2독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라고 하신다. ◎제1독서◎ <온 세상의 임금님께서는 우리를 일으키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 말씀입니다. 7,1-2.9-14 어머니와 함께 체포되어 먹으라는 강요를 임금에게서 받은 일이 있었다. 되어 이렇게 말하였다. 알아내려 하시오? 차라리 죽을 각오가 되어 있소.” 거두며 말하였다. 우리를 이승에서 몰아내지만, 당신의 법을 위하여 생명을 누리게 하실 것이오.” 셋째가 조롱을 당하였다. 바로 혀를 내밀고 손까지 용감하게 내뻗으며, “이 지체들을 하늘에서 받았지만, 이것들까지도 하찮게 여기오. 받으리라고 희망하오.” 그와 함께 있던 자들까지 아닌 것으로 여기는 그 젊은이의 기개에 놀랐다. 그들은 넷째도 같은 식으로 괴롭히며 고문하였다. 이렇게 말하였다. 주시리라는 희망을 간직하고, 생명을 누릴 가망이 없소.” ◎화답송◎ 시편 17(16),1.4ㄷ과 5-6.8과 15(◎ 15ㄴ 참조)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 제 부르짖음을 귀여겨들으소서. 거짓 없는 입술로 드리는, 제 기도에 귀 기울이소서. ◎ 주님, 저는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 당신의 길에서 제 발걸음 비틀거리지 않았나이다. 하느님, 당신이 응답해 주시니, 제가 당신께 부르짖나이다. 귀 기울여 제 말씀 들어 주소서. ◎ 주님, 저는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 당신 날개 그늘에 저를 숨겨 주소서. 저는 의로움으로 당신 얼굴 뵈옵고,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 ◎ 주님, 저는 깨어날 때 당신 모습에 흡족하리이다. ◎제2독서◎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온갖 좋은 일과 좋은 말을 하게 해 주십니다.> 2서 말씀입니다. 2,16─3,5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또 우리를 사랑하시고 격려와 좋은 희망을 주신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어 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빠르게 퍼져 나가 찬양을 받고, 악한 사람들에게서 구출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힘을 북돋우시고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을 신뢰합니다. 여러분이 실행하고 있고 이끄시어, 하느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이르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복음환호송◎ 묵시 1,5.6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기를 비나이다. 아멘. ◎복음◎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복음입니다. 20,27-38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영성체송◎ 시편 23(22),1-2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오늘의묵상◎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루카 복음에 담겨 있는 매우 독특한 이 표현은, 죽음을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지상에서 죽는다고 해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는 존재라는 믿음, 곧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을 완전히 다르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어 줍니다.사실, 예수님 시대 때 바리사이들은 부활과 영혼 불멸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지만, 사두가이들은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혼 불멸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은 부활과 영혼 불멸에 관하여 자주 논쟁을 벌이고는 하였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도록 오경의 구절을 근거로 설명하십니다. 모세가 하느님을 두고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고 부르는데, 하느님께서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고 한다면,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은 하느님 앞에서 당연히 살아 있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입니다. 예수님의 논리에 따르자면 지상에서 우리는 육신의 죽음을 맞지만, 그 영혼은 하느님 앞에서 계속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부활이란 우리의 영혼이 종말 때 완전히 변화된 몸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부활을 믿는 이들은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일곱 형제와 어머니처럼 진리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마저 내어놓습니다. 십자가를 피하는 이는 결코 부활을 믿지 않는 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니, 부활에 대한 믿음은 언제나 우리가 지는 십자가 위에서 가장 극명히 드러납니다. (염철호 요한 신부) |
||||